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한국 최초의 전국적 축제
1931년 춘향제향을 모태로 한 남원 춘향제는 한국 최초의 전국적 축제이자 최고령 축제로 89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첫 춘향제향이 열렸던 1931년은 일제의 만행이 판을 쳤던 시절이다. 우리말과 글은 물론 민족문화를 모두 뿌리 뽑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때, 우리 고전 문학 춘향전의 본향인 전라북도 남원에서 춘향의 절개를 기리는 춘향제향이 거행됐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박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말로 불러야 제 맛인 판소리를 일본어로 불려야 했던 시절, 일제에 굴복하기 싫어 소리를 놓아버린 명창도 많았고, 또 기생학교인 권번에서 우리 소리를 가르치며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문화의 설 자리가 빈약했던 때, 남원 유지(이현순)와 남원 권번(이백삼)이 주축이 되어 춘향 사당을 건립하기로 뜻을 모았고, 평양, 진주, 동래 권번이 자진해서 기부금을 내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1931년 음력 오월 오일 단오 날에 준공식을 겸해 첫 춘향제향을 올릴 수 있었다.
첫 춘향대제는 참으로 장관이었다. 남원뿐만 아니라 평양 ,진주, 동래 권번에서 출장 온 기생 62명 모두 하얀 소복에 옥비녀를 꽂고 하얀 족두리를 쓰고 제관으로 나섰다. 여성제관들이 제향을 주관하니 일제도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제지를 안 했고, 그 전통은 쭉 이어졌다. 춘향제향은 춘향의 절개를 민족독립정신으로 승화 시켜 규모가 커졌는데 광복 이후에는 명창을 배출한 소리꾼의 산실로 거듭났다. 남원 춘향제의 중요한 콘텐츠인 ‘춘향국악대전’은 심사의 공정성을 확보한 명인명창의 등용문으로 조상현 명창을 비롯해 성창순, 남해성, 안숙선 등 우리시대 최고의 명창을 배출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남원 춘향제는 지금도 여성제관이 주관하는 춘향제향을 필두로 시작된다. 전국 지역 축제에서 유일하게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축제인 셈. 그런데 이런 가슴 벅찬 내력을 품고 있는 남원 춘향제가 속 빈 강정,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매년 춘향제향을 시작으로 남원 춘향제가 열리고 있지만 찬란했던 옛 명성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핀잔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설마 했는데 객관적인 성적표를 보니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빛을 보지 못하는 89년 역사
89년 역사를 자랑하는 남원 춘향제의 위상이 초라하다. ‘2019년 문화관광축제’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 즈음에 선정되는 ‘문화관광축제’가 지역축제 줄 세우기 일환이라는 의견도 물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평가를 존중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전라북도는 ‘2019년 문화관광축제’ 선정에서 전국 2위라는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무주반딧불축제와 김제 지평선축제는 글로벌 육성축제로, 임실N치즈축제는 우수축제로 선정되었고 순창장류축제와 고창모양성제, 완주와일드푸드축제는 유망축제로 자리매김되어 전라북도 입장에서 보면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89년 역사를 자랑하는 남원 춘향제가 빠져 있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우리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판소리 춘향전이 세계인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영국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대한민국에 성춘향과 이몽룡이 있다고 할 만큼 춘향의 러브스토리의 명성이 높다. 그런데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춘향’을 콘텐츠로 하는 남원 춘향제는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가성비가 낮아도 한참 낮다.
남원시(이환주 시장)에 따르면 춘향제 방문객은 지난 2015년 18만 1.810명, 2016년 21만2,000명, 2017년 22만 7,465명, 2018년 16만 8,292명이었다. 지난해 축제기간 광한루원 입장객이 10만 8,563명이었고, 올해는 10만 9,838명으로 집계 되었다. 이를 놓고 볼 때 올 해 남원 춘향제를 찾은 방문객은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반면 남원과 바로 맞닿아 있는 임실 지역 축제 ‘임실 N 치즈축제’는 2018년 축제기간 4일 동안 27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발표됐다. 또 김제 지평선축제 역시 지난해 축제기간 동안 43만 명이 찾은 것으로 집계 됐다. ‘임실 N 치즈축제’ 축제 역사는 5년, 김제 지평선 축제 역사는 20년에 불과한데 89년 역사를 지닌 남원 춘향제가 힘을 못 쓰고 있다는 건 지역 축제 총감독 김종원의 촉으로 볼 때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다양했던 2019 남원 춘향제 콘텐츠
2019 남원 춘향제 콘텐츠는 제법 풍성했다. 5월 8일부터 5월 12일까지 5일간 '광한춘몽(廣寒春夢) 사랑에 빠지다'란 주제로 80여편의 각종 공연과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관람객을 맞았다. 예년과 달리 올 해 열린 춘향제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를 이루고자 꽤 심혈을 기울인 것 같았다.
공연예술축제로 춘향선발대회, 길놀이, 방자춤판, 춘향국악대전 등의 대표프로그램과 더불어 가족관광객을 위한 몽룡놀이터, 버스킹공연, 공개방송, 시민화합한마당 등 신규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특히 의전에 주력하는 기념식을 없애고 서커스, 비보이, DJ, 줄타기를 과감히 도입했다. 올해 신설한 <몽룡놀이터>는 5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 동안 광한루원 정문 일원에서 펼쳐졌는데 가족 단위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이 선보였다.
국내 최정상급 복화술사가 펼치는 ‘복화술쇼’, 만화의 한 장면처럼 다양한 요술풍선으로 만들어지는 ‘마술풍선쇼’, 어린이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는 ‘창작인형극’, 풍선아티스트의 ‘길거리 퍼포먼스’, 신비로운 요술 지팡이를 든 마술사, 외발자전거 아티스트 공연이 어린 관람객 눈길을 사로잡았다.
올 봄 2019 남원 춘향제 기간 동안 축제장을 찾는 관람객을 위해 남원시가 ‘무료순환버스 운행했다. 축제, 편안하게 즐기라고 주생비행장과 춘향골체육공원을 오가는 셔틀버스 3대를 운행했다. 축제 첫날인 5월 8일은 오후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운행했고, 5월 9일부터 12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11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손님맞이를 했다.
춘향제 하이라이트인 춘향선발대회도 성대히 열렸다. 특히 1년에 한번 남원 춘향제때만 개방하는 남원 광한루원에서는 방자를 데리고 광한루원에 구경 나온 이도령이 읊은 적성가(赤城歌)를 춘향제 제전위원장인 안숙선 명창이 들려줘서 큰 의미가 있었다. 한편 한국 최고 명인명창 등용문인 ‘춘향국악대전’도 열기가 뜨거웠다.
또 마지막 날인 12일에 열린 ‘춘향골 열린음악회’도 춘향제의 백미가 될 수 있도록 출연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장윤정, 김연자, 김혜연, 청하, 엔플라잉, 현진영, 성진우, 카밀라, 오로라,진해성, 조은성, 태하 등 많은 가수들을 초대해 축제분위기를 북돋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흥행했다고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남원 춘향제 키(KEY)는 누가 쥐었나?
사공이 많은 배는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간 배는 제 구실을 못하고 방치되기 마련, 지역 축제도 거친 바다를 운행하는 배와 다르지 않다. 남원 춘향제는 남원시 조례로 만들어진 춘향제전위원회(안숙선 위원장)가 주관한다. 제89회 남원춘향제도 관례대로 춘향제전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진행했다. 그런데 남원시가 소속 공무원 12명을 제전위로 파견했다고 들었다. 겉으로는 <춘향제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축제를 진행했지만 속으로는 관 주도의 축제였을 터! 올 해만 이런 것이 아니라 매년 그랬을 것이라고 본다. 지역축제 총감독 경험상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더라도 반영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지역 축제 총감독직을 맡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축제를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꾼다. 그러나 이런 꿈도 잠시, 축제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주도권 싸움이 총감독의 권한을 흔들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다. 축제장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해 관람객의 눈높이를 맞춘다해도 관의 입김이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남원 춘향제 역시 콘텐츠는 많았지만 이외의 것은 부족했을 것이라 본다. 한 예로 먹을 게 없었다는 불만을 들 수 있다. 가격은 턱없이 비싸고 맛은 지지리 없더라는 평이 많이 올라와 있다. 축제는 오감만족인데 입이 즐겁지 않으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 먹거리 존을 쥐락펴락 하는 부류가 있다 보니 그 밥에 그 나물일 수밖에. 개미굴 하나가 큰 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처럼 지역 축제도 소소한 것에 성패가 달려 있다.
자존심 회복의 기회를 잡아야
앞서도 언급했지만 춘향제는 대한민국 지역 축제의 효시다.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90년대 중반 이후 지역축제의 난립 속에서도 1997년도엔 문화부 지정 10대 축제에 포함되어 남원은 물론이고 전라북도 지역축제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 2000년대 초까지도 한국대표 축제의 자존심을 지켜오던 남원 춘향제가 최근 몇 년 사이 서서히 쪼그라들더니 국내 대표축제로의 자리를 아예 내려놓았다.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2019년 문화관광축제’ 46개 중에 남원 춘향제 이름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부활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춘향’이라는 특화된 콘텐츠가 있는 한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준엄한 단서가 있다. 축제 주도권을 둘러싼 지역 사회 갈등을 완전히 배제해야한 기사회생이 가능하다.
1931년 남원춘향제향이 그토록 장관을 이루고 온 국민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동력은 민간의 힘에서 나왔다. 남원 유지와 권번이 힘을 합해 오로지 춘향제향에만 올인했기 때문에 광복 이후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다. 지금 남원춘향제에 직접적으로 관련 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반드시 복기(復棋)할 필요가 있다.
이제라도 춘향제전위원회 구성은 문제가 없는지, 예년 콘텐츠를 변화 없이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 지 종합적으로 꼼꼼히 따져보고 과감한 변신을 꾀해야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 남원 춘향제가 세계적 아이콘인 ‘춘향’을 제대로 살려 운영한다면 국내를 넘어 세계잔치가 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다.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 지금이 바로 남원춘향제의 반전의 기회일 터! 누가 그 키(KEY)를 잡아야 할 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필자 소개
함양 산삼축제 총감독
보성다향대축제 총감독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총감독
남해 보물섬마늘축제 총감독
양구배꼽축제 총감독 ... 外 다수 역임
서울정원박람회
사랑의 행복콘서트 가요제
김제 효(孝) 콘서트
김정연의 효(孝).행복 콘서트 .. 外 다수 연출
축제관련 TV토론. 라디오 출연. 포럼 패널. 강연 활동
KBS. TV 조선. MBN 등 토크쇼 출연
(現)2019귀주대첩1000주년 관악강감찬축제 총감독
(現)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위원장
(現)파주시 정책 자문위원 (문화경제분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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