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씨끌벅적 윤중로 벚꽃 한마당
대한민국 봄은 언제나 남녘에서 출발해서 서울 영등포구(채현일 구청장) 여의도에서 활짝 피는 것 같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서울 사람들은 봄꽃 소식이 들리자마자 ‘여의도 벚꽃 축제’ 개최 시기를 대화의 장(場)으로 이끌어냈다. 날씨에 따라 벚꽃 개화 시기도 변수가 큰 만큼 내기를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4월 5일 개막식을 필두로 제 15회 영등포 여의도 봄꽃 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윤중로 벚꽃 축제에서 여의도 봄꽃 축제로 이름이 바뀐 것 만큼 축제 내용도 회를 거듭할 수록 다채로워졌고, 올 봄에도 서울시민들 가슴에 쉼표와 느낌표를 가득 찍어 놓았다.
영등포구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축제에서 여의도 봄꽃 축제는 언제나 으뜸을 차지한다. 아름다운 봄꽃과 젊은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제15회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확실히 달랐다. 윤중로와 여의서로, 그리고 한강공원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공연 예술은 신명과 흥이 가득했고, 지역예술동호회의 다양한 공연·전시·홍보·체험행사들은 상춘객 마음을 충분히 흔들어 놓았다. 4월 5일 (금) 오후 5시 경, 축제장 일대에서 영등포문화원 주부취타대가 팡파레를 울리고 이와 더불어서 다양한 개막식 행사가 펼쳐졌다. 예술무대 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과 브라질 음악밴드 라퍼커션이 흥을 돋우더니 ‘새봄맞이식’에서 개막 첫날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 올랐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봄꽃무대는 봄꽃 만큼이나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성악가 안갑성, 뮤지컬배우 김민주, 안은미컴퍼니와 영등포구민 “청춘땐스”, 볼빨간 사춘기, 강산에, 김태우 같은 내로라 하는 예술인들이 무대를 꽉 채웠다.
그리고 개막 이틀째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콘텐츠로 채워졌다. 극단 경험과 상상, 예술마당 시우터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담은 공연을 선보여 봄꽃 나들이 나온 이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주었다.
진해 군항제와 더불어 여의도 봄꽃 축제는 대한민국 대표 봄 축제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여의도에는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 1,886주를 비롯, 진달래, 개나리, 철쭉, 조팝나무, 말발도리 등 13종 87,859주의 봄꽃이 만개한다. 넓게 탁 트인 한강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지역축제 전문가로서 영등포를 콘텐츠로 하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조금만 더 가미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좋은 문화예술축제가 될 것이다.
1년 365일 크고 작은 축제가 가득한 영등포구
지난 3월1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는 다른 해와는 좀 달랐다. 채현일 영등포 구청장이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올라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뮤지컬 형식으로 꾸며진 대한독립만세 운동 재연행사도 이채로웠지만 채현일 영등포 구청장이 눈에 띄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뜨겁게 대한민국 독립을 외쳤던 그때의 열기를 재현하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기린 점은 누가 봐도 엄지 척!이다.
독립유공자 유족, 지역 주민 등 약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오후 1시 오케스트라 및 나라사랑 플래시몹 공연을 시작으로 개회식,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3.1절 노래 제창, 독립선언문 낭독, 대한독립만세 운동 재연 순으로 진행됐다. 마지막은 주민들과 다 같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외치면서 일제탄압에 맞섰던 100년 전 3·1 운동의 감동을 선사했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영등포역과 현재 당산역 주변인 당산리에서도 3.1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나 남녀노소 모두 한마음으로 독립을 외쳤다.”며, “100년 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까지 않으셨던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을 기억하며 구민 여러분과 함께 손잡고 새로운 영등포 100년의 역사를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는 영등포의 미래 청사진이 아닐까 싶다.
사실 영등포는 크고 작은 행사와 기념식이 365일 연이어 열리는 축제의 도시다. 얼마 전인 6월 15일 선유카페거리에서 지역 내 청년예술가와 청년상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축제 ‘2019 영영페어’가 열렸는데 예상 외로 큰 성황을 이뤘다. ‘영영페어’는 ‘영등포구의 젊은(young) 페스티벌(festival)·박람회(fair)’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등포구 관내 청년예술가와 청년상인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고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며 즐기는 ‘젊음의 축제’로 올해 처음 선였다. 영등포 청년예술가와 상인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과 구민이 교류할 수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축제라 여겨진다. 젊은이들의 축제답게 축제 프로그램도 참신했다. 청년들의 상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전시쇼룸을 시작으로 △청년브랜드 개별부스 △공연무대 △체험존 △포토존 △게임존 등으로 구성되었고, 광장에 설치된 공연무대는 또한 싱싱했다. 감미로운 목소리의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 김휘중씨의 공연과 청년들이 구민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토크콘서트가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 올렸는데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영영페어’는 영등포구 각지에서 빛을 내고 있는 청년 상인들과 예술인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음의 축제”라며 “앞으로도 청년들이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을 마음껏 키워나갈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강 남쪽의 첫 서울이라 불렸던 영등포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은 한강 북쪽과 한강 남쪽으로 구분되어 불려졌다. 서울특별시 한울타리에 살면서도 한강 북쪽은 서울 사람, 한강 남쪽은 영등포 사람으로 불렸다. 영등포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 마포 종로 등으로 가면 서울에 갔다고 하고, 반대 방향이면 영등포에 왔다고 했다. 1970년대의 영등포구는 서울 한강 남쪽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기도 했고, 또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울과 맞서는 독립된 도시로 인식되었었다.
그러다 관악구가 따로 살림을 나간 1973년을 기점으로 영등포구는 큰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관악구에 이어 강서구와 구로구가 1977년과 1980년에 각각 살림을 차려 나가면서 영등포구 땅은 작아졌다. 허나 땅은 줄어들었지만 인구밀도는 더 높아졌고 영등포역과 영등포 시장 주변의 땅값은 명동에 버금갔다. 영등포역과 그 언저리는 교통의 요지였고 영등포구는 한강이남 지역의 산업, 경제,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좀 부풀려서 말하자면 한강 남쪽에 난 철도와 길은 모두 영등포역과 그 앞마당을 지나고 있었고 강남지역에 사는 사람들 거개가 영등포 시장에서 장을 봤다. 뿐만 아니라 영등포구와 구로구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 바 여가활동을 하는 것이 영등포역 부근이었기에 영등포는 그 자체로 경제.문화 브랜드였고,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여의도 대한민국의 중심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도시 한 곳을 꼽으라면 당연히 여의도다. 국회의사당 덕분에 정치 1번지로 불리고, KBS. MBC. SBS 방송사 덕분에 언론의 구심점이라는 대접을 받는다. 방송사 규모가 커지면서 상암동으로 대거 이전을 했지만 여전히 여의도 하면 KBS. MBC. SBS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또 여의도는 증권거래소와 증권회사가 밀집되어 있어 대한민국 금융 중심지라고도 불린다. 금융감독원, 전경련, 한국통신 등등이 자리한 여의도는 얼핏 생각하면 영등포와는 별개의 지역이다 싶다. 여의도 주민들은 여의도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는데 여의도 지명 유래를 파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문헌에 따르면 여의도가 조선시대에는 양화도·나의주 등으로 불렸다. 그런데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에 있던 ‘양말산’ 때문에 여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홍수가 나면 양말산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가 머리를 살짝 내밀기도 해서 쓸모없는 섬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우스개 소리로 “너나 가져라” 하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르던 것이 한자화 되어 여의도가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어 여의도정이라고 하였으며 1943년 영등포구역소에 속하였다가 1946년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동이 되었는데 여의도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16년 간이비행장을 건설 당시였다고 한다. 김포비행장 건설 후에도 여의도 비행장은 그대로 존속되어 미국 존슨 대통령 방한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서 국빈을 맞았다. 그러다가 1968년에 서울시에서 윤중제(輪中堤)공사를 착공한 뒤 오늘날과 같이 상업·금융업무·주거지구로 발전하게 되었고, 1970년에 서울대교, 1981년에 원효대교가 완성되면서 여의도의 비중은 크게 높아졌다.
하나 쯤 더 있었으면 하는 축제
요 몇 년 사이 전국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공모전이 활성화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각 지역의 원형질을 발굴하여 스토리텔링화 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여의도를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역사 축제가 하나 쯤 만들어진다면 영등포구를 살찌우는 문화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보든 아는 만큼 보게 마련이다. 나라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여의도의 몇배”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고 있는데 여의도를 더 많이 알게 되면 이런 말이 귀에 더 쏙 들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5.16 광장이 여의도 공원으로 변한 것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상징이다. 여의도 공원 변천사와 이 안에 들어 있는 무수한 이야기만으로도 착하고 좋은 축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축제는 모름지기 역사와 사람의 향기로 이뤄지는 법.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이 앞으로 얼마나 착한 축제를 많이 구현해 낼 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필자 소개
함양 산삼축제 총감독
보성다향대축제 총감독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총감독
남해 보물섬마늘축제 총감독
양구배꼽축제 총감독 ... 外 다수 역임
서울정원박람회
사랑의 행복콘서트 가요제
김제 효(孝) 콘서트
김정연의 효(孝).행복 콘서트 .. 外 다수 연출
축제관련 방송. 포럼 패널. 강연 활동
KBS. TV 조선. MBN 등 토크쇼 출연
(現)2019관악강감찬축제 총감독
(現)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위원장
(現)파주시 정책 자문위원 (문화경제분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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