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통상 조폭 영화는 숱한 조직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폭력을 다룬다. 천명관 감독은 오직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소규모 조폭의 밑바닥으로 방향을 틀었다. '뜨거운 피'는 부산 변두리 작은 포구 구암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을 사실감 있게 담아 차별화를 꾀한 영화다.
구암을 주무르는 만리장 호텔 사장 손영감(김갑수) 밑에서 온갖 잡일을 처리하며 살아오던 희수(정우)는 마흔이 되도록 모은 돈 없이 도박판을 전전하는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오래도록 사랑한 연인 인숙(윤지혜)과 새 출발을 꿈꾸며 건달 생활을 청산하려 한다.
희수는 선배 건달이 제안한 성인 오락기 판매 사업을 받아들여 그토록 바라던 큰돈을 만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희수의 계략으로 마약 밀수꾼 용강(최무성)이 경찰에 붙잡힌다. 영도파 철진(지승현)이 구암을 손에 넣으려 30년 지기 희수를 도발하면서 물러설 곳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희수는 인숙의 아들이자 아끼는 막내 건달 아미(이홍내)가 세력 다툼에 목숨을 잃고 인숙까지 자신을 떠나려 하자 광기 속으로 빠져든다.
'뜨거운 피'는 김언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자, 소설 '고래'로 주목받은 천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조금 더 사실적이고 진짜인 건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처럼 조폭의 비루한 인생을 실감나게 전한다. 공간 배경인 가상 도시 구암은 영화를 더욱 '진짜'같이 보이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멋은 덜고 현실감은 더한 날것의 다툼을 보다 생동감 있게 만든다. 보고 있으면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끝으로 전해지는 착각마저 든다.
배우들의 호연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중심축을 이루는 정우는 무섭기만 한 조폭이 아닌 구암의 마당발을 겸하는 희수를 친근한 얼굴로 무리 없이 그려냈다. 최무성의 연기 변신이 유독 인상적이다. 잔혹한 연쇄살인마, 츤데레 아버지 등 역동적인 역할 변모를 시도해온 그는 용강의 내면에 자리한 고뇌와 파격적인 외면을 '착붙'으로 살렸다. 이홍내는 패기 가득한 풋내기를 제대로 묘사하며 긴 여운을 남겼다. 복수심 서린 눈빛과 분위기만으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다만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는 종종 혼란을 유발한다. 자막이 없다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 몰입을 깨뜨린다. 또한 600쪽에 가까운 원작 소설을 마구잡이로 응축한 것마냥 인물 관계가 불친절하게 표현돼 아쉬움이 잇따른다.
오는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0분.
[사진 = ㈜키다리스튜디오]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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