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자."
홍원기 감독은 오랫동안 코치 신분으로 키움 선수들을 지도했고, 지켜봤다. 주로 수비 파트를 맡아왔지만, 손혁 전 감독 시절에는 수석코치로 팀을 넓게 바라봤다. 그랬던 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 마운드에 과감한 변화를 줬다.
이영준과 함께 메인 셋업맨으로 2020시즌을 치른 안우진을 2년만에 선발투수로 복귀시켰다. 안우진은 2018년 입단 후 꾸준히 잔부상이 있었다. 상체 위주의 투구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150km를 거뜬히 넘기는 빠른 공을 보유했지만, 제구 기복과 떨어지는 변화구 완성도 등 약점도 분명했다.
때문에 손 전 감독은 안우진의 팔 놓는 위치를 옆구리 옆으로 조정, 팔 스윙 폭을 줄이게 했다. 어깨와 팔꿈치 부상 위험을 낮추면서 장점을 극대화, 좋은 셋업맨으로 변신시켰다. 작년 10월에 갑자기 지휘봉을 놓기 전에는 "내년에도 불펜으로 생각한다"라고 했다.
홍 감독의 결정은 손 전 감독의 결정을 180도 뒤집은 것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홍 감독의 뚝심이다. 키움은 스프링캠프 시작과 함께 이영준이 이탈했다. 결국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시즌아웃. 조상우도 수비훈련 도중 전거비 인대가 파열되면서 개막전 합류에 실패했다.
즉, 지난해 경기막판 가장 중요한 상황을 책임진 안우진, 이영준, 조상우가 동시에 사라진 셈이었다. 필승계투조를 완전히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홍 감독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안우진은 선발"이라는 말을 뒤집지 않았다.
홍 감독은 올 시즌을 넘어 미래까지 본다. 안우진 정도의 잠재력이라면 키움의 에이스, 나아가 KBO를 대표하는 특급 선발투수로 성장할 수 있고, 지도자로서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시즌 뚜껑이 열렸다. 예상대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예년과 달리 부상은 없지만, 본래의 강점과 약점은 여전했다. 승운도 따르지 않았지만, 선발투수로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빠른 볼에 의존하다 결정적 한 방을 맞고 무너지는 경기가 빈번했다. 기복이 심했다.
그런 안우진이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6월18일 창원 NC전이었다. 패전투수가 됐지만, 6이닝 2피안타 6탈삼진 1볼넷 1실점으로 잘 던졌다. 이후 6월24일 잠실 두산전(7이닝 5피안타 8탈삼진 1볼넷 1실점), 6월30일 고척 롯데전(6이닝 4피안타 6탈삼진 1볼넷 4실점-비자책), 6일 고척 SSG전(6이닝 3피안타 7탈삼진 1볼넷)까지 잇따라 쾌투했다. 15경기서 3승7패 평균자책점 3.24. 6월부터 7경기서는 1승3패 평균자책점 2.04.
안우진은 "예전에는 꽂히는대로, 던지고 싶은대로 던졌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커브를 던지고 싶으면 던졌다"라고 했다. 지속적인 등판을 통해 공 하나가 갖는 의미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 타자 성향과 데이터, 컨디션, 경기흐름, 볼카운트에 따라 왜 패스트볼이 필요하고, 변화구가 필요한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SSG전서는 포수의 사인에 고개도 저었다. 그만큼 능동적인 투수로 바뀌었다. 그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승리도 평균자책점도 아닌 구종 선택"이라고 했다.
여전히 더 지켜봐야 할 투수다. 이번 휴식기 이후 다시 제구난조로 볼넷을 남발하고 얻어 맞는 경기가 나올 수 있다. 홍 감독 조차 "올 시즌은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면 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잠재력은 리그 톱클래스다. 150km대 중반의 파이어볼러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제구가 되기 시작했고, 변화구 선택의 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적장은 달라진 안우진을 체감했다. SSG 김원형 감독은 "지난번 등판(6월12일 인천, 4⅓이닝 4피안타 3탈삼진 5볼넷 3실점)과 팔 스윙 자체가 달랐다. 스윙 스피드를 보니 마음 먹고 던진다는 느낌이었다. 정타 몇 개가 나왔지만, (타자가 공을)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변화구 제구도 잘 됐다"라고 했다.
홍 감독의 이 선택이 옳았는지는 몇 년 더 지나봐야 확인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손 전 감독의 선택 및 계획이 틀렸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인상적인 건 홍 감독이 1년차 사령탑 답지 않게 긴 호흡으로 선수들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 팀에 오랫동안 있어서 선수들을 잘 알기도 하고, 선수의 미래가치가 곧 팀의 자산이라는 걸 느끼는 듯하다. 그저 "부상 경력이 있는 게 염려스럽다. 시즌을 건강하게 마치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렇게 안우진이 선발투수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안우진.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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