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침통한' 신태용 감독 "아프다, 제자들과 팬들은 더 아프다"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30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인도네시아의 2023 U-20 월드컵 개최국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U-20 월드컵은 오는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인도네시아 6개 도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개막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기에 개최국이 바뀌는 충격적인 상황이다.

이유는 '종교 갈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이 사상 최초로 U-20 월드컵 출전권을 얻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국가고, 이스라엘 참가 소식에 '반이스라엘' 정서가 폭발했다.

인도네시아 내부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강성 이슬람 단체들은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하겠다"는 협박의 목소리까지 냈다. 더불어 선거를 앞둔 인도네시아의 정치권도 보이콧 운동을 펼치는 등 그야말로 카오스 상태가 됐다.

결국 이스라엘 선수단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개최지 변경이라는 초유의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3년을 넘게 준비했던 U-20 월드컵에 대한 꿈은 단번에 무너졌고, 인도네시아 U-20 대표팀은 출전권도 빼앗겼다. 인도네시아는 개최국 자격으로 대회 출전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U-20 대표팀은 한국의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다. 신 감독은 지난 2019년 12월 인도네시아 대표팀과 4년 계약을 맺었다. A대표팀을 포함해 U-23 대표팀과 U-20 대표팀까지 총괄하는 역할이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치른 후 많은 팀들로부터 제의를 받았지만 신 감독이 동남아이자 축구의 변방인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U-20 월드컵 개최였다.

당시 신 감독은 "자국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U-20 월드컵에 관심이 많다. 나에게 기대하는 바도 크다. 자국에서 개최하는 보람을 찾고자 한다. 성적도 받쳐줘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냉정하게 말해 조별리그 통과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상황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다. 많은 준비를 할 것이다.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조별리그 통과를 목표로 잡고 준비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다.

하지만 신 감독과 인도네시아 U-20 월드컵은 인연이 계속 어긋났다. 당초 이 대회는 2021년에 열릴 예정이었다. 2021년을 목표로 선수단을 꾸렸고, 훈련도 실시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대회는 2023년으로 연기됐다.

신 감독은 처음부터 다시 선수단을 구성했고, 처음부터 다시 훈련했다. 2023년만 악착같이 기다렸다. 그런데 축구적인 이유가 아닌, 축구 외적인 이유로 인해 출전이 무산되고 말았다. 참 잔인한 운명이다.

30일 '마이데일리'는 신 감독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평소 쾌활하고 호탕한 그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온 그의 철학도 이번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신 감독은 "FIFA에서 발표한 그대로다. 인도네시아에서 U-20 월드컵 개최를 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인도네시아는 호스트가 아니다"고 말했다.

심경을 물었다.

그는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U-20 대표팀 제자들, 축구팬들, 국민들이 나보다 더 아파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충격이 크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 감독은 "정말 U-20 월드컵 개최를 하지 못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생각 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 정말 힘들다. 3년 반을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준비를 했다. 너무나 안타깝다. 기대가 컸다. 이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왔다. 이렇게 되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지친다"며 침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면서 자책하기도 했다.

신 감독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해서 무언가 바꿀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대표팀 제자들을 위해서, 인도네시아 축구팬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탄했다.

잔인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다음 목표를 세우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신 감독은 "솔직히 모르겠다. 어젯밤에 FIFA가 발표를 했고,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장은 지금 FIFA에 가 있다. 회장이 돌아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떻게 하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고 답했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인도네시아 축구협회]

최용재 기자 dragonj@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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