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이, 진지하고 견고하며 아름답다. 타인과의 관계설정에서 오는 윤리적 딜레마의 주제를 일상의 에피소드로 엮어 치밀한 구조 속에 쌓아올려 끝내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비춘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타인과의 만남 또는 어긋남으로 빚어진 연민 혹은 죄책감의 문을 통해 윤리학적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다. 앞선 예가 ‘자전거 탄 소년’이라면, 뒤의 예는 ‘언노운 걸’이다.
한밤 중, 누군가 병원 문을 두드린다. 인턴 의사(올리비에 본나우드)가 문을 열어주려고 하는데, 제니(아델 하에넬)는 진료가 끝났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신원미상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제니는 소녀의 행적을 직접 찾아 나선다. 제니가 소녀의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이웃사람들을 하나 둘씩 만기 시작하자, 경찰과 주민들은 이제 그만 손을 떼라고 조언한다.
다르덴 형제는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 누가 가해자인지를 밝혀내는 스토리 속에 죄책감과 사회적 책임감 사이의 윤리학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소녀의 죽음이 제니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제니는 만약 문을 열었다면 소녀는 살았을 것이라고 자책한다.
극중에서 제니는 두 가지 죄책감을 느낀다. 하나는 인턴 줄리안에게 심한 말을 해서 그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한 것. 또 하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아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두 가지 모두 제니의 책임은 아니다. 줄리안은 과거의 어떤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소녀는 제니의 병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제니는 타인의 불이익 또는 불행을 방관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책임이 아니더라도, 자신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쳤다면 마음의 빚이 생기고, 그 빚을 갚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믿는다.
다르덴 형제는 음악으로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고, 플래시백 등의 장치로 극적 효과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소녀의 이름을 찾아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제니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사건이 해결되고 제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온 어떤 여인이 병원 문을 나서면 제니는 기다리고 있던 연로한 환자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간다. 이때 제니는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자전거 탄 소년’의 시릴은 자전거를 타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 영화 모두 그들이 퇴장한 뒤의 텅 빈 공간을 담아낸다. ‘언노운 걸’의 병원 복도와 ‘자전거 탄 소년’의 길거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들이 맞닥 뜨리게 될 세상에서 삶은 계속된다는 것. 아버지에게 버려졌던 시릴은 더욱 힘차게 페달을 밟아 험한 세상을 꿋꿋하게 헤쳐나갈 것이고, 제니는 의사로서 환자의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다음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면 힘차게 열어줄 것이다.
[사진 제공 = 오드]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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