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그동안 날로 먹었죠”
솔직했다. 배우 허정민은 그간 자신의 연예계 생활에 대해 “날로 먹었다”고 표현했다. 아역배우부터 시작해 그룹 문차일드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고, 이후 연기 활동을 계속하며 오랜 기간 연예계에서 버틴 그가 자신은 쉽게 걸어왔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배우 허정민이 연극 ‘유도소년’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온 그였기에 연극 도전은 꽤 욕심 있어 보였다. 그러나 웬걸, 첫마디부터 “너무 힘들어 죽겠다”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속내를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의외로 더 진실돼 보였다.
연극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경찬이 1997년 고교전국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뜨겁고도 풋풋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초연-재연 모두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평균 객석점유율 104%를 달성하는 등 대학로의 ‘간다 열풍’을 이끌어냈다. 극중 허정민은 경찬 역을 맡았다.
“‘유도소년’을 본적이 없어 몰랐지만 유명하고 재밌다는 얘기는 들었다”고 운을 뗀 허정민은 “‘또 오해영’ 끝나고 조현식 배우가 추천해서 하게 됐는데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힘들다는 얘기에 처음엔 거절했어요. 근데 또 제의가 와서 고민을 했죠. 그 때 연극하는 후배들이 ‘무조건 해야죠’라고 하더라고요. ‘힘들어 봐야 얼마나 힘들겠어’라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근데 공연이 3월인데 지난해 12월부터 유도장에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유도장에서 매치기 당하는 순간 ‘이건 아닌데.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흘러 흘러 지금이 됐네요.(웃음)”
이렇게까지 솔직하나 싶었다. “원래 운동을 완전 싫어한다”, “집에 누워있는게 직업”, “움직이는 것도 싫어한다” 등 ‘유도소년’을 왜 했는지 모를 이야기를 늘어놨다. 본인 역시 “미쳤었나보다”며 헛웃음을 쳤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의지나 애정이 없는 말은 아니었다. 푸념하고 불평하지만 이는 자신의 몸이 따라주지 않아 그런 것일 뿐, 작품에 대한 신뢰는 상당했다.
“제가 특히 약한 사람이에요. 유독 약하죠. 그냥 계속 연습하면서도 몇 번이고 도망치려고 고민도 했었어요. 내가 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니까요. 드라마 촬영까지 겹쳐서 잠도 못자고 연습실에 나오는데 매치기도 당하고 항상 피곤에 쩔어 있으니 항상 무대에 못 올라갈 것 같았어요. 나 자신과 많이 싸웠죠. 근데 이렇게 무대에 올라가게 되니 뿌듯해요. 기적 같죠. 태어나서 뭔가를 이렇게 열심히 해본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의외였다. 꾸준히 연예계 활동을 해왔던 그가 이렇게나 약한 소리를 할 줄이야. 허정민은 더욱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난 원래 게을러서 별로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라는 너무도 솔직한 고백을 했다.
“정말 솔직하게 전 요행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남들보다 먼저 데뷔했기 때문에 그래도 이렇게 먹고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에 다른 이들과 똑같이 시작했다면 연기자라는 직업을 분명 중도포기 했을 거예요. 그만큼 재능도 없고 끼도 없어요. 성격상 낯도 많이 가리고요.”
아역배우에 문차일드 활동까지 한 그에게서 예상 못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 나왔다. “어릴 땐 TV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연기학원을 가고 오디션에 붙어 ‘모래시계’에 출연하게 됐다”며 “그 후로 쉼 없이 일했고 중간에 문차일드도 하고, 군대 갔다 와서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좋은 기회들이 찾아와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항상 내 인생은 어떻게 타인에 의해 흘러 흘러 간 것 같다는 생각이요. 근데 불혹이 되기 전에 정말 힘든 걸 한 번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어쩌면 ‘유도소년’이었던 것 같아요. ‘이거 못 버티면 앞으로 나는 더 이상 힘든걸 아예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내 자신이랑 되게 많이 싸웠던 것 같아요. 이번에 진짜 한 번 해보자고 했죠. 그동안 날로 먹었으니까.. 이번에 진짜 해보자!”
그간의 자신을 버리고 연극 무대에 오른 그에게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무대에서는 발성 자체도 달랐고, 이제까지 해오던 것을 모두 버린 채 새로운 연기를 해야 했다. 고민을 거듭했고 차차 연극 무대에 적응해 갔다.
“배우들과는 전혀 이질감이 없었어요. 오히려 연기할 때도 나 혼자와 많이 싸웠죠. 그냥 철판 깔고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워 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많이 힘들었다. 고민하고 있고 스트레스예요.(웃음) ‘유도소년’ 인기도 부담이 됐죠. 항상 부담이 됐고, 연예인이 무대에 오른다는 선입견에 대한 부담도 있었어요. ‘물 흐린다’는 소리 들을까봐 편견을 벗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사실 사회 생활을 일찍 한 탓에 ‘유도소년’ 속 인물들의 학창 시절은 다소 낯설다. 다만 학교에 다녔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추억의 노래들도 그에게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활동을 바쁘게 해서 고등학교 시절이 없는데 ‘유도소년’을 통해 다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느낌이에요. 활동을 일찍 하다 보니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일찍 봐버려서 좀 그런 또래 애들이랑 단절되는 게 있던 것 같아 아쉬운 게 있었는데 ‘유도소년’에서 풀고 있네요. 대신 경찬이가 후배들이랑 놀고 까부는걸 보면 중학교 때가 많이 생각나고 그 때 제 모습이랑 비슷해요. 시련을 당하면서 어른이 되는 과정도 비슷하죠.”
연예계 생활을 해오며 슬럼프도 있었다. 요행으로 잘 왔다고는 하지만 제대 이후 쉬는 기간이 길어져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이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악재가 겹치는 기간이 1년 정도 있어 슬럼프를 겪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고 집에 혼자만 있었죠. 많이 방황했어요. 하지만 그 때 처음으로 포기라는 걸 배웠던 것 같아요. 내가 갖고 있는 것, 나 자신, 내 욕심, 내 환경 이런 걸 다 포기하니까 편해지더라고요. 자존심을 버리고 다 포기했죠. 살면서 이 이상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이 생겨 스스로 극복하게 되더라고요.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기회도 또 왔고요. 이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게 또 이걸 해야 한다는 말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슬럼프를 이겨내고 차근차근 연기 생활을 계속 했다. 포기도 배웠고, 도전하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배웠다. 그런 시점에 ‘유도소년’은 그에게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가 될 작품임에 틀림없다.
“솔직히 관객 입장에서 ‘유도소년’은 진짜 재밌어요. 심각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니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요. 사실 이 작품을 정말 애정해요. 제가 능력이 안돼서 힘들어 하는거지.. 몸만 따라주면 정말 신날 것 같아요. 올해 가장 잘 한 일은 ‘유도소년’을 사고없이 성황리에 마쳤다고 생각 하는 게 목표예요. 또 새로운 작품을 하겠지만 매번 위기고 극복이고 도전이라 그 때마다 지금 ‘유도소년’을 했던 마음가짐으로 이 악물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도소년’으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람을 만들어준 공연이죠.(웃음) 집밖으로 나오게 해준 공연이고요.”
한편 연극 ‘유도소년’은 오는 5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허정민. 사진 =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주)창작하는 공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