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프로는 말 그대로 비지니스다. 선수는 FA가 되면 자신의 가치를 더 인정해주는 곳으로 이적할 수도 있고, 팀 역시 아무리 그 팀에 애정을 갖고 있는 선수라 하더라도 필요에 의해 다른 팀으로 보낼 수 있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한 팀에서 줄곧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 생활을 한 팀에서만, 그것도 10년 넘게 한다는 것은 선수에게 행복이자 행운이다. 그리고 이는 '팀이 그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기에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영삼(인천 전자랜드)은 이를 현실로 이루고 있는 '행복한 선수' 중 한 명이다. 2007년 전자랜드에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된 뒤 줄곧 한 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
마이데일리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전자랜드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인 정영삼을 26일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정영삼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전자랜드', '지도자', '가족'을 키워드로 이뤄졌다.
▲ 정영삼, 그리고 전자랜드
앞서 언급했듯 프로 데뷔 후 정영삼의 유니폼 앞에는 항상 '전자랜드'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프로 출범 후 대우증권, 신세기 빅스, SK 빅스 등 짧은 기간 이름이 바뀌었던 팀이지만 정영삼 데뷔 후 변한 것은 전자랜드 뒤에 붙는 팀명이 '블랙슬래머'에서 '엘리펀츠'로 바뀐 정도다.
전자랜드 소속으로 2007년 데뷔한 그는 지난 10월 29일 고양 오리온전에서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한 팀 소속으로 500경기에 출장한 선수는 정영삼을 비롯해 통산 7명 뿐이다.
-시즌 초에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한 팀에서 이룬 결과이기에 더욱 값질 것 같다
"프랜차이즈란 개념이 많이 없어진 상황에서 한 팀에서 500경기 넘게 나섰다. 뜻 깊게 생각한다. 최희암 감독님, 그 이후에 유도훈 감독님 등 좋은 지도자분을 만난 덕분인 것 같다.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서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500경기 달성 후 구단에서는 헌정 영상도 제작했고 팬들이 케이크와 함께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평소 눈물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울기도 한다. 사실 그 때도 울컥했는데 잘 참은 것 같다(웃음)"
-울컥한 이유는?
"팬 분들과 구단에 감동을 받기도 했고 그동안의 일들이 떠오른 것도 있었다. 우선 부상 등 어려웠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동기들(양희종, 김태술 등) 중에 훌륭한 선수들이 많은데 그에 비해 나는 아마추어 시절 훌륭한 길을 걷지는 못했다. 그런 것 치고는 선수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랬던 것 같다"
-이제 2000년생도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다.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실감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다른팀 선수들의 나이에는 크게 와닿지 않는데 우리팀에 전현우(1996년생)가 왔는데 나와 띠동갑이더라. 그 때 느꼈던 것 같다(웃음). 그리고 내 몸을 보면서 느끼기도 한다. 예전에는 경기에 나서 가볍게 했던 플레이가 잘 되지 않는다든지 점프나 스피드가 예전 같지 않을 때는 은퇴 시점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양)동근이 형은 물론이고 (오)용준이 형 등 선배들도 아직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몸관리를 잘하시는구나'라고 느끼기도 한다"
-전자랜드 자체가 선수 교체가 활발한 팀이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출전시간이 줄어 들었다(경기당 11분 5초)
"주전으로 계속 나설 때는 백업 선수들 마음을 잘 모를 수 있다. 이제는 3분 뛸 때도 있고, 5분 뛸 때도 있다. 그렇다고 벤치에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경기에 언제, 어느 정도 나설지는 모르지만 준비는 계속 해야 한다.
경기에 많이 뛸 때는 경기만 뛰어도 시즌이 빨리 갔는데 플레잉타임이 적은 선수들은 그렇지 않더라. 이제는 '이런 힘든 점도 있구나'라고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 것 같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FA가 된 지난 시즌 종료 후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었다. 구단이 아직도 '선수 정영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기에 기분이 좋았을 것 같은데
"물론 아직 자신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느끼는 자신감이고 구단에서 냉정하게 내리는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사실 3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1~2년 정도 제시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긴 기간이다. 감사함도 많이 느꼈고 몸 관리를 더 잘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한 팀에 있더라도 주위 사람이 계속 바뀌면 그런 느낌을 받기 쉽지 않다. 반면 전자랜드는 프런트부터 함석훈 장내 아나운서, 경비업체 김광구 대표까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영삼에게 전자랜드란?
"전자랜드는 농구단 뿐만 아니라 기업 분위기나 마인드가 열심히 한다면 쉽게 내치거나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땀 흘린 대가를 인정해 주는 것 같다.
이제 전자랜드는 고향이나 집 같은 존재다. 힘들 때 집에 가면 따뜻하게 반겨주는 친구도 있고 부모님도 있지 않나. 내게는 그런 느낌이다. 그동안은 받기만 했는데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것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뛰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열정적으로, 프로 생활이 끝날 때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다"
▲ 정영삼, 그리고 가족
정영삼은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가 된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휴식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상황이 되는 날이면 아이들을 픽업하며 집에서 설거지 역시 본인이 '찜'해놨다.
-아들과 딸이 1명씩 있는 것으로 안다. 아들은 구단 유소년팀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딸(정채연)은 초등학교 5학년, 아들(정찬윤)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딸은 클럽에서 농구를 하고 있고, 아들은 작년에는 우리팀 유소년팀에서 농구를 했었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분명한 점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나도 농구가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부모님 반대가 정말 심했다.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아이들은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
나를 닮아서 둘 다 승부욕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딸은 농구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작년 유소년클럽농구대회에는 일일코치로 참여하기도 했다
"재밌었다. 사실 벤치에 앉아있지 않고 관중석에서만 봐도 좋다. 벤치에 있을 때는 다른 아이들 부모님 눈치가 보여 아들을 못 내보내겠더라(웃음). 무엇보다 아이들과 농구라는 공통분모가 생겨서 좋았다. 사실 평소에는 놀아줄 시간도 부족하고 집에 늦게 가고, 잠만 자는데 농구를 통해 아이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면 '아빠' 정영삼 뿐만 아니라 '선수' 정영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조언이나 경기에 대해 말할 때도 있는지?
"아들은 아직 어려서 별로 그런게 없는데 딸은 경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다. 요즘 들어서는 평가가 박하다. '그것도 못 넣느냐'고,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집에 들어갈 때 그런 말을 들으면 솔직히 기분은 나쁘다(웃음). 그래도 자식이니까 웃으면서 '미안해'라고 한다"
▲ 정영삼, 그리고 지도자
정영삼이 건국대에 입학한 때는 2003년. 이제는 웬만한 일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다. 15년이 훌쩍 넘은 기간 동안 정영삼은 단 몇 명의 지도자만 만났다.
대학 시절에는 김승환 감독과 황준삼 감독, 프로 유니폼을 입은 뒤에는 최희암 감독과 박종천 감독(총 12경기), 유도훈 감독이 전부다. 소속팀 김태진 코치 역시 전자랜드에 오랜 시간 몸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대학 시절 은사인 김승환 감독은 이제 전자랜드의 코치로 변신해 있다.
-마이데일리가 창간한 2004년에 대학교 2학년이었다. 당시 사령탑은 다름아닌 현재 구단 코치인 김승환 감독이다. 대학 때 은사와 프로에서도 함께 있다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다시 만날 확률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특별히 좋은 것도, 불편한 것도 없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조심스러운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코치님께서 (대학교) 감독님일 때 만나서 스타일도 잘 안다.
젊은 친구들은 '편하게 해'라고 하면 정말 편하게 대하더라. 어린 선수들이 코치님께 편하게 할 때 '저러면 안되는데, 화낼텐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웃음)"
-당시 김승환 감독과 현재 김승환 코치를 비교한다면?
"그 때는 30대 중반의 젊은 감독님이셨다. 이제는 많이 유해지신 것 같다"
-제자로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줘 뿌듯하기도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코치님이 뿌듯하실 것 같다. 감독님이실 때 고등학교에서 나를 직접 스카우트 하셨고 지도하셨기 때문에 뿌듯해하시지 않을까. 나 역시 그 때 배운 부분들이 선수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김승환 코치도 그렇지만 전자랜드에서도 유도훈 감독과 정말 오랜기간 함께 하고 있다. 한 지도자와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것도 선수에게는 행운일 것 같은데
"행운이다. 감독님께서 좋은 지도 철학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있을 수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팀에 있다보면 지도자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선수들은 그 분의 스타일에 맞춰서 변신하고 따라가야 하는데 내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다. 지도 스타일을 파악하고 뛸 수 있어더 잘 맞았던 것 같다.
요즘은 감독님께서 허리도 안 좋으셔서 짠하더라. 시범을 직접 보이신 뒤에 허리 잡으시면서 '어'하시면 짠하다. 물론 예전 같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면 감독님 역시 짠하다고 느끼시겠지만(웃음)"
-앞서 500경기 출장에 대해 말할 때 최희암 감독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수많은 선수가 드래프트에 뽑혀서 프로 유니폼을 입지만 10년을 넘기기란 쉽지 않다. 나는 첫 1~2년, 그 때가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때 자신만의 컬러를 만들고,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프로 생활을 이어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좋은 선수들이 와서 몇 년 지나지 않아 팀을 나가는 경우도 많이 봤다.
데뷔 초창기에 우리팀에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았다. 그 때 파격적으로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지금도 정말 감사하다. 지금은 고려용접봉 부회장으로 계시는데 창원에 내려가면 인사를 드린다"
-팬들에게 한마디
"개인적으로는 노쇠화도 오고 예전처럼 다이나믹하고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팀의 고참, 주장으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 후배들을 잘 이끌어서 팬 분들께 좋은 성적과 함께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고 싶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체육관 찾아주셔서 응원해주시면 팬 서비스와 훌륭한 경기력으로 보답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전자랜드 정영삼. 사진=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KBL, WKBL 제공]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