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전주 김종국 기자] 한국축구를 대표했던 공격수로 활약했던 이동국이 현역에서 물러난다.
이동국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해 현역 은퇴 소감을 전했다. 지난 1998년 K리그 데뷔전을 치른 이동국은 K리그 통산 547경기에 출전해 228골 77어시스트를 기록해 K리그 역대 개인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전북 입단 이후에는 K리그 우승 7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한차례 우승 등 제 2의 전성기를 보냈다. 지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했던 이동국은 A매치 통산 105경기에 출전해 33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동국은 "선수 생활약을 하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해왔다. 장기 부상으로 인해 하루 하루 조급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부상이 있어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최고의 몸상태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이번 부상으로 하루하루가 조급했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있었다. 몸이 아픈 적은 있었지만 정신이 나약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고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동국과의 일문일답.
-은퇴 소감은.
"많은 분들이 부상 때문에 그만둔다고 생각하시지만 몸상태는 좋고 정상 컨디션이다. 부상 때문에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 생활약을 하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해왔다. 장기 부상으로 인해 하루 하루 조급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부상이 있어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최고의 몸상태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이번 부상으로 하루하루가 조급했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있었다.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어도 욕심을 내려고 했고 정상 컨디션으로 할 수 없었고 불안함을 느꼈다. 사소한 것도 소홀히하는 것을 느끼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을 했다. 몸이 아픈 적은 있었지만 정신이 나약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고 결정하게 됐다."
-은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순간은.
"가장 큰 결심의 이유는 부상으로 인해 나약해진 나의 모습을 발견한 후였다. 항상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든 이후에 부상을 당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더 이상 운동을 해서는 안되겠다, 제 2의 삶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는 이야기를 와이프와 했다. 그만해도 될 때가 된 것 같았다. 누가봐도 그만해도 될 시기였기 때문에 결심했다.
울산전 전에 단장님, 감독님과 이야기를 했다. 울산전이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울산전이 끝난 후 발표하기로 했다. 그래서 울산전 다음날 구단과 상의를 하고 발표하게 됐다."
-지금 느낌은.
"만감이 교차된다. 서운함과 기대되는 것도 있다. 1년 더 해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직 경쟁력 있는 상황에서 은퇴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최고의 순간과 기억하기 싫은 순간을 각각 5가지 선택한다면.
"몇 가지를 뽑는다고 하면 프로 유니폼을 처음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난다. 당시 33번 유니폼을 포항에서 고등학생인 저에게 내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특별히 제작해 선물로 줬다. 그것을 몇일 동안 입고 잤던 기억이 있다.
2009년 전북에 와서 첫 우승컵을 들었을 때가 축구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이었다.
힘들었던 시간은 아무래도 2002년 월드컵을 뛰지 못했을 때를 항상 기억하다보니 늦게까지 운동할 수 있게 됐다. 잊지 못할 기억이다. 기억나고 싶지 않은 순간보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 2006년 월드컵을 두달전 남기고 다쳤을 때 당시 모든 것을 걸고 2002년의 실패를 하지 않으려 준비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뛰지 못했다. 경기력적으로는 선수 생활에서 가장 완벽한 시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한골 한골 소중한 골이다. 많은 분들이 생각해주시는 골들이 독일전에서 상대가 미스를 하고 발리슛을 넣었을 때다. 맞는 순간과 볼이 발에 맞은 임팩트는 아직도 기억난다."
-최강희 감독에 대해 싶은 이야기는.
"보통 보면 은퇴를 할 때 쓸쓸히 떠나는 선수가 많았다. 많은 분들 앞에서 은퇴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분이다. 2009년에 전북에 입단하면서 전북을 함께 일궈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내가 모르고 있던 기량들을 다시 한번 꺼내줬다. 평생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겠다."
-30대 중반부터 은퇴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선수들과의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리니깐 하나 같이 읽지 않았다. 4-5년전부터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멀리 내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집중했다. 나이가 들었으니깐 못해라기보단 앞에서 동료들과 함께하다보니 어느덧 내 나이를 모르면서 살았다. 현재 내 나이를 들으면 나도 깜짝 놀란다. 내 나이를 모르고 살아왔다."
-좌절을 극복한 끝에 훌륭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됐는데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좌절하고 힘들었을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 생각한 것은 나보다 더 좌절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금의 좌절은 더 큰 좌절을 받고 있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시간마다 이겨낼 수 있던 힘이 생겼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프로스포츠는 선후배를 떠나 동료 선수들과의 경쟁이다.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프로에서 오래할 수 있다.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단 자신의 장점을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극대화하면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뛰었던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말과 최고의 파트너는.
"23년 동안 함께했던 선수들이 너무나 많았다. 베스트11을 뽑는다든지 그런 것은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김상식 코치님도 계시지만 2000년에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해줬다. 전북에 와서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있다. 2009년 멤버들이 많이 생각난다. 전북이 우승을 바라보기까지 모두 뭉쳐 좋은 경기들을 많이했다. 당시 멤버들이 강한 공격진이라고 생각한다."
-전북이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고향 포항에 가면 길 안내를 도와주는 네비게이션을 켜고 다니는데 전주에서는 그냥 다닐 정도로 제 2의 고향이다. 전북에서 얻은 것이 너무 많다. 여기서 운동을 10년 넘게 하면서 팬들의 함성도 있었고 팬들을 대하다보면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친숙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끈끈한 묘한 매력이 있다.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면서 자주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각오는.
"우승을 하기 위해선 승점을 가져와야 한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내려올 수 있다고 하면 누가봐도 멋진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기대된다. 보통 은퇴를 할 때 선수들이 운다. 울지는 말자는 생각이다. 슬픔보다 기쁨의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료들과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화려하게 선수들이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FA컵과 AFC챔피언스리그 활약 가능성은.
"공식적인 것은 대구전으로 맞추고 있다. 코치진과 의논하고 결정할 생각이다."
-선수 시절을 기억한다면.
"1998년 IMF때 입단해서 해외 전지훈련을 처음 가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국내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공교롭게 은퇴하는 시기가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께서 힘들어 하는 시기에 은퇴하게 됐다. 98년 월드컵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어 화려하게 등장해 당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하루하루가 기뻤던 순간이었다. 2000년도가 되어 브레멘으로 진출했고 성공하지 못했지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2002년 월드컵에 무조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다시 한번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2006년 월드컵만 보고 뛰어왔던 순간도 있었다. 다시 하라면 못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너무 힘들어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2006년 당시 힘든 것을 모두 이겨냈지만 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뛰었다면 어떤 경기력을 보여줬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후 수술을 하고 정상적으로 1-2년 더 플레이를 하고 해외 진출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성남의 기억은 많지 않다. 그 이후에 전북을 만나 2009년을 시작으로 8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아주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
-20번을 물려받았으면 하는 선수는.
"포항에 입단할 때 홍명보 선수가 입고 뛰었던 번호를 달고 뛰었고 지금까지 애착이 있다. 20번을 달고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니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선수들 중에서 최보경 선수가 탐내고 있다. 다는 순간 욕을 많이 먹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내 번호가 젊은 선수나 축구를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번호라는 것에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인식을 어린 선수들에게 심어준 것에 대해 기분좋게 생각한다. 전북의 20번은 전북의 유스로 성장하고 있는 선수 중에서 크게 가능성 있는 선수가 받았으면 한다.
-향후 계획은.
"앞에 있는 경기만 생각하고 있다. 내년에 대한 생각은 아직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을지 찾아야 한다. 축구 이외에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함께했던 분들 중에 기억나는 분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은퇴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분들이 서운해하고 슬퍼하고 많은 메시지와 전화를 받았다.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다. 은퇴를 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안티팬도 내 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장에서 뛰었다. 더 이상 축구선수로의 이동국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박수를 쳐 주셨으면 좋겠다. 어제 늦게까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했고 아버님도 은퇴를 해야겠다. 프로생활이 23년이지만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안 울려고 했는데 부모님에게 그 동안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다. 아빠가 같이 있을 수 있어 애들은 좋아했다. 아이들을 위해 쉬면서 아이들이 커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미래의 전북을 볼 때 전북을 이끌어 갈 선수는.
"전북에서 떠 오르는 선수가 필요하다. 그 선수들을 전북에서 찾아야 하는 것도 코치진의 몫이다. 이재성과 김민재 정도의 선수가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런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전북은 단체로 모였을 때 강한 팀이고 원팀으로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도자에 대한 생각은.
"지도자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지만 당장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지도자가 된다고 하면 특별해 내가 무엇을 한다기보단 선수들이 잘하는 것을 찾는 것이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몇일 동안 검색을 하면서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록을 특별히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은퇴를 앞두고 많은 기록들을 봤다. 대표팀을 포함해 800경기 이상 뛰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알았다. 한 선수가 800경기 이상을 뛸 수 있다는 것은 1-2년 잘해서 할 수 없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이상 꾸준히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달성할 수 있었다. 후배들도 넘기 쉽지 않은 기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기록을 달성했던 당시의 볼 중에 가장 의미있는 것은.
"모든 기록들이 나혼자 달성한 것이 아니다. 기록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들에게 고맙다. 전북에서 200골을 넣었던 순간이 가장 최근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200골을 넣었던 것이 가장 기억난다."
-좀 더 준비된 상황에서 유럽 진출을 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많은 생각을 하는데 쉽지는 않겠지만 최고의 몸상태로 진출해도 성공할지 못할지 의심 하게 된다. 십자인대 수술 후 한경기도 풀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며 진출한 것이 섣불렀다고 생각한다. 2005년, 2006년의 몸상태를 유지하고 진출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시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면 시기만 조금 늦추고 최고의 몸상태로 도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예전보다 지금의 생활이 더 편해졌고 외국에서 한국으로 전화할 때 핸드폰 하나면 되는 시기다. 지금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예전보단 쉬웠을 것이다. 적응하는데 있어 힘들었다. 지금은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에 해외를 꿈꾸고 있는 선수들에게 좋은 환경인 것 같다. 도전할 필요는 항상 있다."
-이동국을 이어갈 정통 스트라이커 부재에 대한 생각은.
"K리그와 모든 아시아리그도 그렇지만 스트라이커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팀들이 외국인 공격수를 선호하고 체격과 연관되어 있다. 현재는 22세 이하(U-22) 규정이 있어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받고 있지만 외국 선수들과의 경쟁력을 이겨내야 가능하다. 국내 선수들도 어렸을 때 1순위가 예전에는 공격수였지만 지금은 사이드나 미드필더다. 구단 차원에서도 좋은 스트라이커를 만들기 위해선 출전 시간을 보장하며 키워줘야 할 필요가 있다. 나도 실력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 성장하면서 외국인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오버 42세 룰이 생기면 1년 더 할 생각이 있다."
-힘들 때마다 아내가 도움을 줬는데.
"부상 이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도 1년 더 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와이프에 하기도 했다.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가까이 있는 와이프가 너무 조급해하고 나약해진 모습이라고 했다. 몸이 아프면 참을 수 있는데 정신이 나약하면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됐다. 마무리는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고 했고 지금 이 순간이라고 했다. 계획한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는 선수가 몇명이나 될지 생각하게 된다. 축구인생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축구인 이동국으로 성장시켜준 지도해주신 감독님들께 감사드린다. 선수 이동국이라는 타이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지만 평생 축구선수로 살다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응원해준 팬 여러분들이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지막 홈경기에 끝까지 성원해 주시고 마지막까지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로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 선수가 되겠다."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종국 기자 calcio@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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