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곽명동의 씨네톡]
영화감독을 꿈꾸다 마음을 접은 뒤 고향 진해로 내려와 버스기사가 된 석우(곽민규)는 터미널에서 우연히 고장난 MP3를 줍는다. 유실물 보관소를 담당하는 영애(한선화)는 내다버린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석우는 누군가 잃어버린 분실물이라고 믿는다. 잃어버린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석우에게 호기심을 느낀 영애는 함께 MP3를 수리하기 위해 진해 곳곳을 걸으며 조금씩 친해진다. 어느날 탁구를 치며 서로의 실력을 알아본 이들이 대회참가를 결정하고 호흡을 맞추던 도중, 석우의 전 여친 수연(목규리)이 진해를 찾아온다.
이상진 감독의 ‘창밖은 겨울’은 ‘사이’에 관한 영화다. 진해라는 도시가 그렇다. 한때 진해시였지만, 이제는 창원시 진해구가 됐다. ‘시’와 ‘구’ 사이에 있는 슬로우시티에서 석우와 영애는 귤을 나누어 먹고, 자전거를 함께 타고, MP3를 함께 듣는다. 계절적으로는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소중한 추억의 물건인 MP3는 버려진 것과 잃어버린 것 사이에 놓여있다. 석우는 버스 유리창 사이로 세상을 보고, 영애는 매표소 유리창 사이로 사람을 만난다.
서울에서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은 석우는 같은 곳을 맴도는 인물이다. 그는 어떤 생각에 빠져 진해의 로터리를 계속 돈다. 승객이 “왜 이렇게 뺑뺑 돌아요”라고 한마디 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노선대로 버스를 운전한다. MP3 수리점의 할아버지는 자신은 못 고치겠다면서 새로운 수리점 위치를 가르쳐주는데, 석우에게 “돌고, 돌고, 돌고.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라고 말한다. 석우는 버스를 타고 로터리를 돌며, 수리점을 찾기 위해 진해의 거리를 돈다. 그러니까 석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MP3 수리점은 판타지 공간이다. 할아버지의 딸인 여주인은 술집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기계도 고치는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현실에 있는 듯, 없는 듯 모호하다. 일제 시대 건물과 최신 빌딩이 공존하는 진해에 어울리는 이 공간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반겨준다. 여주인은 길 잃은 나그네를 따뜻하게 보듬는다. 버린 것인지, 잃어버린 것인지 모를 MP3를 붙잡고 있는, 아직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석우와 그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영애가 가까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석우는 자신의 물건을 버리려고 하지만, 결국 못 버리는 인물이다. 각종 영화책과 DVD를 다 내다버리려는 순간,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이 연출한 가족영화 DVD를 챙겨 함께 관람한다. 수연과 함께 만들었던 영화도 잊고 싶다. 그러나 수연이 찾아와 봐달라고 부탁한다. 수리가 끝난 MP3 역시 버리려고 했는데, 누군가에 의해 다시 돌아온다. ‘사이’에서 ‘맴도는’ 석우는 버린 것이 되돌아오는 상황을 맞이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옆에는 영애가 있다. 그리고 계절은 초겨울로 들어선다. 석우와 영애는 오늘도 진해의 오래된 거리를 거닐고 있을 것이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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