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이후광 기자] 지난 2007년 부푼 꿈을 안고 KIA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한 청년이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데뷔 경기부터 홈런을 맞았고, 상승세 속 어깨가 갑자기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은 모든 걸 이겨내고 KIA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가 됐다.
'대투수' 양현종(31)의 이야기다. 2007년 2차 1라운드 1순위로 KIA에 입단한 지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통합우승, 통합 MVP, 아시안게임 금메달, 다승왕, 방어율왕, 골든글러브 등 많은 걸 이뤄낸 시간이었다. 양현종은 어떻게 팀과 지역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마이데일리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양현종의 13년 타이거즈 희로애락을 들어보기로 했다. 스타플레이어라고 꼭 시작이 창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양현종은 원래 야구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뛰어노는 게 좋아 시작했던 야구였다. 그러나 이는 슈퍼스타의 탄생을 있게 한 힘찬 출발이었다.
▲프로선수를 꿈꾸게 해준 고마운 선배 '한기주'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원래는 야구를 초등학교 때까지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동성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동성고등학교까지 자연스럽게 야구를 했다. 바로 위에 한기주 선배가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나도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
-한기주 선배의 영향이 그 정도로 컸나.
“쉽게 말해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버스 타고 같이 등교했던 형인데 1년 사이에 엄청난 계약금을 받고 프로선수가 돼 TV에 나오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도 형처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기주 선배는 가장 큰 목표를 갖게 해준 선배다.”
▲녹록지 않았던 데뷔 무대, 에이스가 되기까지
-1군 데뷔전이 기억나는지 궁금하다.
“개막 두 번째 경기 9회말 큰 점수 차에서 등판했다. LG와의 잠실 경기였다. 첫 경기부터 만원 관중 속에 공을 던져 신기했다. 사실 긴장해서 아웃카운트 2개를 어떻게 잡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2사 후 마해영 선배에게 홈런을 맞았다.”(2007년 4월 7일 잠실 LG전 1이닝 1피안타(1피홈런) 1실점)
-첫 선발 데뷔전은 언제였나.
“개막 5번째 경기에서 첫 선발로 나섰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광주에서 5⅔이닝 무실점하고 2사 만루에서 내려왔는데 다음 투수가 막아줬다. 팀도 이겼다. 그때부터 선발을 계속 하다가 컨디션 조절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 2군에 내려갔다. 이후 패전처리를 많이 했다. 그래도 여유 있는 상황에 많이 던지며 경험을 쌓았다.”(2007년 4월 12일 무등 현대전 5⅔이닝 4피안타 4볼넷 2탈삼진 무실점 ‘노 디시전’)
-13시즌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시즌을 꼽아 달라.
“데뷔하고 우승을 두 번(2009년, 2017년) 했다. 2009년은 나이가 너무 어려 던지라는 대로 던졌다.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2017년이다. 너무 행복했다. 내가 이런 성적을 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운이 많이 따랐다. 팀이 워낙 좋아 당시 하루하루 즐겁게 야구했다. 모든 걸 이룬 한해였다.”
-반면 우여곡절도 있었을 것 같다.
“2009년과 2010년 좋은 성적을 냈는데 2011년부터 어깨가 아팠다. 2011~2012년이 가장 후회스럽고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전에 성적이 좋아 대우를 받아야 했는데 어깨가 아파 공을 던질 수 없었다. 무시도 많이 당했다. 반짝하는 선수라는 이야기가 싫어서 열심히 했는데 아프다 보니 남들보다 뒤처졌던 게 사실이다. 사실 2009~2010년 좋은 성적이 나와 통증이 있는데도 그걸 참고 던져 악화됐다.”
-그때의 아픔이 지금의 양현종을 만들었을 것 같다.
“맞다. 몸 관리에 대해 좀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어깨 운동, 보강 운동의 절실함을 많이 느꼈다. 보강 운동을 하지 않으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운동을 열심히 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겼다.”
▲양현종도 기대하는 '윌리엄스 KIA'
-새로운 감독님에 대한 첫인상은.
“아직 실제로 만나 뵙지는 못했다. 동영상으로 마무리훈련하는 걸 봤는데 0부터 시작하면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감독님에게 더 잘 보이면서 자신을 기용해달라고 어필하는 걸 봤다. 아마 이런 마음이 꾸준히 오래간다면 팀이 굉장히 강해질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뿌듯했다.”
-윌리엄스호에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그 동안 많이 던졌고 국제대회도 나갔기 때문에 몸 관리에 좀 더 신경 쓸 생각이다. 올 시즌 초반에도 혹사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됐는데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할 것이다. 스프링캠프 때 나도 감독님께 보여줘야 한다. 나를 향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혹사라는 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
“전혀 아니다. 주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해 당시 김기태 감독님께 너무 죄송했다. 내가 던지고 싶어서 한 경기 더 나가려고 했고, 중요한 상황이면 내가 말씀드려서 나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감독님이 오히려 내게 감사하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주변에서는 감독님이 잘못했다고 해서 죄송했다. 그럴 때일수록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다짐했다.”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아졌다. 주로 어떤 조언을 해주는지 궁금하다.
“마운드에서의 마음가짐, 스스로 결정하는 부분을 짚어준다. 모든 선수가 결과 때문에 과정을 많이 두려워한다. 볼넷, 안타가 나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과정부터 생각한다. 나도 안 좋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선수들이 다행히 내 조언을 귀담아 들어주고 그걸 실행해준다. 매우 고맙다. 어린 선수들이 잘해야 팀이 좋아지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려고 노력한다.”
▲'세 아이의 아빠' 양현종
-아이 셋 아빠라고 들었다.
“첫째 딸이 5살, 첫째 아들이 3살, 둘째 아들이 2살이다.”
-팀에서는 에이스, 집에서는 가장이다. 책임감이 클 것 같은데.
“경기 준비 과정에서 책임감이 생긴다. 운동하다 힘들 때 가족을 떠올리면 이 정도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장의 무게감이 크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입장에서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대단함을 넘어 존경스럽다.”
-실제 경기할 때 아이들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가.
“마운드에 오르면 생각이 많이 난다. 예전에 김상훈 코치님께서 야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웃는 모습, 나를 찾는 모습을 보면 그게 다 없어진다고 했다. 처음에는 과연 그럴까 했는데 맞았다. 성적이 안 좋아도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웃게 된다. 아이들이 나와 아내만 바라보고 자라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이 크다.”
▲KIA타이거즈, 양현종에겐 남다른 그 이름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유명하다. KIA 팬들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가족 같은 느낌이다. 주변에서 다른 선수들이 사인을 거절하면 비난을 받는데 내가 거절하면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다. 따뜻하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하다. 사실 아버지뻘 되는 분들은 어릴 때부터 나를 봐주셨기 때문에 먼저 가족처럼 생각해주신다. 어릴 때부터, 또 성적 안 좋았을 때부터 10년 넘게 응원해주시니 서로 가족이 되는 것 같다. 편하게 생각한다.”
-KIA 13년 동안 사실상 모든 걸 다 이뤘다. 또 이루고 싶은 바가 있나.
“소박하지만 아프지 않고 이 성적을 유지하면서 은퇴하고 싶다. 물론 당연히 나이가 들면 실력이 줄겠지만 굴곡 없이 그래프를 유지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양현종에게 KIA타이거즈란.
“가족이나 다름없다. 난 태어나서 자란 곳도 광주다. 가족들 다음으로 선수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경기하면 모두가 함께 웃고 울기 때문에 동료, 프런트, 코칭스태프, 팬들을 모두 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분 좋으면 팬들도 좋고 우리가 안 좋으면 팬들도 좋지 않다. 공 하나에 같은 마음이 형성되는 게 바로 야구다.”
[창간인터뷰②]에서 계속.
[양현종.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마이데일리 DB]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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