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에 탄 소녀', 불도저가 된 김혜윤 [마데핫리뷰]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불도저에 탄 소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영화다. 거침없이 치고받으면서도 적당한 때에 멈춰 서는 강약 조절까지 갖췄다. 그 중심엔 배우 김혜윤이 있다. 불도저 바퀴만 한 키에 여리여리한 체구를 가진 열아홉 소녀가 팔 한가득 용 문신을 새긴 채 폭주하게 되는 과정을 야무지게 짚어나간다.

영화는 편의점 폭행 사건에 휘말린 19살 혜영(김혜윤)이 불량 학생 셋을 인정사정없이 때려눕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또래 학생들과 달리 교복을 입지 않은 혜영은 홀로 무리를 제압한 뒤 가위를 꺼내 들어 "건들지 마"라며 무시무시한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딸 혜영과 막내아들 혜적(박시우)을 보살피며 중국집을 운영하는 본진(박혁권)은 주방에서 심한 화상을 입는다. 본진은 더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혜영에게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보라"라며 이젠 스스로 앞가림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수강 명령에 따라 중장비 직업 훈련을 받게 된 혜영은 뛰어난 운전 실력을 뽐낸다.

그러던 어느 날, 본진은 오래전 근무하던 중장비 회사의 차를 훔쳐 달아나다 한 남자를 치고 뇌사에 빠진다. 혜영은 어딘가 찝찝한 사고에 현장을 찾고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피해자의 미심쩍은 태도에 의심을 키운다. 여기에 중국집이 건물주인 중장비 회사 대표 영환(오만석)의 조카에게 넘어가게 될 위기에 놓이면서 혜영의 불안이 커진다. 뒤늦게 영환의 검은 계략을 알아낸 혜영은 복수를 위해 불도저에 오른다.

'불도저에 탄 소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박이웅 감독은 거대 거짓에 맞선 약자의 고군분투를 흡입력 있게 담아냈다. 실제 사건에서 영감받아 출발한 만큼 동정심은 철저히 배제하는 동시에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정조준한다. 다채로운 색채에 담긴 의미를 추측하는 재미도 크다. 신호등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옷을 입고 내달리는 혜영, 불도저로 영환의 보금자리를 부딪는 순간 혜영을 비추는 빨강, 파란색 경찰차 경광등 등이 예시다.

김혜윤은 혜영의 광기에 당위를 불어넣는다. 내내 화로 들끓어 있어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온전히 빚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장편영화 첫 주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얼굴로 불통, 불신, 불안의 벽을 마주한 미성숙의 혜영을 담았다. 학원에서 불도저 운전을 배우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오는 7일 개봉. 상영시간 112분. 15세 이상 관람가.

[사진 = 고집스튜디오]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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