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테일러 쉐리던은 ‘시카리오’ ‘로스트 인 더스트’에 이어 ‘윈드리버’로 미국 국경 3부작을 완성했다. ‘시카리오’는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는 마약전쟁을 다뤘고, ‘로스트 인 더스트’는 멕시코 남부에서 금융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하층민의 강도행각을 그렸다. 각본만 썼던 앞선 두 편과 달리 감독까지 맡은 ‘윈드리버’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격하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 세 편의 공통점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이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마약, 강도, 살인으로 점점 무너져가는 미국의 아픈 현실을 송곳처럼 예리하게 찌르며 자신이 사회파 감독임을 명확히 했다.
고요한 설원 위를 맨발로 달리던 한 소녀가 피를 토하며 죽는다. 와이오밍주의 인디언 보호구역 윈드 리버의 야생동물 헌터 ‘코리’(제레미 레너)가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고, 신입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이 사건 담당자로 도착한다. 코리는 눈밭의 흔적을 통해 범인 추적에 나서고, 제인은 코리의 도움을 얻어 사건의 실마리를 잡는다.
백인의 횡포에 보호구역으로 밀려나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로 신음하던 인디언 원주민의 아픈 삶에 문제의식을 느낀 테일러 쉐리던은 폭력과 범죄가 일상화된 공간에서 스스로 ‘CSI:와이오밍’이라고 부를만큼 단서를 찾아 범인을 추격하는 스토리를 탄탄하게 구성했다. 매서운 추위와 두꺼운 눈밭에 숨어있던 살인사건의 진실은 코리의 추격이 진행되면서 하나 둘씩 드러나고 마지막에 굉음의 총격전으로 분노의 에너지를 터뜨린다.
‘윈드 리버’는 서부극의 문법을 뒤집는다. 백인과 인디언을 선과 악으로 나눴던 과거의 서부극은 ‘윈드 리버’에서 정확하게 뒤바뀐다. 미국의 역사가 원주민이 흘린 피의 댓가이고, 그 후유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강한 전류로 흐른다.
코리의 아들이 “저 카우보이 같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 아버지는 “아냐. 용맹한 인디언 같아”라고 답한다. 카우보이가 저질렀던 악행의 역사를 반성하고, 인디언이 추구했던 강인한 용기를 강조하는 이 영화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제레미 레너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고 터질듯한 슬픔을 삭히는 내면 연기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는 “눈과 지루함” 밖에 없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삶을 살아낸다. 코리의 인디언 친구 터너(길 버밍햄) 역시 울분을 가라앉히는 무표정한 얼굴로 원주민의 아픔을 대변한다.
길 버밍햄은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 인디언 출신 텍사스 경찰 역을 맡았다. 그는 “오래전 우리 조상의 터전을 빼앗았던 놈들의 후손들이 다시금 우리를 착취하고 있다”고 금융자본을 비난한다.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 비극적 최후를 맡았던 길 버밍햄이 ‘윈드 리버’에서도 피해자로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감독은 미국사회에서 인디언이 여전히 차별과 배제의 대상임을 길 버밍햄을 통해 보여준다.
‘로스트 인 더스트’의 원제는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라는 뜻의 관용어다. 그렇다면 ‘윈드 리버’는 ‘헬 오어 하이 스노우(Hell or High Snow)’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고립의 설산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고통을 인내하며 강해져야한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차가운 톤 속에서도 뜨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진 제공 = 유로픽쳐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