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배우 정준호(50)가 배우가 지닌 긍정적인 영향력을 강조했다.
정준호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히트맨'(감독 최원섭) 개봉을 앞두고 라운드 인터뷰를 개최, 취재진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비롯해 인간 정준호에 대해 가감없이 털어놨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히트맨'은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국정원을 탈출한 전설의 암살요원 준(권상우)이 그리지 말아야 할 1급 기밀을 술김에 그려 버리면서 국정원과 테러리스트의 더블 타깃이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액션 영화. 배꼽 빠지게 만드는 유머 코드, 화려한 액션 등 짜릿한 재미를 선사한 이 영화는 설 연휴 강력한 흥행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실사뿐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웹툰과 애니메이션도 스크린에 구현돼 종합선물세트 격의 다채로움이다.
영화 '두사부일체'(2001), '가문의 영광'(2002) 등 한국 대표 코미디 영화에서 주름잡았던 정준호는 '히트맨'에서 과거 전설의 국정원 악마교관이자, 현재는 대테러 정보국 국장을 맡고 있는 인물 덕규로 분해 코믹 고수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악마교관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독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초반을 지나면 허세 가득하지만 정 많은, 정준호만의 섬세한 코믹을 만날 수 있다.
신선한 시나리오에 매료돼 출연을 결정했다던 정준호는 이날 "사실 여러 번 보고도 잘 이해가 안 갔다. 학생들이 보는 만화 같기도 했다. 웹툰과 실사,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데 구조 자체가 굉장히 신선했다"며 "신인 감독인 데다가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게 매력을 느껴서 만나고 싶었다. 덕규라는 인물이 아주 중요한데, 묘사만 잘 하면 잘 해낼 수 있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감독님도 제가 꼭 이 역할을 해주길 바라셨다. 또 실제로 감독님이 지금의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어렵고 힘들었던 과정이 시나리오에 녹아있었다. 당시 최 감독님의 눈빛이 지금보다 훨씬 처절했다. 낭떠러지에 서 있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출연료고 뭐고, 그 자리에서 결정을 다 내렸다"라고 전했다.
이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망가져있더라. 저희 아들이 7살이라 아직 영화를 못 보지만 나중에 보게 되면 앞부분만 보고 꺼버리려고 한다"라고 강력한 입담을 과시하면서도 "감독이 제게 주신 믿음과 신뢰를 갚으려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유치하다고 생각한 장면도 감독님이 '괜찮습니다. 한번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하셔서 했던 적이 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건데 그걸 방해해선 안 된다. 집중을 해서 감독의 도화지에 묻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섭 감독님은 오래 이 작품을 준비했어요. 3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 예의가 바르신 감독님을 본 적이 없어요. 현장에 오면 모든 배우들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상대의 분위기를 파악하더라고요. 그러고 딱 첫 촬영을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건 다 뽑아내는 스타일이더라고요.(웃음) 상대가 편안하도록 모든 걸 제공하고, 본인도 후회를 하지 않게끔 연기자들과 호흡해요. 겉으로는 예의 갖춘 신인 감독 같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정말 똑똑해요. 감독이 되기까지 힘들어했지만, 그래서 더 철저히 했고 단 한번도 감독과 배우 간의 얼굴 붉힘 없이 진행됐어요. 열정이 높은 감독이에요. 연기자들의 장점을 잘 파악해서 살려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기발한 아이디어, 다양한 장르를 한데 모아 장점화시키는 것, 명확하게 하고자하는 연기를 잘 뽑아내는 것에 있어서 기대가 돼요."
전설의 암살요원 출신 웹툰 작가 준 역할로 영화 전면에 나서 맹활약을 펼친 후배 권상우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충청도 동향 출신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던 정준호는 "(권)상우가 액션을 너무 몸 사리지 않고 해서 걱정이 많이 됐다. 감독도 걱정했고 무술감독마저 걱정했다. 대역도 안 쓰고 본인이 다 하려고 한다. 사실 하빙 정확하지 않으면 사소가 날 수 있다. 주인공이나 메인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은 다치면 촬영에 지장이 오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데 욕심도 많다. 자기만족이 안 되면 끝까지 하는 스타일이다. '히트맨'에서 준 역할은 권상우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정점을 '히트맨'을 통해 찍으려고 하는 것 같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핸디캡도 있지 않나. '상우야 다 너보고 혀가 짧다고 한다'고 하니 '형. 저 혀 길어요'라고 하면서 혀를 보여주더라. 그런데 정말 혀가 길긴 길더라. 연기자마다 할 수 있는 발음이 있고 할 수 없는 발음이 있다. 그건 권상우의 매력이다. 그런데 정말 혀가 길더라. 혀가 너무 길어서 입 안에서 주체를 못하나보다"고 농담해 폭소를 안겼다.
"권상우는 본인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액션이면 액션, '짠내'나는 연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처절한 가장을 잘 살리면서 매력을 잘 보여준 작품 같아요. 실제 가정생활도 일부분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 (권)상우는 제수씨(손태영)한테 막 혼나더라고요. 적당히 집안에서도 화목하고 귀엽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이 이 영화와도 잘 맞아요. 대견하게 생각해요."
특별출연했던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정준호는 "정 들었던 곳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했지만 빠르게 달라진 촬영 환경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상당히 변했다. 룰도 많이 바뀌었다. 사회에 여러 규범들이 적용되면서 다소 경직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연기자와 스태프들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더라. 참 우리 민족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빠르게 대처하고 빠르게 적응한다. 저는 원래 느긋한데, 새해에는 좀 빨라져야겠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코미디 장르의 변화도 언급했다. 정준호는 "'두사부일체' 당시의 코미디와 지금의 코미디가 많이 다르다. 일단 호흡이 빨라졌다. 당시에는 감독님의 카메라와 기법, 연기자들의 감각에 따라 웃음이 담겼는데 지금은 사회 현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에 잘 접목해야 하더라. 그러면 공감대 형성이 잘 되는 것 같다"며 "실제로 제가 일상에서 했던 말들을 애드리브로 이번에 해봤다. 그런 말들이 영화 속에 녹여지면 관객들도 공감을 할 것 같았다. 이걸 따라가지 못하면 외딴 섬에 혼자 있는 느낌이 든다"라고 전했다.
"제가 현장에 가면 눈치를 많이 봐요. 후배들의 연기를 따라가고, 스피드에 맞추려고 노력해요. 예전에는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애드리브를 잘 치지도 못했어요. 요즘은 일단 후배들도 치고 보죠. 저는 뒤늦게 치다가 놓치죠. 그럼 '아까 그냥 빨리 칠 걸'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는 연기자들 간의 호흡이 중요한데, 양보하다 보니 계속 밀려나는 느낌이 들어요. 촬영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내가 뭐 했나.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안 되겠다. 내가 먼저 해야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작 현장에 가면 꼭 나서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고,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요. 밥값만 해야겠다 싶어요.(웃음) 우리의 역할은 적당한 선에서 눈치껏, 아래와 위를 조율하는 게 좋다고 봐요. 어느 자리에 가서든지 '내가 잘났다'는 식으로 나서는 것보다는 '잘 나갔던 선배님이 절제를 하시고, 양보하시는구나' 하는 인상을 남겨야 좋지 않을까요."
한편, 정준호는 배우 활동 외에도 다방면에서 맹활약 중이다. 사업을 병행하고 있고, 각종 홍보대사로서 전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화려한 인맥도 따라왔고, 그러다 보니 꾸준히 '정치 입문설'이 제기됐다. 이에 정준호는 "소문이 나는 걸로만 따지면 제가 5선위원이다"라며 "제가 홍보대사로 있는 것만 100개가 넘는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정준호는 "홍보대사를 많이 하는 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저희를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희 같은 사람들이 작은 축제에 가서 인사하고 사진 찍고 하면 정말 반가워하고 기뻐하신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그렇게 돌려주는 거다. 또 제 이미지도 관리하고, 팬덤도 형성하고, 지역에 좋은 일도 하는 거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직책들을 맡고 잇다 보니 '정치하시면 잘 하겠다'는 말들을 하신다. 예전에는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니 배우는 배우의 길을 잘 가면서, 정치인들에게 의견을 잘 전달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홍보대사의 역할, 메신저다. 정치라는 건 마음에서 정리했다. 정준호의 정치는 참여 정치다. 홍보대사를 열심히 하면서 지역의 민원과 국민들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사업도 그래요. 처음에는 '연기만 하지, 왜 사업을 하냐. 배우로서 리스크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욕심 때문에 사업을 했고 10년 정도 이어왔어요. 비즈니스를 하면서 연기하니 벅찬 것도 있었는데 지금 보니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사업을 하면 사회 현상을 제 피부로 느껴요. 인생의 깊이를 알게 돼요. 경험과 체험을 연기에 잘 접목만 시키면 깊이 면에서 또 다르거든요. 배우도 사람 사는 걸 그리는 거고, 사업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제활동이에요. 두 분야의 공통점은 사람과 하는 일이라는 점이죠. 한 달에 한 두 번씩 남대문시장에 가서 3~4시간을 돌아다니는데, 상인 분들이 파시는 떡볶이도 사먹고 각종 물건들을 사요.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그렇게 삶을 들여다보면서 배워요."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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