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어느 독재자’는 악마의 면전 앞에서 그 악을 닮지 않고 이성의 힘으로 인간다움의 본성을 지켜내는 영화다. 누구나 악마의 목덜미를 잡았을 때 복수의 칼을 잡으려는 유혹 내지는 충동에 빠진다. 감정은 언제나 이성보다 앞선다. 저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냉정하게 가라앉힐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세계의 인간은 증오의 불길에 소화전을 뿌리고, 고삐 풀린 감정에 채찍을 가해야한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랜 시간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본다”라는 니체의 말은 민주주의 체제를 사는 우리가 새겨들어야할 경구다.
어느 나라의 독재자(미하일 고미아쉬빌리)는 수많은 사람을 고문으로 죽이는 철권통치로 국가를 운영하다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는 어린 손자(다치 오르벨라쉬빌리)를 데리고 줄행랑을 친다. 가난한 이발사의 집에 들어가 옷을 빼앗고 가발을 쓴 채 거리의 악사 흉내를 내며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해외 망명의 길에 나선다.
도망자로 해외 망명의 길을 떠난 독재자는 길 위에서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고스란히 마주한다. 헐벗고 굶주린 민중, 월급을 못 받아 강도로 돌변한 군인, 극심하게 고문당한 정치범 등은 모두 그의 철권통치가 낳은 아픔이다.
그의 범죄를 어떻게 단죄해야할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리에 따라 그가 태워 죽인 사람처럼 화형에 처해야할까. 독재자가 저질렀던 만행을 고스란히 되갚아주는 형벌을 찾아내 모두 실현시켜야할까.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다. 복수는 괴물이다. 모든 것을 다시 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다. 악무한적인 연쇄 사슬만 두껍게할 뿐이다. 악이 악을 낳는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역사는 언제나 퇴행할 것이라고, ‘어느 독재자’는 말한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복수와 증오의 언어가 아니라 용서와 화합의 춤을 떠올린다. 극중에서 어린 손자는 대통령 궁에서 소녀 마리아와 즐겁게 춤을 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손자는 도망치는 도중에도 독재자에게 마리아와 다시 춤을 추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춤의 세계에선 일방향적인 권력과 폭력이 없다. 모두가 동등하다. 쌍방향의 소통이 춤의 핵심이다. 독재자는 서로 어우러지고 행복해지는 ‘춤의 세계’를 몰랐다. 그가 평화로운 춤의 미덕과 가치를 일찌감치 깨달았더라면, 전체주의 국가의 통치행위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춤은 적대가 아니라 화합의 몸짓이다. 분노와 파멸이 아니라 평화와 생성의 언어이고,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적에게 춤을 추게 할 수 있는 관용을 베푼다면, 민주주의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다.
[사진 제공 = 디씨드]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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