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 다니며 성공을 꿈꾸는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루마니아 출장을 떠난다. 일중독에 걸린 딸이 안쓰러운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인생코치’ 토니 에드만으로 변장하고 이네스의 회사일과 일상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토니 에드만’은 성공이 최고의 가치인 딸과 인생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를 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가 황당하고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로 펼쳐지는데, 한참 웃다보면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사이가 멀어진 부녀가 겪는 감정을 희비극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더 강하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사랑을 뭉클하게 그려낸다.
첫 장면에서 카메라는 빈프리트의 집 문을 오랫동안 보여준다. 집배원이 소포를 전달하기 위해 벨을 눌렀을 때 빈프리트는 문을 열고 나와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동생이 사제폭탄을 주문했다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더니 잠 자는 동생을 깨우는 척 하다가 입에 의치를 끼고 동생 흉내를 낸다. 당황한 집배원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농담이라며 눈을 찡긋거린다. 물론, 그에게 동생은 없다. 오프닝 장면은 빈프리트가 앞으로 타인의 가면을 쓰고 유머를 통해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이라고 암시한다.
집배원이 떠난 뒤 한 학생이 찾아와 더 이상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키우던 개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어머니 역시 죽음을 앞두고 있다. 빈프리트는 소중한 존재들과 이별이 익숙해진 나이가 됐다. 그가 유난스럽게 장난을 치는 것도 이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딸과 가까워지고 싶었고, 성공의 꿈만 좇는 딸이 삶의 의미를 찾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인생 선물이니까.
루마니아에서 의치를 끼고 가발을 쓴 채 토니 에드만으로 변장한 빈프리트가 자신의 직업을 인생코치라고 소개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누구에게나 삶은 서투르다. 그 자신만 모를 뿐. 그렇다. 우리에게는 인생코치가 필요하다.
독일로 돌아간 줄 알았던 아버지가 토니 에드만으로 나타나 불쑥불쑥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싫었던 이네스는 극도의 불쾌지수에 시달리지만, 어느새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컨설턴트 이네스는 사중고에 시달린다.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감원의 책임을 자신이 떠안아야 하고, 클라이언트에게 잘 보이기 위해 3시간씩 부인의 쇼핑을 도와줘야한다. 게다가 컨설팅 회사의 보스는 팀워크를 단단히 구축하라고 지시하고, 아버지는 가뜩이나 머리 아픈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
이네스는 신자유주의 경제 흐름에 신음하면서도 남성 중심적 기업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하는 처지다. 미렌 아데 감독은 부녀지간의 불화, 세대 간의 갈등, 급변하는 경제 속에서 이네스의 변화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한다.
이 영화의 가명과 가면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게하는 장치다. 아버지는 토니 에드만의 인생코치가 딸에게 통하지 않자 급기야 불가리아 민속의상 털복숭이 쿠케리를 입고 나타난다. 그는 딸의 이름도 휘트니 쉬눅으로 바꿔 부른다. 이네스가 휘트니 쉬눅이 되어 부르는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은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내 안에서 찾아야하는 법이다.
빈프리트가 토니 에드만과 털복숭이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이네스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 채 자신의 관성에 따라 살아갔을 것이다. 극 중반에 아버지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니?”라고 물었을 때, 딸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차갑게 반응한다. 그러나 계약부터 팀워크 구축까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무렵, 그는 어렴풋이 아버지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
유머는 당신의 삶을 구원한다.
[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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