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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약속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마음이 아프다"
주희정이 정든 코트를 떠난다. 주희정은 1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해 은퇴를 하는 소감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삼성 이상민 감독과 동료 선수들, 그리고 주희정의 아들인 주지우 군도 참석했다.
1997년 원주 나래(현 동부)에 입단한 주희정은 1997-1998시즌을 시작으로 2016-2017시즌까지 무려 20시즌 동안 프로농구 무대에서 활약했다. 특히 20시즌 동안 소속팀이 치른 1044경기 중 단 15경기에만 결장했다.
역대 KBL 최다인 1029경기에 나선 그는 최다 어시스트(5,381개), 최다스틸(1,505개), 국내선수 트리플 더블 최다기록(8회), 3점슛 성공갯수 2위(1,152개), 리바운드 5위(3,439개), 득점 5위(8,564점)에 올라 있다. 또한 철저한 몸 관리로 다른 선수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 선 주희정은 소감문을 읽을 때와 취재진과의 일문일답 도중 몇 차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다음은 주희정과의 일문일답.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서 프로 20년 동안 정확히 기억나는 경기는 없다. 다 시간이 빨리 흘러갔던 것 같다. 그래도 꼽자면 삼성 시절에 통합 우승했을 때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시절인 것 같다"
-시즌 때만 해도 계속 뛸 것 같았는데 은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직도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휴가 끝난 다음에 훈련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비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비워야만 내 앞으로의 미래가 빨리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한다. 잊지 못하는 추억들에 사로잡히면 안될 것 같다. 앞으로의 내 모습을 그리면서 준비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은퇴 전과 후의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매 시즌이 끝났을 때와 똑같은 것 같다. 휴가 때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돌아갔던 시기다. 가장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것은 정규리그가 끝난 다음에 첫째, 둘째 아이와 약속을 한 것이 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가장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이 '1년만 더 선수생활을 하면 안되겠냐'고 물어보더라. 꼭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은퇴하면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우선 프로이기 때문에 실력으로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결과는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지만 프로 선수이기 때문에 후배들은 나이가 들수록. 나는 나이가 들수록 눈치를 봤던 것 같고 후배들은 눈치를 보지 말고 프로답게 실력으로 보여주고 구단에게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 기록을 남겼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정말 운이 좋아서 많은 기록들을 갖고 있지만 내게는 전부 소중한 기록들인 것 같다. 다 애착이 가지만 특히 1000경기를 이룬 것이 가장 애착이 생긴다"
-가족들과 어떤 시간 보내고 싶은지
"당장 변하는 것은 없다. 시즌 끝난 것처럼 여느 때처럼 아이들 학교, 학원 갈 때 데려다주는 등 평범한 아빠처럼 지낼 것 같다. 아내에게는 '수고했다, 오빠는 조금 쉬어도 될 사람이다'라고 얘기를 들었지만 모든 남편들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은 아이들과 원없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노력의 대명사다. 후배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부터 무식하게 훈련을 해왔고 프로에서도 슛이 없는 선수, 반쪽짜리 선수라고 들을 때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노력한다면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믿고 무작정 열심히만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시대도 많이 바뀌었고 스킬트레이닝을 통해서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에 그냥 막무가내로 노력하기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경기에 뛰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훈련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타팀 선수의 잘하는 기술이 있다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많이 배우고 느꼈으면 좋겠다. 실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한다면 훌륭한 선수들이 나올 것 같다"
-본인이 그리고 있는 지도자상이 있다면?
"일단 명장 감독님들의 장점만을 배우고 싶다. 몇 년 전에 NBA 중계를 봤다.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에 있을 때 봤는데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계셨다. 상대팀이 공격 횟수가 40번이면 피닉스는 70~80번 정도를 하는 것을 봤다. '저 부분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내가 원하는 농구 스타일이다'라고 생각을 했다. 만약에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그 감독처럼 전술을 한국에 맞게끔 배워와서 다이나믹하고 재미있게, 팬들이 즐거워할 정도의 농구를 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 할머니다. 할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질병이 심각하신데도 불구하고 손자 하나 잘 키우기 위해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정말 효도다운 효도를 못한 것 같다. 평생 죽을 때까지 가슴이 아플 것 같다. 할머니에 대해서는 늘 생각한다. 매경기에 마음 속으로 '이기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빌었다. 할머니에게 잘해드린 게 없는데 내 이익만 생각하고 이기고 싶은 마음에 마음 속으로 할머니께 이기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 자체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할머니 얼굴조차 머릿속에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매일매일 보고 싶고 매 경기 때마다 기도한다. 나중에 할머니 곁에 간다면 그 때는 잘해드리고 싶다"
-목표 중에 이룬 것도 많지만 못 이룬 것도 있을텐데
"원없이 했다. 한 시즌, 한 시즌 지날 때마다 목표가 새롭게 생겼다. 기록적인 면을 말한다면 예전에는 트리플더블 10번을 채우고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못 이뤘다. 올해 1000경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다. 그런 대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900경기에서 1000경기를 달성하다보니, 1000경기를 넘어서 NBA 선수들 기록을 깨고 싶었던 것이 목표였는데 이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보다는 미련이 남는다"
-리그가 위기라는 말이 계속 있는데
"팬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 주신다면 농구 발전이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선수들이 재미있는 경기를 하면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면 조금 더 한국농구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기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훈련을 하고 개인기량을 향상시킨다면 개개인의 선수 덕분에 팬도 더 늘어날 것 같다"
[주희정. 사진=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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