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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근로자의 연령에 따라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 시행을 둘러싼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명예퇴직자 A씨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는 연구원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고, A씨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이 임금 하락에도 불구하고 적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성과연급제를 전후해 A씨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연령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은 강행규정이라는 것이다. 강행규정은 임의규정과 달리 어기면 계약 자체가 무효로 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임금 피크제가 차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등 사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향후 관련 임금 소송 역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으로, 현재 임금피크제가 시행 중인 사업체의 근로자들은 이날 이후 소 제기일 기준 3년 전까지의 임금에 대한 청구가 가능하다.
2016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5년에는 300인 이상 기업의 27.2%, 2016년에는 46.8%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연구원은 2008년 노조 합의를 거쳐, 정년을 61세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감액하는 성과연급제를 이듬해부터 시행했다. 연구원은 2013년부터는 이를 임금피크제로 대체했다.
1991년 연구원에 입사한 A씨는 2013년 4월부터 임금피크제에 따라 급여를 받았다. 2014년 9월 명예퇴직한 A씨는 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을 어겨 무효라며 미지급 임금 1억8300여만원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고령자고용법은 채용이나 임금 등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앞선 재판에선 연령차별금지를 규정한 고령자고용법이 강제성을 갖는 ‘강행규정’인지, 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인지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1심은 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에 따른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적용된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을 하는 내용”이라며 “따라서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1심과 대체로 같은 판단을 내렸다. 다만 항소심은 연구원으로 하여금 A씨에게 지급하라고 1심이 선고한 1억4600여만원을 1억3700여만원으로 낮췄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의 임금을 깎는 대신 고용을 보장·연장하는 제도로 2000년대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도입됐다. 이후 2016~2017년 청년 일자리 확대와 고령화 대응 등을 이유로 확산했다. 2019년 기준으로는 상용 노동자 1인 이상 정년제 실시 사업체 중 21.7%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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