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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 얼핏 보면 하마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정체는 바로 돼지. 여기엔 봉 감독의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다. 또 줄거리는 나의 가족 같은 반려동물 구출기라는 단조로운 서사인데, 그 메시지의 깊이는 꽤나 깊다.
봉준호 감독은 14일 열린 '옥자' 공식 기자회견에서 "옥자는 네 가지 동물을 믹스해 탄생된 캐릭터다. 돼지, 코끼리, 하마 그리고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서식하는 매너티의 생김새를 결합했다"라며 "'괴물'을 디자인한 장희철 감독이 이번에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돼지인가?' 하는 물음에 답했다. 그는 "우린 돼지를 보면 항정살, 삼겹살, 목살 등 어느 부위를 어떻게 먹을까에 대해서만 떠올린다"라며 "돼지 입장에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돼지도 그만의 자존심이 있을 것이다. 사실 돼지란 동물은 섬세하고, 똑똑한데 식품으로만 보는 것에 대해 억울할 것이다"라고 대변(?)했다.
이어 봉 감독은 "해외에서는 음식으로만 보는 우리와 달리 돼지를 애완동물로도 키우고 있다. 껴안고 자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애완동물, 식품 두 가지 시각이 동시에 떠오르는 종으로 돼지만큼 좋은 동물이 없지 않나 싶었다"라며 "이중적인 슬픈 운명을 가졌기 때문에 돼지로 설정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극 중 옥자가 마치 사람처럼 영리하게 행동하는 건 마냥 판타지가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동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등 많은 학자들에 따르면 돼지는 실제로 개보다 영리한 지능을 자랑한다. '상식오류사전'이라는 책에는 '돼지의 IQ 수치는 개 품종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진돗개의 IQ 60을 넘어선 80 수준'이라고 나와 있다. 이는 돼지가 생체 기전 및 장기조직 등이 인간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에 돼지는 배변 훈련 습득이 빠르며, 따로 만들어준 일정한 장소에서만 배설할 정도로 위생적이다. 더럽다는 인식은 돼지가 땀샘이 없기에 스스로 적정 체온으로 낮추기 위해 배설물이나 진흙에서 뒹구는 행위에서 나온 오해다. 또한 돼지의 체지방률은 15% 이하로 성인 여성(평균 20~30%)보다 낮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먹거리에 불과한 돼지. 이 가여운 운명의 돼지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냥 돼지가 아닌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 돼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봉 감독은 "육식을 반대하는 의도도, 채식주의자가 되길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돼지고기는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됐지만 나 또한 닭, 소고기를 먹는다"라며 "자연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육식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대량 도축 시스템에 대해선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돈벌이를 위해 자연 섭리마저 파괴하는 자본주의 폐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영화는 GM0(유전자변형 식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리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특히 동물을 철저히 상품화 취급, 작품의 의도에 힘을 싣는다.
극 중 옥자는 다른 슈퍼 돼지들과 달리 젖꼭지가 하나이다. 이는 다국적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가 자사 행사 '베스트 슈퍼돼지 콘테스트' 프로모션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생산 라인에 투입되는 슈퍼 돼지들의 젖꼭지 개수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옥자'는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심어준다. 봉 감독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시대에 그런데도 파괴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있다는 걸 미자(안서현)와 옥자의 관계로 보여주려 했다"라고 전했다.
국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 천만 명 시대, 이 중 강아지를 돌보는 이가 80%에 육박한다. 하지만 미자와 돼지 옥자의 교감엔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주인공 미자를 여성으로 설정해 모성애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으로 몰입감을 높인다. 더불어 산골 소녀가 거대 기업에 맞선다는 점에서 극적인 효과까지 안긴다.
'옥자'는 다국적 기업 CEO 루시 미란도,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 등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과 싸워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을 그린다. 오는 29일 국내 단관 극장을 중심으로 개봉 예정이다.
[사진 = 마이데일리 DB, 넷플릭스]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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