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우리는 아름다운 만남을 항상 꿈꾸며 살지만 아름다운 이별은 준비하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의 삶의 가치가 더 숭고해지려면 아름다운 이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요."
이준익 감독은 25일 오후 마이데일리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극본 김정훈 오승현 연출 이준익) 관련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욘더'는 소설 '굿바이 욘더'를 원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이후(한지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재현(신하균)이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미지의 공간 '욘더'에 초대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죽은 자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계 욘더를 마주한 다양한 군상을 통해 삶과 죽음, 영원한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휴먼 멜로이자 첫 드라마 연출작, 첫 번째 OTT 진출작이다. 티빙과 파라마운트+가 공동투자 제작한 첫 작품으로 전 세계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날 이준익 감독은 "사실 나는 영화만 열네 개를 찍었다. 이게 열다섯 번째 작품인데 OTT를 처음 하는 거다. 스태프들이 전부 나랑 영화 찍던 사람들이라 OTT와 영화 현장에서의 경계선은 전혀 없었다. 인풋 (input)은 같았고 아웃풋(output)이 달랐다. 극장이랑 OTT라는 플랫폼만 달랐다"고 전했다.
'달마야 놀자',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동주', '박열', '자산어보'까지. '욘더' 이전에도 무려 열네 개의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하지만 그도 영화와는 달리 반응을 체감하기 어려운 OTT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화랑은 너무 달랐다. 모르겠다. 영화는 화끈하다. 안 좋으면 '야이 씨'하고 그냥 화살이 막 날아오고 밤에 자면서 욱씬욱씬하다. '욘더'도 좋은 이야기도 있고 안 좋은 이야기도 있다. 안 좋은 이야기는 보약이 되고, 좋은 이야기는 스태프에게 위안이 된다. 나는 아직 성과가 안 나온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반토막 시사를 했다. 이제 시작이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글로벌 관객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내년 상반기 전 세계 공개 예정이란다. 처음 티빙과 일을 할 때는 글로벌 공개는 진행이 안됐을 때다. 오픈하는 과정에서 그런 게 생겼는데 살짝 걱정도 됐다"며 "우리나라 관객에게 응원받지 못하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샐까 걱정했다. 아직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적어도 전 세계에 공개됐을 때 망신만 당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영화라는 매체도, SF라는 설정도 서양에서 시작된 세계관이다. 너무 따라 하면 분명히 조롱받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근거를 배제하면 황당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 관객도 외국 관객도 무리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며 "그 경계선을 찾는데 주력했고 스태프들과 잘 잡았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욕먹지 않은 것 같고 해외에서도 크게 욕먹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이상의 기대는 과욕이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첫 OTT 작품임에도 이준익 감독은 매회 러닝타임이 크레디트를 제외하면 25분, 30분 내외의 짧은 미드 폼 형식의 드라마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그는 "다양한 플랫폼이 관객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같이 작업하던 사람들이 짧아지는 게 추세라고 했다. 그러면 기존 영화, 드라마의 포맷을 시리즈로 전환함에 있어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하자 싶었다. 따라 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러닝타임에 구애받지 말자', '회차에 구애받지 말자' 생각했어요. 영화는 영화의 위대함도 있지만 한정성도 있어요. 미치겠어요. 두 시간에 맞춰야 하니까. '자산어보' 같은 거 2시간 40분, 3 시간 하면 더 많이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무조건 압축해야 해요. 편집으로 더 재밌을 순 있지만 깊어질 순 없죠. 깊어지려면 넘어가고, 생각하려면 넘어가고. 이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데 옳은 것인가."
이준익 감독은 "지루함과 침착함은 같은 이야기다. 같은 걸 보는데 누구는 너무 지루하다, 누구는 너무 침착하다 한다. 그런데 침착함을 따라가면 침착함이 주는 밑바닥이 있다. '욘더'는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갖고 있는 특성에 맞게끔 침착하게 갔다. 이런 시도가 나는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시도를 했고, 안 좋았다는 사람도 있고 좋았다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저 재밌게 즐기길 바라는 마음뿐"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두 주연 신하균, 한지민 그리고 정진영, 이정은, 차순배, 윤이레 등 많은 배우들이 '욘더'에서 활약했다. 이 중 가장 공들인 캐스팅을 묻자 이준익 감독은 "항상 캐스팅에 공을 많이 들이는 건 첫 번째 주인공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한 장면도 재현이 나오지 않는 장면이 없어야 했다. 이 이야기에 관객들이 몰입하려면 끝까지 재현의 관점을 유지해야 했다. 때로는 관찰자로, 때로는 주체로 역할의 변화는 있지만 당연히 신하균한테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두 번째는 당연히 한지민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이 주체라면 그 대상이 항상 존재한다. 한지민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대상이었는데 스테이지를 건너갈수록 주체와 대상이 바뀐다"며 "처음에는 재현, 신하균 관점의 주체로 쭉 가다가 어느 순간 한지민의 관점으로 보인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욘더로 가면 한지민이 주체가 되고 신하균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한지민이 욘더에 왜 왔는지 설명이 된다. 맨 마지막에 설명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이야기다. 설명을 정확히 하려면 한지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 정성을 엄청 들였다. 시나리오만 보면 사실 좀 헷갈린다. 내가 막 설명을 했다"고 덧붙였다.
신하균과 한지민의 부부 케미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보면 부부 역할인데 남매, 오누이 같다. 둘이 맨날 장난치고 그런다. 어쩌면 부부 역할로 어떤 운명적인 케미에서 나오는 연기가 아닐까 싶었다"며 "신하균과 한지민은 극 안으로 들어가면 각자 독립된 존재로서 빛난다. 누가 누구한테 종속돼있지 않고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 그냥 나의 마음을 드러낼 뿐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그런데 그게 부부다. 그런데 신하균하고 한지민이 그렇게 했다. 내가 연출한 게 아니다.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닷가 캠핑장 장면을 좋아해요. 이야, 신하균이 이거 멜로가 되는데. 또 한지민이 '남편'하는데 나는 굉장히 좋았어요. 멜로라는 게 '나 너 사랑해!' 이러면 멜로가 아닌 것 같아요. 멜로는 내가 당신을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거죠. 나의 멜로는 그래요. 내가 당신을 여기는 마음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대놓고 '나 너 좋아!' 이건 멜로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멜로냐."
그렇기에 이준익 감독은 더욱 '욘더'에 공을 들였다. 주인공의 이름이 '홀'과 '이후'에서 '재현'과 '이후'로 바뀐 것도 그렇다. 이준익 감독은 11년 전 처음 원작을 접하고, 삶과 죽음을 주제화한 과격한 설정이 신선하게 여겨져 시나리오 집필을 시도했다. 그리고 11년이 지나 '욘더'를 영상화하며 다시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중 어색함을 느꼈다. 현실의 '재현'이라는 의미와 현실 '이후'라는 의미의 '재현'과 '이후'로. 두 주인공의 새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욘더'에서 이후는 "나 여기 있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준익 감독은 "모든 생명은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존재가 사라졌을 때야말로 부재다. 그런데 세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갈라졌다. 오프라인의 존재가 부재가 됐다고 온라인에서 부재하지 않는다.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하는 거다. 10년 후면 더 많이 존재할 거다. 난 그게 욘더라고 보고 이야기로 형상화했다. '나 여기 있어'라는 이야기를 누군가 인지하는 순간 그 사람이 존재하는 거다. 나는 그게 존재의 개념이라고 본다"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지금 살아있는 친구들을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으면 이 순간 존재하지 않는 거다. 그런데 죽고 나서 어느 날 부고가 날아오면 그 사람은 이제 내 안에 존재하는 거다. 그게 존재다. 욘더는 그런 세계관이고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SF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에게 "나 여기 있어"가 있다면 재현에게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있다. 작품 후반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이 시는 재현의 이상주의적, 낭만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또한 정서적으로 재현이 갖고 있는 내면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그리고 재현은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진심으로 이후의 아픔을 같이하려 한다. 이준익 감독은 "재현의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적인 표현을 외람되게도 백석의 시를 빌려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욘더'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기심을 논한다. 작품 도처에 이준익 감독이 생각하는 이기심이 녹아있다. 대사를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특히 이후가 그렇다. 하지만 재현은 그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각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계속 되돌아본다. 이후가 '당신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라고 했을 때 재현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확인하러 간다.
"백석의 시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병률 시인의 '사람이 온다'라는 시가 있어요. 맨 마지막 시구예요. '우리는 저마자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 시구가 정말 뒤통수를 딱 치더라고. 출판사에 연락해서 영화 대사로 쓰고 싶은데 허락해달라고 했어요. 나중에 통화를 했는데 다음 주에 점심 먹기로 했어요 백석이 살아계시면 같이 먹는데, 안 계시니까 이병률 시인과 같이. 하하."
현실에서 부서진 삶을 버린 이들은 안락사를 통해 욘더로 간다. '욘더'에서 이준익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영원은 과연 아름다운가', '소멸의 소중함'. 이준익 감독은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OTT를 통해 폭넓게 보여주고자 했다. 킬링타임(Killing Time)과 반대되는 세이빙 타임(Saving Time)이 있다. 이야기를 보면 더 살아나는 시간이다. 그러려면 나의 생각과 나의 영혼과 내면이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내 영혼은 존재하는가, 유한한가, 무한한가, 내 영혼은 아름다운가. 이렇게 고찰하게 되는 거예요. 어차피 지금 있는 시간이 소멸하기 때문에 지금 있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가장 알차고 값지고, 주변인도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들로 채울 거예요. 어떤 영화나 시리즈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면 포만감이 들 거예요."
이준익 감독은 "사실 안락사나 존엄사는 젊은 친구들은 아니겠지만 환갑이 넘은 내게는 내 문제다. 이 작품은 개인차도 있지만 세대차도 있다. 2030은 영혼과 불멸이 갈증 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영원하니까. 하지만 40대 그리고 5060은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걸 안다. '욘더'를 보다 보면 문득문득 어떤 순간 유사 감정을 느낄 거다. 그래서 혹시나 자기 세대에 맞지 않는 부분에서 흥미를 잃으셨다면 사과드리고 양해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이준익 감독은 아름다운 이별에 대해 논했다. 그는 "아름다운 만남은 원하면서 왜 아름다운 이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가. 슬픔은 반드시 온다. 그렇다면 그 슬픔이 아름다웠으면 한다. 나는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자산어보'에서도 그랬다. 이 영화도 아름다운 이별을 바랐고 그것이 죽음이다"며 "이후의 첫 번째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이기적이지만 밉지가 않다. 너무 진실되니까. 아름다운 이별.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준익 감독은 '욘더'에 저장하고 싶은 기억에 대해 묻자 파블로 네루다의 시로 답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욘더'에 어릴 적 그 아이를 난 두고 싶어요."
[사진 = 티빙 제공]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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