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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거짓은 집요하다.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위기에 처하면 몸을 사렸다가 다시 돌아온다. 거짓을 박멸하기란 쉽지 않다. 거짓은 진실을 공격하며 세를 확장한다. 이제 진실이 거짓을 제압할 때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 부인론자에게 날리는 강력한 진실의 펀치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는 자신을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로 모욕했다는 이유로 역사학자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다. 어빙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측이 진실을 입증해야하는 영국 사법체계를 이용했다. 립스타트는 영국 최고의 변호사들과 함께 어빙의 거짓 논리를 하나 둘씩 격파해나간다.
립스타트와 어빙의 명예훼손 소송은 세기의 재판이었다. 4년간 모두 32번의 공판이 열렸으며, 334페이지의 판결문이 나왔다. 어빙을 비롯한 부인론자들은 히틀러와 나치가 유대인을 살해했다는 공식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을 악용해 역사적 진실 자체를 흔들었다.
립스타트와 영국 변호사들은 방대한 자료조사로 부인론자들의 허술한 논리와 악의적 왜곡을 입증했고, 결국 어빙은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을 물어내느라 파산을 신청했다.
‘나는 부정한다’는 당시 소송 기록과 법정에서 오갔던 대화를 그대로 복원해 사실성을 높였다. ‘보디가드’로 유명한 믹 잭슨 감독은 다큐멘터리 연출 경력을 충분히 활용해 재판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그는 법정영화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내는 한편 결과를 다 아는 재판임에도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연출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증인 참석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던 립스타트와 변호인단이 공판이 거듭될수록 팀웍을 발휘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뜨거운 신념을 지닌 유대인 역사학자 립스타트 역의 레이첼 와이즈, 능구렁이 같으면서도 뻔뻔한 부인론자 어빙 역의 티모시 스폴, 투견으로 불리는 전략 천재 사무 변호사 앤서니 줄리어스 역의 앤드류 스캇, 한 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냉철한 법정 변호사 리처드 램프턴 역의 톰 윌킨슨의 연기 앙상블 역시 뛰어나다.
‘나는 부정한다(Denial)’는 중의적 표현이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어빙을 가리키면서도 법정 승리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변호인단에 맡기고 끝까지 침묵을 지킨 립스타트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어빙의 패소만 담아내지 않는다. 표현과 학문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법관이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가 등의 묵직한 질문도 함께 던진다.
‘나는 부정한다’의 어느 대목에서 카메라는 캄캄한 지하의 어둠을 응시한다. 홀로코스트는 ‘역사의 블랙홀’이다. 합리적 이성으로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어둠의 심연은 모든 것을 빨아 들일 것이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다.
[사진 제공 = 티캐스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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