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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세상이 달라보여요. (이은희를 연기했을 땐) 정신적으로 피폐하니까.”
배우 조여정은 ‘완벽한 아내’ 종영 소감을 묻자 이와 같이 답했다. 이 짧은 말 안에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모두 숨어 있었다. 이은희 역을 연기하며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는 조여정은 이제 막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싶었다.
“가장 힘든 장면이 떠오르지 않아요. 명장면도 자꾸 물어보시는데 그런 게 없어요. ‘언니’라고 부르는 그 한마디도 너무 고민이 됐어요. 하나하나가 쉬운 게 없었어요. 일반 사람의, 정상적인 정서의 여자가 아니었어요. 너무 고민해 뇌에 쥐가 나는 느낌이었어요.”
이토록 고민을 거듭한 이유는 ‘공감’ 때문이다. 자신도 이은희라는 인물에 공감이 되지 않는데 하물며 시청자는 오죽하랴 싶었다. 시청자를 공감시키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는 조여정은 ‘집착’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에 대한 집착을 극대화시켰다. 너무 큰 도전을 한 것일까,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등의 생각 때문에 괜한 도전을 한 것인지 고민이 거듭된 밤들도 많아졌다.
“일단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은희의 대사들이 세요. ‘저런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했죠. 그리고 재복 언니가 말을 하는 것처럼 연기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잘 해요. 저도 말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톤에 맞아 그게 제일 숙제였던 것 같아요. 진짜 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자, 연기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최대한 산뜻했으면 좋겠다’도 고민되는 지점이었죠. 악역인데 너무 무거우면 사람들이 오히려 보면서 지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은희를 만든 건 그의 아픈 경험들이었다. 이은희 역을 연기할 때 특별한 모델이 있었냐는 질문에 조여정은 “없다”고 답했다. 대신 자신이 배우생활을 하며 만나왔던 모든 악인들이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역시 배우는 버릴 게 없다고 느낀 게, 제가 배우를 하며 만난 모든 악인들이 너무 큰 도움이 됐어요. ‘내가 지금 나쁘게 행동하고 있어’라고 자각하는 분들은 죄책감이 있고 감추려 하다 보니 행동도 말도 세지고 방어적이 돼요. 하지만 절대적으로 자기 생각이 맞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굉장히 얼굴도 맑고 눈도 초롱초롱해요. 이것보다 더한 악인은 없다고 느꼈어요.”
해맑고 초롱초롱한 모습은 이은희의 소름 돋는 면모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헌데 이것이 조여정의 첫 악역 도전이라고. 완벽한 악역으로 분한 조여정 덕분에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의 개연성이 떨어졌음에도 ‘조여정의 연기가 개연성’이라는 호평까지 불러 일으켰다.
“그게 배우의 숙제이기 때문에, 개연성을 만들어낸다는 게 굉장히 극찬이었어요.”
아직 2017년의 중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조여정의 명품 연기 덕에 대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 상황. “민망하다”는 조여정은 “너무 어리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이후 자신보다 어린 배우들 중에도 대상 수상자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웃어 보였다.
“제가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됐네요. 상에 대해서는 늘 저와 별개라는 생각이 있어서 받으면 완전 감동해요. 워낙 기대가 없는 스타일이에요. 상복이 없다고요? 전 그런 생각이 없어요. 작품을 한 뒤 잊고 살다가 상을 준다고 하면 ‘어머? 나를?’ 하면서 기분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럼에도 상을 받는다고 가정한다면?) ‘완벽한 아내’는 완벽한 팀이었어요. 진짜 주어진 조건에서 이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드라마 초반 스포트라이트가 10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고소영에게 쏠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조여정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섭섭한 마음은 없었어요. 소영 언니의 팬이었어요. 같이 하게 돼 좋았죠. 신기하잖아요. 어릴 때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언니를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연기할 때도 아니니 더 신기하잖아요. 교복을 입고 서 있는데 소영 언니가 다가오더라고요. 언니가 지나가며 머리에 손을 얹으면서 ‘예쁜 애구나’라고 말했는데 완전 얼어서 ‘고소영이 나보러 머리에 손을 얹고 예쁘다고 칭찬해줬어!’라고 했었어요. 언니에게 이야기했는데 ‘그랬어?’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옆에서 지켜본 고소영은 지난 연기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조여정은 “늘 해왔던 것처럼 너무 잘 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언니랑도 아쉬워했던 게, 대립하는 역이라 어쩔 수 없이 더 웃고 못 떠들었어요. 그런 게 아쉽다고 이야기했었죠. 너무 웃다가는 (연기에 몰입을) 못 하겠더라고요.”
조여정은 배우를 하며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자신 뿐 아니라 다양한, 여러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제 입장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여러 캐릭터를 하다 보니 입장을 뒤집어 보는 습관들이 생겼어요. 언젠가 제가 응용할 수도 있고. 성격도 진짜 많이 변했고,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매력이에요.”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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