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L~G의 이병규'는 역시 줄무늬 유니폼, 그리고 유광점퍼가 가장 잘 어울린다.
'적토마' 이병규가 쓴 전설은 영구결번 선수로 남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청구초-서대문중-장충고-단국대를 거쳐 1997년 신인 1차지명으로 LG 트윈스에 입단한 이병규. 아마 시절 '한국의 이치로'로 불렸던 그는 혜성처럼 등장해 신인왕부터 접수하기에 이른다.
1999년 전인미답의 '잠실 30홈런-30도루 클럽'이란 새 역사를 쓴 이병규는 2007년 주니치 드래곤스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2010년 LG로 복귀한 이병규는 2013년 타격왕을 차지하고 건재함을 알렸으며 2016시즌까지 1741경기에 나서 통산 타율 .311에 2043안타, 161홈런, 972타점, 147도루를 남겼다.
은퇴를 결심할 때도 "아직 자신 있다"고 말하던 사나이. 요즘 이병규는 제 2의 야구인생을 새롭게 펼치고 있다. 물론 줄무늬 유니폼이 함께 하고 있다. '영원한 LG맨' 이병규는 이제 코치로 LG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개척하고자 한다. 전설의 대물림은 이제 시작이다.
야구 구경하던 소년__처음엔 육상 선수로 뛰었다. 훈련이 끝나면 야구부를 구경하고는 했다. 당시 손용근 감독님이 '하고 싶으면 여기 와서 놀아라'고 하셨고 캐치볼하고 놀면서 점점 야구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1경기 11타점의 전설__대학교 2학년 시절 1경기에 11타점을 기록한 경기가 있었다. (1994년 4월 7일 대학야구 봄철리그 경남대전 5타수 5안타 11타점) 그리고 국가대표로 뽑혔다. 대표팀에서 뛰면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미국, 일본, 쿠바, 도미니카공화국에 엄청 좋은 투수들이 많았다. 그때 그 공을 친 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대학 때는 늘 주전이었다. 강문길 감독님이 나를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게 해주셨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미 대학교 때부터 타석에서 자신감과 여유라는 게 생겼다.
잊지 않은 감사__나는 받은 게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감사드려야 할 분들을 은퇴식에 모시고 싶었다. 야구를 시켜주신 감독님들, 그리고 부모님을 모셨다. (이병규는 청구초 손용근 감독, 장충고 유상호 감독, 단국대 강문길 감독, LG 천보성 감독을 초대했고 은퇴식 당시 연락이 닿지 못했던 서대문중 정장헌 감독은 은퇴식을 치른 뒤 연락이 닿아 찾아 뵐 수 있었다.)
LG의 마지막 신인왕__신인인데 개막전부터 경기를 뛰게 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운 좋게 신인왕도 탔다. 처음엔 프로에 와서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경기를 계속 뛰다보니까 편안해졌다. 그러다보니 신인왕도 욕심을 냈다. 주전이 아니었으면 욕심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1년 동안 잘 뛰면서 결과도 좋았다.
잠실 30-30 클럽의 전설__1998시즌을 마치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제 야구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프로에 와서 웨이트트레이닝도 체계적으로 했고 점점 몸이 좋아지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장타가 나오다보니까 자신감도 생겼다. 사실 1998년에 부진했는데 프로는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성적이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아쉬운 200안타__1999년 전반기에 무섭게 치고 나갔는데 뜨거운 여름에 지치더라. 68경기 만에 100개를 쳤다. 하지만 결국 192 밖에 못 쳤다. '200안타냐, 30-30 클럽이냐' 머릿 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경기수도 점점 줄어드니까 압박이 있었다. 홈런을 의식하니 스윙도 커졌다. 홈런이 빨리 나왔다면 200안타도 가능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도전하라면 충분히 여유를 갖고 하지 않았을까.
사라진 30홈런, 아까운 100타점__1999년 한일슈퍼게임에서 발목을 다쳤는데 곧바로 훈련소로 들어갔다. 그래서 치료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 스프링캠프에 가서도 치료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히 하체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버틴 것 같다. 내가 홈런 30개를 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 아니었을까. 2년 연속 100타점의 기회가 있었고 달성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지만 내가 실력이 거기까지 밖에 안된 것 아닐까. (이병규는 1999~2000년 2년 연속 99타점을 기록했다.)
바닥에서 올라간 한국시리즈__확실히 밑에서부터 올라가니까 너무 힘들었다. 거기에 최강이었던 해태(1997년), 현대(1998년), 삼성(2002년)을 만나지 않았나. 정말 힘겨웠다. 그런데도 이기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지금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번은 우승을 했어야 했는데….준플레이오프에 이어 플레이오프를 거치고 나면 거의 진이 다 빠진다. 3승 무패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간 것도 아니고 끝까지 가고 나서야 올라갔다. 결국 1위가 우승을 하는 것이다. 밑에서 치고 올라가는 건 정말 힘들다.
일본에서의 첫 우승__어렸을 때부터 기회가 된다면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야구를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포스팅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로 갈 기회도 있었지만 구단에서 반대했다. 이미 FA 됐을 때 내 나이가 33살이었다. 그런데 마침 주니치에서 같이 해보자고 해서 너무 좋았다. 나이가 있어 약간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도전하고 싶어서 일본에 갔다. 그때 우승을 처음 해봤다. 한국이 아니어서 서운한 것도 있었지만 우승이라는 걸 처음 맛봐서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LG 복귀, 그리고 2013년의 기회__내가 다른 데를 어떻게 가겠나. 돌아올 때도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팀이 잘 구성되면 다같이 뭉쳐서 한번이라도 한국시리즈에 가보는 꿈을 갖고 돌아왔다. 2013년 플레이오프에 올라갔지만 가을야구를 너무 오랜만에 하니까 전체적으로 긴장을 많이 했다. 어린 선수들도 많았고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웠던 것 같다. 정말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 투수__나는 선동열 선배 공도 상대하지 못했고 구대성도 상대를 몇 번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류현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가장 치기 까다로웠고 마운드에서 위압감이 있었다. 직구가 빠르면서도 공을 던질 줄 알고 강약조절도 할 줄 알았다. 모든 걸 다 갖춘 투수였다. 2010년에 우리 팀을 상대로 삼진 17개를 잡은 경기가 있었다. 그때 마지막 타자가 나였다. 대타로 나갔는데 150km 직구를 던지더라. 무엇보다 LG전에 많이 나와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L~G의 이병규__늘 감사했다. 응원가를 들을 때마다 몸이 찌릿찌릿하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타석에서 꼭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밖에서 본 야구__밖에서 보는 야구는 달랐다. 이전까지는 덕아웃 안에서만 보는 야구였다. 안에서 보는 야구는 전쟁이었다. 경기 자체만 보였다. 하지만 밖에서 여유를 갖고 보니까 야구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반대 입장에서도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타자만 했었는데 투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한 주에 3경기 중계를 하면서 그날 나오는 선발투수, 그리고 타자와 투수의 상대 전적을 찾아보면서 공부가 됐다. 선수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한 것이 코치가 되고 나서도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다.
적토마가 본 새로운 스타__타자는 이정후(넥센)가 있다. 19살 선수가 대단한 성적을 남겼다. 앞으로 좋은 타자가 될 것 같다. 투수는 함덕주(두산)와 구창모(NC)다. 함덕주는 직구와 변화구 모두 좋은 투수다. 구창모는 구위가 뛰어나다. 우리 팀에서는 유강남이 좀 더 타선에서 큰 힘이 돼야 할 것이고 김대현이 투수진의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LG의 연락__LG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코치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기회가 왔고 현장에 돌아갈 거면 빨리 돌아가자는 생각을 했다. 방송을 하다보니 현장이 그리웠다. 애들과 함께했던 그 시절 말이다. 무엇보다 LG니까 당연히 좋다고 했다.
코치이기 전에 선배이자 형__지금 있는 선수들과 오랫동안 생활을 했기에 잘 알고 있다. 나에게 기술적으로 힘든 부분에 대해 문의할 수 있고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위치인 것 같다. 나는 코치이기 전에 선배이자 형이다. 선수들이 먼저 다가왔으면 좋겠고 고민거리를 안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병규가 꿈꾸는 코치 이병규__지켜봐주는 코치가 되고 싶다.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지켜보면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프로 선수면 어느 정도 기술이 다 있다. 그것은 극대화시키는 게 코치들이 할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멘탈이다. 마인드컨트롤만 잘 해주면 좋을 것 같다. 폼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선수 때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다. 중요한 한 포인트를 두고 '이렇게 해볼까?'하면서 대화를 많이 하고 싶다. 어려운 것 같지만 쉬운 것이기도 하다.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다 가질 수 없다. '이렇게 해'라고 말하는 건 옛날 방식이다.
LG 후배들이여__후배 선수들이 일단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할 줄 아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그 말만 해주고 싶다.
[이병규 창간인터뷰.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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