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최창환 기자]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야구장에 가기 싫더라. 심장이 하나 떨어져나가는 기분이다.”
은퇴를 앞둔 소감을 묻자, ‘국민타자’ 이승엽(삼성)이 남긴 한마디였다. 이승엽은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홈경기서 은퇴식을 치른다.
이승엽은 이날 3번타자(1루수)로 나선다. 올 시즌 처음 맡게 된 타순이지만, 이승엽에겐 익숙한 타순이다. 3번은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로 나서기 전, 다시 말해 전성기 시절 주로 맡았던 타순이다.
이날 경기는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한 이승엽이 선수로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다. 이승엽은 한국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한 시즌 최다인 56홈런을 쏘아 올렸고, 한일 통산 600홈런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일본과의 4강전서 극적인 결승홈런을 터뜨려 한국이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야구장에 가기 싫더라. 심장이 하나 떨어져나가는 기분”이라고 운을 뗀 이승엽은 “죽을 때까지 야구인으로 살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KBO를 위해서, 대한민국 야구 발전을 위해서 길을 찾아보겠다”이라고 덧붙였다.
-오늘 아침 기분은?
“사실 별로더라. 마지막이니까 야구장 가기 싫다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하나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야구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줬다. 받은 게 너무 많았는데 다시는 안 할 생각을 하니 많이 아쉬웠다. 어제까지는 전혀 못 느꼈다. 오늘 아침부터 뒤숭숭하고, 씁쓸했다.”
-가족들과 얘기 나눈 게 따로 있다면?
“오늘은 없었다. ‘다녀올게. 이따 보자’라고 했다. 어제 아내가 서운하냐고 물어서 ‘당연히 서운하다’라고 했다.”
-오늘의 목표는?
“어제까지는 안타나 홈런을 치고 싶었지만, 현재로선 그저 부상 없이 경기를 잘 치르고 싶다.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안타를 치고 못 치고를 떠나 23년을 잘 마무리하는 마지막 경기니까 팬들의 가슴 속에 이승엽이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전달해드리면 좋을 것 같다.”
-3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하는 감회가 새로울 듯?
“감사하다. (구)자욱이가 3번에서 5번으로 옮겼는데, 나를 위해 하루 바뀐 것이다. 감사드리고 싶다. 내가 제일 잘할 때가 삼성 라이온즈의 3번타자, 1루수였다. 라인업을 짜준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은퇴식 때 눈물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선배들의 은퇴 세리머니를 보며 가슴 찡한 순간이 있었다. 그땐 잘 참았다. 오늘 울지, 안 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상황이 와봐야 알 것 같다. 냉정하게 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은퇴사는 미리 준비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지금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생각한 코멘트를 1/10도 못할 것 같다. 야구선수로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아직까진 어떻게 말할지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보러온 팬들도 있는데?
“일본에서 8년 동안 생활하며 열성적인 팬들을 많이 봤다. 좋을 때나 안 좋을 때, 2군에 떨어졌을 때도 원정경기를 응원와주셨다. (한국에)모두 오시진 못하겠지만, 메시지를 전할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일본 팬들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였다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한다. 감사드린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나는 열심히 했지만, 일본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한다. 2군에 머문 시간이 많았다. 한국에 있을 때만큼의 폭발력은 못 보여줬다. 다만 일본은 성공이나 실패를 떠나 내가 많이 배운 무대다. 42살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서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선수생활 이후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
“정말 고민 중이다. 주위 분들과 상의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결정이 안 돼 말씀 드릴 순 없다. 공부도, 해설위원도 생각하고 있다. 다른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면 해설위원이 제일 낫다는 생각은 한다.”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고, 그리울 것 같나?
“부모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강조한 아버지, 뒷바라지를 해준 어머니 덕분에 큰 부상 없이 뛸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야구를 몰랐던 아내가 내조를 16년간 잘해준 덕분이다. 가족들 덕분에 선수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 경상도 사람이라 앞으로 말할 기회가 없겠지만, 이 자리를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다. 야구 쪽에도 많은 분이 계신다.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도자 가운데에는 처음 타자로 만들어주신 박승호 코치님, 형같이 도와주신 박흥식 코치님, 홈런타자로 만들어준 백인천 감독님, 지바롯데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정신무장할 수 있게 도와준 김성근 감독님, 돌아올 수 있게 해준 류중일 감독님, 타격코치를 맡아주셨던 김한수 감독님 등 모두가 소중하다.”
-국제대회 중요한 순간에 좋은 역할도 많이 했었는데?
“삼성 라이온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뛴 경기가 가장 많았지만, 국제무대는 ‘KOREA’를 대표해서 나가는 무대다. 작은 실수도 용서할 수 없다. 실수도, 실패도 했다. 그 와중에 극적인 안타나 홈런을 만들어냈던 것은 대한민국만의 끈끈한 선후배 관계 덕분이다. 이 때문에 중요한 순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나면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스타가 돼 행복했고, 그라운드에서 누리는 기쁨도 컸다. 다만, 스타가 되기 위해 겪은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선 보통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힘든 것, 부상 모두 참고 뛰어야 한다. 스타가 되기까지 과정이 너무 힘들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평범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이 있다면?
“팀 기록은 당연히 한국시리즈 6차전이다. 2002년이 삼성이 처음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거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56홈런이다. 50홈런을 4년 전(1999년)에 넘어섰지만, 54홈런에서 그쳤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아쉬움도 남았었다. 54홈런을 뛰어넘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56홈런을 FA 취득 시즌에, 마지막 경기에서 했다. 2003년 10월 2일의 일이었다. 만약 55홈런에 그쳤다면 다신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후회하면서 살았을 것 같다. 그 홈런이 나에겐 가장 값지고 좋은 기록이었다.”
-대구 시민야구장,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의 기억을 총정리한다면?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대구 시민야구장은 너무 낙후된 구장이었다. 라커룸에서 식사를 하고, 쉬면서 경기를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좋은 구장을 꼭 홈구장으로 쓰고 싶었다.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2년 동안 생활하며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성적이 이 정도밖에 안 돼 팬들에게 송구스럽지만, 과도기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떠나지만, 후배들이 ‘이 좋은 야구장에서 선배들이 고생하며 좋은 성적을 올렸구나’라고 느끼며 침체된 삼성 야구를 끌어올려줬으면 한다.”
-팬들은 절제된 사생활도 높이 사고 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누군가 잘못하면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잘못을 한 부분이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야구장에는 어린이들도 많이 온다. 어린이들이 선수를 보고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나도 팬들이 원하는 것을 100% 해줄 수 없다. 나머지 몫은 남은 후배들이 어린이들에게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팬들의 기억에 어떤 선수로 남았으면 하나?
“홈런 잘 쳤던 선수로 기억해주실 것 같다. 나는 모범이 됐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2008 베이징올림픽 4강에서 쳤던 홈런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3년 동안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대표팀은 한 순간 한 순간이 다 기억에 남는다. 행복하기도, 힘들기도 했다.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서도 내가 삼진을 많이 당한 후 4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쳐서 희열을 느꼈다. 졌다면 내가 가장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 베이징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야구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후배들이 그렇게 열심히 해주고 있는데, 좋은 경기를 해야 하는데 내가 외국에서 뛰다가 합류했는데 대표팀에 도움이 안 됐다. 그래서 후배들을 볼 낯이 없었다. 그 와중에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치며 이겨서 기쁘고, 행복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다 받았지만, 모든 고생은 후배들이 했다고 생각한다.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팀 멤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은사들이 은퇴 후에는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집에 있으면 지루할 것 같다. 야구선수는 워낙 출장이 많은 직업인데, 집에만 있으면 좀이 쑤실 것 같다. 골프를 좋아하긴 하는데, 집에서 보내줄지 모르겠다(웃음). 쉬면서 골프를 즐기며 다른 모습을 찾고 싶다. 안정이 되면, 일을 하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든 다시 삶을 찾을 생각이다.”
-아내가 시구를 하게 됐는데?
“집에서 5m 되는 거리에서 물렁거리는 공으로 던져보라고 했다. 곧잘 던지더라. 따로 마운드에서 연습은 안 했다. 마무리를 아내가 하는 것에 대해 구단에서 의사를 물으셨는데, 나는 흔쾌히 찬성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없을 때 시구를 하셨더라. 마무리로 아내가 시구를 하게 돼 영광스럽다. 내가 시포를 하는데, 공이 뒤로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웃음).”
-이승엽에게 야구란?
“내 인생이고, 보물이다. 야구를 제외하면, 내 이름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꿈이 야구선수여서 야구선수가 됐고, 한국 최고가 됐다. 야구를 통해 얻은 게 너무 많다. 죽을 때까지 야구인으로 살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KBO를 위해서, 대한민국 야구 발전을 위해서 길을 찾아보겠다.”
-여전히 강타자일 때 은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스스로 은퇴할 시점이 됐다. 내가 물러나겠다고 말을 안 하면, 구단 입장에서 은퇴시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너무 오래 지키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팀이 9위를 한 것에 대한 책임도 느낀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은퇴는 2년 전부터 계획했지만, 성적이 좋으면 연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떠나야 팀이 컬러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1군만 바라보며 운동하고 있는 2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다.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할 기회가 됐기 때문에 은퇴를 하는 게 맞다. 후배들이 주전이라는 자리는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잡게 되면 다시는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승엽. 사진 = 대구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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