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네가 감독해라.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
정확한 워딩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04년 5월18일 대구 KIA전 직후 당시 김응용 전 감독이 선동열 전 수석코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입에서 전해 내려오는 얘기다. 그날 삼성은 10연패했다. 전통의 명가 삼성에 치욕의 날이었다.
삼성이 12일 수원 KT전서 지면 18년 2개월만에 다시 10연패를 경험한다. 구단 역대 최다연패 타이기록을 세운다. 최근 삼성의 투타 언밸런스가 극심하다. 반면 KT의 상승세가 대단한 걸 감안하면 삼성으로선 쉽지 않은 한 판이 예상된다.
분명한 건 18년 2개월 전 김 전 감독의 ‘폭탄발언’이 선수단을 깨우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당시 선 전 수석코치가 김 전 감독의 해당 발언을 듣고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그날의 사건 직후 10연패를 끊음과 동시에 6연승을 내달렸다.
삼성의 2004시즌이 쉽지 않긴 했다. 슈퍼스타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로 떠났다. 마해영도 FA를 통해 KIA로 이적했다. 직전 두 시즌서 20홈런 이상 보탠 공격형 유격수 틸슨 브리토도 친정 SK로 갔다. 심지어 외국인타자(트로이 오리어리, 멘디 로페즈)도 완벽한 실패. 공격력이 뚝 떨어지며 동력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은 그해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현대와 9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다. 결국 한국시리즈 준우승. 호화멤버가 주름잡던 2003년 4위 및 준플레이오프 광탈보다 오히려 좋은 마무리였다.
선 전 수석코치가 전권을 잡고 운영한 마운드의 힘이 돋보였다. 배영수가 17승 토종에이스로 거듭났고, 임창용은 10연패의 시발점, 5월5일 대구 현대전 대참사를 딛고 36세이브를 따냈다. 이밖에 박석진, 오상민 등 베테랑에 정현욱, 권오준, 윤성환, 권혁 등 젊은 투수들이 불펜에서 적절히 힘을 보탰다. 이들이 2004년 경험을 발판으로 삼성왕조를 구축했다.
올 시즌 삼성의 9연패는 18년 전에 비해 2개월 늦다는 점에서 반등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삼성은 18년 불펜 안정화를 바탕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 9연패 기간에 마무리 오승환까지 무너지는 등 불펜이 크게 흔들렸다. 올해 삼성 불펜도 기존 멤버들이 각성하고, 뉴 페이스를 찾고, 전체적인 운영의 틀을 정비하는 것만이 답이다. 삼성의 시즌 불펜 평균자책점은 5.05로 최하위. 7월 성적은 9.38로 참혹하다.
오히려 타선의 힘은 18년 전보다 낫다. 5월 이후 전체적으로 하락세지만, 호세 피렐라는 여전히 올 시즌 최고 외국인타자 중 한 명이다. 18년 전 외국인타자들은 눈 뜨고 못 볼 수준이었다. 여기에 데이비드 뷰캐넌, 알버트 수아레즈, 원태인으로 이어지는 1~3선발도 괜찮은 수준이다. 5위 KIA에 7.5경기 차. 쉽지 않은 격차지만, KIA를 비롯해 6위 롯데, 7위 두산도 안정적인 행보는 아니다. 18년 전처럼 어느 정도 치고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히려 관건은 18년 전 김 전 감독의 폭탄발언처럼 극적인 대반전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느냐다. 패배의식을 딛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동기부여가 꼭 필요하다. 갑자기 미친 선수가 튀어나와 완봉승이나 2~3홈런을 치길 바라는 건 무리다.
누군가가 ‘못 해먹겠다’라고 큰 소리를 치라는 게 아니다. 시대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야구는 목소리로 하는 게 아니다. 다만, 거듭된 패배에 어떤 식으로든 연패의 부담을 줄이고 승부욕을 고취할 신선한 충격은 필요해 보인다. 계속 지는데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준비해야 할까, 아니면 프런트든, 코칭스태프든, 고참이든 누군가가 움직여야 할까. 판단은 그들의 몫이다.
[김응용 삼성 전 감독(위, 가운데), 올 시즌 삼성 선수들(가운데, 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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