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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1. 회사원 김모(54)씨는 최근 서울 서초동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종로 2가에서 택시를 탔다. 70대 후반~80대 초반으로 보이는 운전기사에게 모임 장소 건물을 말하자, “잘 모르니 일단 그 주변으로 가서 찾아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가 “네비게이션을 찍고 가자”고 하니, 운전기사는 손을 더듬거리며 네비게이션을 찍는 듯하다가 “그냥 가자”며 계속 핸들을 잡았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김씨는 명동 근처에서 하차한 뒤 다른 택시를 탔다.
#2.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던 70대 여성 전모(79)씨와 최모(77)씨는 3년 전 운전면허증을 자진반납 했다. 최모씨는 “운동신경이나 시력도 예전 같지 않고 무엇보다 오래 동안 핸들을 잡지 않은 ‘장롱 면허’이기 때문에 좀 섭섭하기는 하지만 자진 반납했디”고 말했다.
■ 박원숙, 최근 운전면허 자진 반납...양택조는 2018년 만 80세 맞아 운전면허 자진 반납
최근 배우 박원숙(72)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사실을 알리면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제도와 함께 날로 심화하고 있는 고령자 교통사고 문제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박원숙은 지난 12일 방송된 KBS2 예능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 3’에서 레이싱 도전에 나선 혜은이와 김청을 응원하며 “나는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게 맞다 싶어서 이틀 전에 (자진)반납했다”고 불쑥 말했다. 이에 두 사람이 “우리 언니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냐?”고 놀리자, 박원숙은 “좀 슬펐다”고 운전면허증 반납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에 앞서 배우 양택조는 만 80세이던 지난 2019년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뒤 도로교통공단 ‘고령자 교통안전 홍보대사’로 위촉돼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여러 방송에 나와 “모두의 안전을 위해 ‘운전 졸업’을 했다”, “생계형이 아니면 (운전면허증 소지 고령자는 다들 운전면허를 반납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고령자는) 차안에서 갑자기 심근경색, 심장마비 등이 올 수 있는데 운전 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고령자의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적극 권유했다.
■ 초고령사회 급속 진입하면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급증...최근 10년 새 9배나 폭증
실제로 우리나라가 유엔 기준에 따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차지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사회를 넘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령자 교통사고’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60대 이상이 차주로 등록된 개인 차량은 601만 1,899대로 전체 개인 등록 차량(2,126만 2,272대)의 28.3%를 차지한다. 개인 차량 10대 가운데 약 3대가 60대 이상 운전자 차량인 셈이다. 70대 이상 고령 운전자의 차량도 154만 885대나 된다. 60대 이상 고령 운전자 차량 수가 300여 만대였던 2013년과 비교하면, 8년만에 2배 늘어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80대 이상 고령 운전면허 소지자는 2018년 24만 3,657명에서 2028년 128만 8725명으로 5.3배, 2038년 328만 2643명으로 13.5배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령 운전자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교통하고도 급증하는 추세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라고 무조건 운전 능력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고령 운전자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반응과 인지 능력 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에서 대처 능력도 늦어져 사고의 위험이 높다”고 강조한다.
국토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도심주행에서 돌발상황 발생시 65세 이하 운전자는 평균 0.7초 만에 대응했지만, 고령 운전자는 2배인 1.4초가 걸렸다. 고속도로 내 돌발 상황에 대한 반응과 출발 반응 시간도 비고령 운전자보다 17% 이상 오래 걸렸다.
자연히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도 급증하는 추세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 2000년 3,366건이던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2010년 1만 4,318건, 2020년 3만 1,072건으로 급증했다. 10년 새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9배나 늘어난 것이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치사율이다.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경찰청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비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 즉 치사율은 1.7명인 데 비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치사율은 2.9명으로 약 80% 더 높았다.
■ 고령 운전 교통사고는 대부분 '대형사고'...확기적인 고령 운전 교통사고 예방대책 절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만 65~7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는 지난 2018년 부산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로 급속히 확산됐다.
대다수 지자체들은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1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나 지역상품권 등을 인센티브로 제공했다. 지자체마다 도입 초기에는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가 늘어났으나 최근에는 주춤하는 형국이다. 이유는 "10만원의 '약발'이 떨어지는 등 보상책이 미흡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는 20만~30만원으로 인센티브 액수를 상향한 가운데 전남 순천시의 경우 전국 최고 금액인 50만원으로 기존보다 5내 높이고 현금 및 계좌이체 수령도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면허 자진 반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일회성 지원을 벗어나 건강검진비와 병원비 할인 등 더욱 획기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 정책은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라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진행하는 적성검사 주기를 3년으로 단축해도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이 약화되면 이를 통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운전면허 반납 인센티브제 역시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일회성 반대급부 제공 뿐이라 성과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고령 운전자라고 획일적으로 조건부 운전면허를 부여한다면 과도한 교통권 통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서 “획일적인 조건부 운전면허 부여보다 실제 운전 능력을 정확히 측정해 운전이 가능한 고령 운전자와 그렇지 못한 고령 운전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설명: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가 도로교통공단 주최로 열린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 행사에서 교통안전 체험을 해보고 있다. /마이데일리DB]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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