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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4세.
버라이어티는 이날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수명을 다해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드 하빌랜드의 전 변호인 수젤 M. 스미스는 “세계는 국제적인 보물을 잃었다. 나는 친한 친구와 사랑스러운 클라이언트를 잃었다. 그는 파리에서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애도했다 .
미국 영화배우조합(SAG-AFTRA) 가브리엘 카테리스 회장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재능이 있었다. 그는 용감한 선지자였고 세대에 영감을 주었다. 그는 경이로웠으며, 전설이었다. 편히 잠드소서”라고 추모했다.
드 하빌랜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강렬한 이미지의 스칼렛(비비안 리)과 대비되는 온순한 이미지의 멜라니 역할을 당대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1947)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1950)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거머쥐었다.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레슬리 하워드가 모두 숨진 뒤 50년 동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최후의 생존자’로 불렸지만, 그는 프랑스에서 조용히 사는 삶을 택했다.
트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은 드 하빌랜드가 1965년 칸 영화제 최초의 여성 심사위원장을 맡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영화 속 여성들의 위치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영화배우들을 착취한 계약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스튜디오와 맞서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강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그는 할리우드의 여왕이었고 영화사에서도 그렇게 추앙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 하빌랜드는 워너브러더스가 비련의 여인 캐릭터만 맡기자, 계약을 거부했다. 당시 할리우드는 배우가 출연을 거부하면 제작사는 활동을 정지시킬 권한을 가졌고, 계약기간은 그만큼 더 늘어났다. 드 하빌랜드는 소송에서 이겼고, 그 이후부터 계약기간은 활동정지와 상관없이 7년으로 제한됐다.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 법’으로 불렸다.
그는 1979년 갈란테와 이혼했지만 1998년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친구로 지냈다. 소설과 굿리치와 재혼해 얻은 아들 벤자민은 1991년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 지셀 갈란테 출라크는 변호인으로 일한다.
드 하빌랜드는 인디펜던트와 생전 인터뷰에서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행복하지도, 만족하지도 않고, 뭔가 다른 것을 느낀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의미를 가지고 살아왔던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 AFP/BB NEWS, 판당고]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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