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누군가 내 야구를 보고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키움 이정후는 훌륭한 야구선수이자 좋은 사람이 될만한 자질을 갖췄다. 2018년 각종 잔부상으로 109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심지어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서 어깨에 부상하며 포스트시즌조차 완주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발 뒤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니, 야구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됐다.
3년간 프로 밥을 먹으며, 야구선수 이정후는 성숙해졌다. 자신의 위치와 자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도 보여줬다. 소박한 바람까지 담백하게 풀어냈다. 이정후를 지난 20일 마이데일리 창간 15주년을 맞아 만났다.
▲내 자리, 당연한 자리 아니다
아버지 이종범 전 LG 2군 총괄코치의 가르침이 이정후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정후는 "야구를 잘 하고, 못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이 되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인간 이정후는 같은 야구인 2세로서 지난 23일 세상을 떠난 김성훈(한화)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SNS에 토로하기도 했다.
어깨부상으로 준플레이오프 도중 시즌을 접었던 2018년. 이정후는 "다치고 나서 많이 배웠다. 1군에서 뛰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니다. 당연히 프로야구 선수라면 1군에서 뛰는 게 목표이고 꿈인데 운 좋게 데뷔하자마자 1군에 있었다. 내가 비운 자리를 한 경기라도 뛰어보려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내 자리가 당연한 자리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좋은 인간이라는 디딤돌에 휼륭한 야구선수라는 금자탑을 쌓기 위해 끝없이 정진한다. 이정후는 "성격이 하나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엄마에게 용돈을 받는다. 직접 돈 관리를 못하겠다. 술도 시즌 중에는 자제한다"라고 했다.
▲이정후가 '이정후'했다
올 시즌 공인구 반발계수가 낮아지며 대부분 정상급 타자의 각종 수치가 급락했다. 이정후는 예외였다. 물론 시즌 초반 좋지 않았다. "올 시즌은 망했다고 생각해"라는 아버지의 가벼운 조언에, 전력분석팀의 디테일한 도움이 있었다. 하이패스트볼 공략에도 완벽히 눈을 떴다.
이정후는 "전력분석팀이 내 문제점을 잘 캐치해줬다. 타격감이 좋을 때의 영상과 좋지 않을 때의 영상을 편집해서 보여줬다"라고 했다. 테이크백을 할 때 어깨와 팔 각도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복 연습으로 나쁜 버릇을 수정했다.
이정후는 "수술 후 폼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탑 포지션에서 팔이 끝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수술 뒤 미세하게 끝까지 가지 못했다. 그래서 안 맞았다. 몸 상태에 맞게 경기를 준비해야 했다. 많이 배웠다"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시즌 내내 '나는 홈런 타자가 아니니 강한 타구 생산에 주력하자'라고 생각했다. 빠른 타구, 강한 타구를 날리려고 집중했다"라고 털어놨다.
하이패스트볼 공략 기술이 능숙해진 것에 대해선 "그동안 높은 공을 의식하면 잘 맞지 않았다. 강병식 타격코치님과 훈련할 때 높은 공을 치는 훈련을 많이 했다. '연습 때 감을 익히면 실전서 자연스럽게 손이 나갈 것이다'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SK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서 헨리 소사를 상대로 날린 결승타가 백미였다. 그렇게 국내 최고의 교타자임을 입증했다. 올 시즌 140경기서 타율 0.336 6홈런 68타점 91득점 13도루.
장정석 전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정후는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에도 감독님이 경기에 계속 내보내줬다. 사실 기다리는 게 쉽지 않다. 프로는 이겨야 하고, 감독 입장에선 잘 하는 선수를 써야 한다. 그럼에도 나를 믿어줬다"라고 했다.
▲잘 맞은 타구가 정면으로, 아 끝났구나
이정후는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서도 좋은 활약을 했다. 타율 0.412 2타점 3득점. 그러나 히어로즈 창단 첫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 그는 "두산은 정말 잘 하는 팀이다. 우리가 수비에서 실책을 하니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강팀이다. 두산이 잘해서 우승했다"라고 인정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아쉬웠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이정후는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서 최선을 다했다. 후회는 없다. 아쉽지만,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처럼 포스트시즌 기간에 졌으니 팬들에겐 죄송하다. 성적으로 팬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두산과의 4차전, 9-11로 뒤진 10회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용찬을 상대했다. "2점 차이긴 해도 타순이 좋았다. 내가 출루하면 3~5번으로 이어지니 해볼 만하다고 봤다. 꼭 출루를 하고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정면으로 향했다. 이정후는 "힘들겠다 싶었다. 야구를 하다 보면 그런 감이 올 때가 있다. 덕아웃에 돌아와서 '마지막 공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에 끝난 느낌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주루사, 변명의 여지 없다
이정후는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프리미어12 대표팀서도 2~3번 타자이자 주전 중견수로 뛰었다. 전반적으로 좋은 활약을 했다. 다만,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최종전이 옥에 티였다. 6-7로 뒤진 5회초 1사 만루서 주루사를 한 게 팬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당시 이정후는 대주자로 투입, 3루까지 진루했다. 강백호가 우선상에 빗맞은 타구를 날렸다. 안타도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일본 우익수 스즈키 세이야가 전력질주, 타구를 직접 잡았다. 이정후는 급히 3루로 돌아가 태그업을 했으나 홈에서 아웃되며 이닝이 종료됐다. 주자는 무사나 1사에 뜬공이 나오면 일단 지켜본 뒤 다음 움직임을 취해야 한다.
이정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가 잘못한 플레이다"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주루코치님이 내야 땅볼이 나올 때 홈에서 살 수 있게 스킵을 과감하게 하라고 했다. 백호가 치는 순간 코치님이 말렸는데 곧바로 (3루에)돌아오지 못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빨리 돌아와야 했다"라고 돌아봤다.
주루사 이후 일본과의 결승까지 다소 위축됐다고 털어놨다. 이정후는 "경기장에서 자신 있게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위축하고, 긴장했다"라고 했다. 비록 실수를 했지만, 이정후의 수비, 주루도 충분히 좋은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이정후는 수비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프로에 와서 외야수로 전향했고, 더 잘하고 싶어한다. "중견수, 우익수가 좋은데 좌익수도 잘 할 수 있다. 손혁 감독님이 새로 오셨는데 내보내주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을 꿈꾸며
이정후는 프리미어12를 돌아보며 "체력이 떨어진 상황서 대회를 치르다 보니 어려움은 있었다. 그래도 국가대표 유니폼만 입으면 힘든 걸 잊는다. 대표팀 유니폼을 한번도 입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도 있지 않나. 준우승이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라고 했다.
일본이 넘지 못할 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정후는 "일본은 야구부가 있는 학교가 400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80개 정도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잘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물론 "이번에는 일본에 두 번 연속 졌으니 다음에 만나면 이겨야 한다. 한일전은 분위기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잘하지만, 이기지 못할 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도쿄올림픽 엔트리는 24명이다. 프리미어12의 28명보다 4명이나 적다. 이정후가 자신의 애버리지를 내년에도 보여주면, 올림픽 출전가능성은 크다. "외야에는 쟁쟁한 선배가 많다. 엔트리도 프리미어12보다 적은 것으로 안다. 그래도 꼭 출전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정후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남겼다. 자신이 '베이징 키즈'임을 강조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저팬 키즈'가 탄생해 한국야구 발전의 젖줄이 되지 않겠냐고. "어릴 때 베이징올림픽을 보면서 컸다. 도쿄올림픽에 나가면, 누군가는 내 야구를 보고 야구선수에 대한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정후의 바람은 곧 한국야구의 바람이다.
[이정후.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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