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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누구의 삶이 옳은지는 뚜렷한 정답이 없다.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다. 삶은 개별적이고, 상대적이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네 삶이 올바른지 성찰해봐라”라고 조언해줄 수는 있다. ‘토니 에드만’이 그런 영화다.
68혁명 이후 리버럴한 정치성향을 갖고 살아온 것으로 짐작되는 전직 음악교사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삶의 행복을 중시하는 중년이다. 그의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세계적 컨설턴트 회사에서 정유회사의 해고를 책임져야하는 일을 맡았다. 이네스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루마니아에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을 처리하는 중이다. 빈프리트는 딸이 안쓰러워 토니 에드만이라는 가명을 쓰고 변장을 하고 나타나 딸 주변을 맴돌며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는 딸이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매몰돼 살아가는 것을 못 마땅해한다. 이네스는 걸려오지도 않은 전화를 붙들고 일하는 척 하는가 하면, 대량해고의 책임을 꼼짝없이 뒤집어써야하는 처지다. 해고를 시키는 마당에 미안한 기색도 없다. 이네스는 승진과 성공이 인생의 목표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이네스의 삶은 모든 직장인의 기준이 됐다. 그는 남을 짓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칙을 체화했다. 남성중심주의 기업문화에 별다른 항의도 하지 않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 정도 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다.
급기야 아버지는 딸에게 “너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쏘아붙인다. 이네스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그에게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은, 듣기에 거북스러웠겠지만, 성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버지가 볼 때 이네스의 삶은 무너졌다.
토니 에드만으로 변신한 빈프리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딸을 과거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되돌리길 바랐다. 부활절 달걀 앞에서 옛날에 함께 불렀던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을 부르게 한 것도, 악령을 내쫓는다는 전설을 지닌 불가리아 털복숭이 인형 쿠케리를 입고 딸의 생일잔치에 나타난 것도 이네스의 부활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마렌 아데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두 차례나 거머쥔 이란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연설을 들려줬다.
“지금까지 영화는 세상에 대한 응답이었지만, 이제는 영화가 세상에 질문을 던져야할 때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마렌 아데 감독은 서둘러 노트북을 꺼내 받아 적었다고 술회했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말처럼, 그도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혹시 당신의 삶은 무너지지 않았나요?”
[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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