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배우 정성화의 '팬텀'은 그간 보여졌던 팬텀과는 확실히 다르다. '야수형 에릭'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팬텀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결이 다르다고 할 만큼 다른 팬텀과는 다른 정성화만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뮤지컬 '팬텀'은 세계적인 추리 소설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Le Fantôme de l'Opéra)'(1910)을 원작으로 한 작품.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극장 지하에서 숨어사는 슬픈 운명을 가진 '오페라의 유령' 팬텀, 에릭의 인간적인 면에 집중한다.
정성화는 "'팬텀'이 삼연 째다 보니까 부담감도 꽤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간 '팬텀'을 거쳐간 배우들이 워낙 훌륭하게 소화해 부담감이 생겼다고.
그는 "어쨌든 나는 굉장히 다른 결의 에릭을 연기하다 보니까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부담감도 많았고, 혹시라도 관객들이 안 좋아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며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그렇다 보니까 초반에는 에너지를 많이 썼다"고 밝혔다.
"그동안 에릭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유악하고 좀 잘못 건드리면 깨질 것 같고 그런 예민형 인간이라고 생각 한다면 저 같은 경우 조금 '야수형 에릭'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지하 세계에서 묻혀 살면서, 부모님의 사랑이 결핍된 인간으로 살면서 보통 어떻게 인격이 형성돼 왔을지 생각한다면 배우별로 여러가지 설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정성화는 에릭을 거칠게 표현했다. 유약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지하 세계에서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 않은 일종의 서투름을 표현하고 싶었다. 떄문에 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에릭이 그려졌다.
"사실 에릭의 이미지가 그동안은 약간 젊은 사람이 해야 하는 역할이었는데 마흔살이 넘은 사람으로서 관객들이 어떻게 믿어주실까 고민했고, 그런 부분에서 결이 많이 다르긴 하다"고 전한 정성화는 "때문에 '팬텀'을 이미 본 관객이라면 개인적으로 내가 연기하는 에릭이 약간 괴리감이나 이물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제 공연을 처음 보러 오시는 분들에게 제가 하는 에릭을 어떻게 잘 세울 것인가만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담감도 있었지만 '팬텀'에 꼭 출연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이었고, 캐릭터의 내면에도 이끌렸다.
"음악적 요소가 훌륭하고 제 음역대와 잘 맞는 작품이기도 해요. 이렇게 덩치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때는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팬텀'의 팬텀 역은 대한민국 남자 배우라면 마다할 수 없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배우가 자기 나름대로의 퍼포먼스를 펼치면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생길 거예요.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름대로의 평가를 받고요."
정성화는 에릭이라는 역할 자체에 약간의 편견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굳어진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연기하는 에릭이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그걸 깬다기보단 다른 쪽으로 제안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쪽으로 생각을 하면서 연습했다"며 "배트맨을 연구했다.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더라. 전작인 '웃는 남자'도 일조했고, 좀 웃길 수도 있는데 외형적인 이미지는 개인적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지하 세계에 살고 있는 느낌보다는 그 안에서 신비롭게 살고 있는 느낌이라면 전 정말 지하 세계로 들어가면 이런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괴물적인 이미지를 생각했죠. 오페라에 미친 괴물 같은 느낌이요. 그것이 제가 표현했을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표현하면서 관객 여러분들에게 어필할 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어떤 결핍을 느꼈느냐였어요. 그 결핍이 느껴진다면 성공이죠."
정성화는 "결핍이 있는 인물에 좀 끌린다"고 했다. 표현이 다채롭고 입체적이기 때문에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것. 그 사람이 자라온 배경과 사상, 철학이 내면에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이 재미있고, 그래서 더 선호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정성화는 결핍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시절 결핍을 느꼈다고. '중간'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그에게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시절은 중간 어디쯤이었기 때문에 결핍이 더 크게 다가왔다.
"중간의 정점이었던 것 같다. 아예 꼴등을 하면 했지. 웃기지도 않고 안 웃기지도 않았다. 잘 생기지도 않았고, 못 생기지도 않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밝힌 정성화는 "그러다 보니 그런 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자존감도 낮았고, 어디 가서 그걸 들킬가봐 힘들었다. 그런데 뮤지컬에서 그걸 극복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나도 여기서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구나', '내 삶이 어떻게 살면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구나'를 뮤지컬 하면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그 전에 느꼈던 결핍은 지금의 에릭을 함에 있어서 굉장히 많이 참고가 되죠. 물론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연기와 노래예요. 그만큼 예민하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해요. 어떻게든 내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에 올라가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고, 그런 부분이 인간승리를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극중 정성화는 캐릭터 특성상 늘 가면을 쓰고 있다. 이는 묘하게도 정성화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하고, 작품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정성화는 "가면 안의 표정이 관객들에게 보일 때 이 작품이 가장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고, 연기도 그렇게 해야 한다"며 "그래서 이 가면은 오히려 없지만 있는 것보다 더 강한 거라고 생각한다. 표정이 안 보이지만 표정이 더 잘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서 몸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해요. 오페라를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외형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의 절실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했죠. 그렇게 하다보면 관객들이 제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어느 정도 예상해요. 그 예상치가 분명해졌을 때 좋은 연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에릭이 느끼는 결핍들이 관객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위로하고 치유했으면 좋겠어요."
깊은 고민 끝에 탄생시킨 정성화 만의 팬텀이기에 이제는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표현하는 팬텀이 관객 여러분들에게 어필 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오로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선으로만 공연이 흘러가면 좋겠다.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가면 불편한데 나오면 시원하듯이 연기도 마찬가지다. 깊숙이 들어갔다 나오면 말할 수 없는 개운함이 있다"고 설명했다.
"웬만한 사람들이 공연을 보더라도 공감가는 연기를 하고싶어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위한 연기가 있을 수도 있고 내가 하는 개인적인 고집스러운 연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가는 연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연구도 많이 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해요. 어려운 일이죠. 그런 연기를 꼭 하고싶어요. 또 나이와 상황에 맞는 발전을 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발성도 바뀌고 발성할 수 있는 힘도 바뀌는데 바뀌는 것에 맞춰 즐길 수 있는 굿 초이스를 했으면 좋겠어요."
뮤지컬 '팬텀'. 오는 2월 1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정성화.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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