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는 쥘리(로르 칼라미)의 얼굴로 시작한다. 피곤에 지쳐 깊게 잠이든 쥘리 위로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하는데, 나중에 가서야 얼굴의 윤곽이 드러난다. 정적을 깨는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면, 그는 두 아이의 밥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옆집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아이를 맡긴다. 그리고, 기차역까지 온 힘을 다해 뛰어간다. 기차문이 닫히려는 아슬아슬한 순간, 가까스로 탑승한다. 파리의 5성급 호텔 수석 룸메이드로 일하는 그는 먼 교외지역에서 파리까지 매일 ‘출근 전쟁’을 벌인다.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영화 ‘풀타임’은 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한 싱글맘의 처절한 생존기를 통해 자본주의가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강렬한 필치로 그려낸다.
싱글맘의 삶은 철도 파업으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2~3년전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철도 및 운송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파업 여파로 호텔에 매일 지각하는 딱한 처지를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 될 일이지만, 아이 교육을 위해서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철도 파업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파업을 비난하지 않는다. 쥘리가 “대체 운송수단을 마련해야하는거 아닌가요?”라며 분통을 터뜨리자, 철도 직원은 “우리에게 그렇게 할 의무는 없다”라고 답한다. 호텔이 노동자의 상황을 감안해줘야하지만, 자본주의에 그러한 자비는 없다.
매달 양육비를 줘야하는 전 남편은 연락 두절이고, 은행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빚 독촉 전화가 걸려온다. 이웃집 할머니는 더 이상 아이들을 봐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아우성이다. 잦은 지각에 눈치만 보고 있는 호텔에선 어떤 유명 가수가 화장실 벽에 똥을 칠해놓고 도망갔다. 살수기를 뿌려 말끔히 치우지만, 대리석이 깨지면 어쩔 뻔했냐는 질책만 듣는다.이력서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지워 더 낮은 월급을 받아야하는 상황까지 내몰린다. 불안감과 절박함은 싱글맘을 점점 더 옥죄어 온다. 감독은 쥘리를 단순히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도 신입사원에게 부당한 일을 시켰고, 전 직장에선 경쟁사를 과도하게 비난했다. “그렇게 사는 거죠”라는 쥘리의 대답 속에 삶의 안간힘이 일렁거린다.
이 영화는 마치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프랑스로 건너가 찍은 것처럼 보인다. 싱글맘의 험난한 삶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떠오르고, 불행만 계속 겹치는 상황은 ‘레이닝스톤’이 겹쳐진다. 그러나 켄 로치의 영화가 언제나 따뜻한 휴머니즘을 품고 있듯, ‘풀타임’에서도 쥘리를 도와주려는 사람의 온기를 담아낸다. 차를 태워주고, 온수기를 고쳐주며, 친구 아들의 생일잔치를 도와주려는 이웃과 친구의 따뜻함이 각박한 사회의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극 초반부, 과잉 행동장애를 보이는 장난꾸러기 아들은 엄마에게 “파리에 생긴 놀이공원에 놀러갈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파업이 풀린 기차를 타고 놀이공원에 도착한 쥘리의 얼굴에선 눈물이 흐른다.
[사진 = 슈아픽쳐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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