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누아르물의 '신세계'를 펼쳤던 박훈정 감독이 다시 특기인 장르로 충무로에 컴백했다. 2015년 사극 '대호'의 흥행 부진으로 쓴맛을 본 뒤 써내려간 영화, 바로 신작 '브이아이피'(V.I.P.)다.
사실 애초 영화가 아닌 소설로 출간할 계획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스크린에서 눈을 돌리려 했던 때였다.
"'재미없다'는 말은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비수로 꽂히는 얘기에요. 작품을 하기가 버거워져요. 꼭 '대호'의 흥행 부진 때문만은 아니고 제가 과연 상업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으로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저는 성향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거든요. 좋아하는 영화도 그렇고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런 잡생각들을 지우려고 몇 년 전에 적어놨던 '기획 귀순자' 메모지를 꺼내 들었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쓴 메모 중에 하나였어요."
그렇게 총 아홉 챕터로 구성된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기획 귀순자 김광일(이종석),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보안성 요원 리대범(박희순), 한국 경찰 채이도(김명민) 각 캐릭터의 이야기가 담긴 네 챕터와 이들이 펼치는 사건을 전개하는 프롤로그, 용의자, 공방, 북에서 온 귀빈 VIP, 에필로그 등 다섯 챕터다.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인물 챕터가 생략됐다.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져서 인물 챕터를 뺐어요. 사건 챕터가 충분히 구성이 잡혀 있기 때문에 생략해도 괜찮을 거라 봤어요. 원래 시나리오는 영화보다 정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편집한 덕분에 호흡이 빨라지고 느낌도 달라졌어요."
'브이아이피'는 '신세계'와는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극과 극 온도 차를 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신세계'를 생각하고 '브이아이피'를 보러 간다면 당황하실 거에요. '신세계'는 의리, 우정 등을 다뤄 끈적끈적하고 뜨겁잖아요. 정통 홍콩 누아르에 가깝죠.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차갑고 드라이해요. 인물들 모두 냉정하게 각자 자기 목적을 향해서만 달려갈 뿐이에요.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전혀 없이 되게 퍽퍽한 느낌으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떤 사건 안에 갇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캐릭터들을 던졌어요. 한마디로 사건이 중심인 영화죠. "
그렇지만 판이 조직폭력배에서 국가 기관간으로 확장됐을 뿐, 두 작품 모두 조직의 충돌, 암투, 권력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 같은 소재에 집중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셋 이상만 모여도 정치질을 하려고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잖아요. 서열을 정리하고 권력을 추구하려 해요. 저는 경쟁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한발짝 떨어져서 그런 남들을 지켜 보면 재밌더라고요.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정말 웃긴 게 사람들은 뭉치면 양심이 없어져요. 분명 누구나 양심이 있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봤을 때 측은지심이 발동하는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집단을 이루기만 하면 이기주의가 생겨요. 왜 그럴까 궁금증이 들고 재밌어요."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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