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마이데일리가 창간한 2004년, 프로농구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KBL 출범 후 처음으로 자유계약제가 도입돼 크리스 랭, 자밀 왓킨스, 애런 맥기 등 특급 외국선수들이 대거 첫 선을 보인 것. 특히 단테 존스는 안양 SBS(현 KGC인삼공사)를 사상 첫 15연승으로 이끄는 등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신선하고, 강력했던 바람은 아마도 신인 양동근(36, 180cm) 아니었을까. 양동근은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흉작'이라 평가받은 2004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무대에 데뷔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세간의 평가를 뒤집었다. 양동근은 이후에도 소속팀, 대표팀을 오가며 뛰어난 기량과 성실한 자세를 유지하는 등 KBL을 대표하는 스타로 롱런하고 있다.
양동근이 프로무대에 데뷔한 이후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마이데일리는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양동근을 만나 숫자를 통해 커리어를 돌아보는 한편, 앞으로의 선수생활에 대한 포부도 들어봤다.
▲1.'신의 한 수'가 된 1순위
현대모비스가 2003-2004시즌(당시 모비스) 단행한 트레이드는 팀 역사는 물론, 리그의 판도를 뒤엎은 '나비효과'로 이어졌다.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이탈한 현대모비스는 우승을 노린 전주 KCC에 R.F. 바셋을 내주는 대신, 무스타파 호프와 2004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넘겨받았다.
현대모비스가 KCC에게서 받은 드래프트 지명권은 25% 확률 속에 1순위로 이어졌다. 현대모비스는 고심 끝에 한양대 출신 가드 양동근을 선발했고, 이는 명가 재건의 초석이 될 수 있었다. "포지션이나 기량은 양동근과 이정석이 비슷했지만, 기왕이면 잘생긴 양동근이 스타성이 있다고 봤죠"라는 게 당시 현대모비스 관계자의 코멘트였다.
"1순위로 선발돼 기분은 좋았죠.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전체 1순위였잖아요. 1순위로 선발된 모든 선수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하지만 '최악의 드래프트'라고 불려 주목을 받진 못했어요. 그게 더 기억에 남아요. '만약 지명권 교환이 없었다면?'이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가정은 해봐야 소용없는 거라 생각해요. 제가 어느 팀에 갔을지, 어떤 커리어를 쌓았을지 모르죠. 다만, 현대모비스에 와서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니 전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생각은 들어요."
▲2.2번에서 1번으로
양동근을 선발하며 체질개선의 첫 걸음을 뗀 현대모비스는 2003-2004시즌 종료 후 5대 감독으로 유재학 감독을 임명했다. 현대모비스의 명가재건을 이끈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양)동근이는 제가 포인트가드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선수였어요. 처음에는 정통 포인트가드가 아니었죠. 2번(슈팅가드)이었는데, 1번(포인트가드) 역할을 맡기려고 했고, 그래서 동근이와의 첫 만남 때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유재학 감독의 말이다.
양동근은 이전까지 실업농구나 KBL에서 활약한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과는 다른 스타일의 가드였다. 보다 공격 성향이 강했다. 양동근은 현대모비스 입단 후 유재학 감독의 조언이나 쓴 소리를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지적받은 부분을 농구일기에 적으며 자신을 돌아봤고, 몸 관리에도 충실하게 임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동근이는 감독님의 충고를 포스트잇에 적어 화장실, 천장, 벽 등 자신의 시야가 닿는 곳곳에 붙였어요. 단순히 메모만 있는 게 아니라 공 투입할 때 궤적을 점선으로 그려 넣을 정도였죠. 몸 관리 때문에 피자도 안 먹어요"라며 양동근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양동근은 1번이나 2번 등 포지션을 세분화시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번 얘기를 많이 하시지만, 저는 대학 때도 1번을 맡았어요. (김)승현이 형이나 (주)희정이 형, 이상민 감독님과는 다른 유형의 가드였을 뿐이죠. 엄밀히 말해 2번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굳이 포지션을 나누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전)준범이와 뛰면 제가 1번이 되는 거고, (박)경상이와 뛸 때는 2번을 맡을 수 있어요. (김)시래와 뛸 때도 마찬가지였죠. 포지션을 번호로 나누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1번보다 어시스트 많이 한 선수의 포지션은 뭔가요?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의 포지션은 뭐죠? 1번이라고 공격적으로 하지 말라는 얘기 안 하잖아요. 2번도 슛만 던지는 포지션이 아니고요. (포스트잇에 공의 궤적까지 그렸던 일화를 전하자)그러면 제가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제가 패스를 워낙 못하다 보니…. 통산 어시스트가 많은 건 단순히 오래 뛰어서일 뿐이에요. 평균 기록은 낮은 편이잖아요. 다른 형들에 비해 전 임팩트가 많이 부족한 선수라 생각해요."
▲3.사상 첫 3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
현대모비스는 2012-2013시즌을 시작으로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KBL 사상 최초의 사례였다. 양동근-김시래-문태영-함지훈으로 이어지는 '판타스틱4'에 외국선수들의 활약까지 묶어 2012-2013시즌 우승을 차지한 현대모비스는 이후 창원 LG, 원주 동부(현 DB)의 도전도 잠재우며 KBL의 새 역사를 썼다. 당분간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또한 양동근은 KBL 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MVP에 3차례 선정된 선수이기도 하다. 2006-2007시즌에 생애 처음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됐고, 모비스가 3연패를 달성한 기간에 2차례(2012-2013시즌, 2014-2015시즌) 더 타이틀을 품었다.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한 팀의 멤버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LG와 붙을 때만 접전이었고, 이외의 2번은 여유 있게 우승을 했잖아요. 그 정도로 팀 전력이나 멤버 구성이 좋았죠. 양우섭(LG)이 전담 수비할 때 고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많이 넣는 것보다 중요한 건 팀이 이기는 거잖아요. 그때도 우승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물론 제가 그 부분을 이겨냈다면, 시리즈도 더 빨리 끝낼 수 있었겠죠. 챔프전 MVP는 제가 아니라 팀이 잘해서 받았던 것이고요. (4번째 타이틀도 도전해볼만하지 않나요?)그건 바라지도 않아요. 앞으로 안 다치고 잘 뛸 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4.역대 최다 정규리그 MVP 4회
양동근은 KBL에서 가장 많은 정규리그 MVP 트로피를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현대모비스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끈 2005-2006시즌 서장훈(당시 삼성)과 사상 최초의 공동 MVP로 선정된 양동근은 2006-2007시즌에 역대 2호 2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양동근은 이후 한 번 더 2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며 새 역사를 썼다. 2014-2015시즌에 이어 2015-2016시즌에는 전태풍(KCC)을 1표차로 제치며 MVP로 선정된 것. 양동근에 이어 김주성(DB), 서장훈(전 kt), 이상민(전 삼성)이 각각 2회 수상으로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MVP는 정규리그 우승 팀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고, 제가 동료들보다 기록이 조금 더 높아서 MVP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만 잘한다고 받을 수 있는 타이틀은 아니죠. 가장 의미 있는 MVP는 2006-2007시즌이었어요. 통합우승을 처음 했던 시즌이었고, 군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시즌이에요."
▲5.양동근의 베스트5
양동근은 데뷔 후 현대모비스에서만 정규리그 543경기를 소화했다. 이 기간 동안 1군 엔트리에 함께 이름을 올렸던 동료는 총 80명이었다. 상대팀으로 맞대결한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수백명에 달할 터.
양동근에게 이 가운데 베스트5를 꼽아달라고 전했다. 그는 "외국선수는 1명만 넣을게요"라는 전제를 달고 베스트5를 선정했다. 포지션은 양동근이 언급한 순서대로 정리했다. 밑으로 갈수록 고민한 시간이 길었다는 의미다.
-센터 서장훈(전 kt) : "누가 봐도 (서)장훈이 형이 최고의 센터 아닐까요? 여러 항목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죠. 센터인데 슛도 굉장히 좋았잖아요. 슈팅능력이 좋으면, 포지션 때문에 슛을 못 던지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파워포워드 크리스 윌리엄스(전 오리온) : "말이 필요 없는 선수였죠. 슛이 약점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래도 종종 3점슛도 던졌어요. 그런데 굳이 슛을 안 던져도 25득점 정도는 할 수 있었죠. 워낙 장점이 많은 선수였잖아요. 제가 성장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줬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선수들과 부딪쳤는데, 윌리엄스가 유럽리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많이 알려줬어요. 윌리엄스를 만난 것도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포인트가드 김승현(전 삼성) : "임팩트만 놓고 보면 승현이 형이죠. 막는 게 쉽지 않았던 선수예요. 공을 잡고 있으면 '이 형 또 뭘 하려고 할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반대로 제가 공을 잡고 있을 땐 긴장해야 했죠."
-스몰포워드 김동우(전 삼성) : "(김)동우 형은 대학 선발로 함께 생활했을 때 실력이 굉장했어요. 제가 꿈꾸는 3번이 딱 동우 형이었죠. 키가 큰데다 슛 거리가 길고, 미스매치도 잘 유도하는 선수였어요.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스몰포워드의 실사판이었다고 생각해요. 부상이 너무 아쉽죠."
-슈팅가드 김효범(전 현대모비스), 조성민(LG) : "아…. 이건 정말 1명만 꼽을 수 없네요. 둘 다 해주세요. (김)효범이는 저희 팀이 잘 될 때, 힘들 때 항상 함께 했던 동료라 기억에 남아요. 저희 팀에서 다시 만나 엄청 반가웠는데, 금방 떠나게 돼 서운했죠. (조)성민이도 마찬가지고요. 대학, 대표팀에 걸쳐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함께 해왔거든요. 둘 다 슛이 좋고, 수비도 열심히 하는 슈팅가드죠."
▲6.등번호 6번의 영구결번, 당연한 수순?
양동근은 KBL에서 등번호 6번을 사용한 선수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선수다. 전신 부산 기아 시절 포함 현대모비스에서 양동근 이전에 6번을 썼던 선수는 정인교, 이영주, 심상문 등 3명 있었다. 현대모비스에서 양동근의 등번호가 영구결번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닐까.
"대학시절에도 1~3학년 때 6번을 썼어요. 4학년 때는 10번을 사용했고요. 프로에서도 10번을 쓰고 싶었는데, 입단했을 땐 선배(우지원)가 사용하고 있는 번호였죠. 남아있는 번호가 3번, 6번이었는데 감독님이 6번을 쓰라고 하셨어요. 나중에 우연치 않게 감독님의 현역시절 영상을 봤는데, 감독님도 6번을 쓰셨더라고요. (현대모비스에서 6번의 영구결번은 사실상 확정이겠죠?)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요(웃음)."
▲7.현대모비스의 4강 진출 행진, 7시즌 연속도 가능?
현대모비스는 함지훈이 시즌 막판 군 제대한 2011-2012시즌을 시작으로 지난 시즌까지 6시즌 연속 4강 이상의 성적을 이어왔다. 이는 DB가 보유하고 있던 5시즌 연속 4강을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6시즌 연속 4강 이상'은 기록 이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KBL은 특성상 외국선수 1명에 의해 판도가 좌우되는 리그지만, 현대모비스는 그 와중에도 꾸준히 정상권 전력을 유지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만, 올 시즌 초반은 예년만큼 단단하지 못한 모양새다. 유재학 감독 역시 "아직 (함)지훈이나 (이)종현이가 외국선수들과 뛸 때 움직임이 답답한 부분이 있어요"라고 견해를 전했다. 7승 8패로 공동 5위에 머물러있는 현대모비스는 전력을 정비, 2017-2018시즌에도 4강 이상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저희 팀은 어떤 선수가 들어오더라도 전력이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이 있어요. 그 틀이 워낙 잘 만들어져있고, 선수 구성에 큰 변화도 없었기 때문에 꾸준히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종종 군 입대하는 선수가 있긴 했지만, (전)준범이처럼 좋은 선수들도 수급이 됐죠. 감독님은 항상 기본을 강조하세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박스아웃처럼 기본적인 부분들에 의해 승부가 갈릴 수 있다고 하시죠. 올 시즌은 실점이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수비를 버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어떤 선수라도 부상 없이 끝까지 시즌을 치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좋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죠."
[양동근. 사진 = 마이데일리DB, KBL 제공, 현대모비스 농구단 제공]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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