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요사이 나는 실의에 빠져 있다. 뭘 해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과장을 좀 보태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실의와 좌절에 빠져본 적이 없는 듯하다.
연이은 폭염 탓은 아니다. 내가 실의에 빠진 이유는 마흔이 넘어 처음 시작한 두 가지 일을 너무 못해서다. 기타 레슨 외에 새로이 시작한 게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운전. 면허야 10년도 더 전에 땄지만 장롱 속에 고이 보관해두다가 올봄에야 운전을 시작했다.
학원이며 지인이며 총동원해서 숱하게 연수를 받은 덕에 주행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 다만 아직도 주차가 문제다. 며칠 전에는 그동안 잘만 오가던 본가에서 주차를 하다 접촉 사고를 내고 말았다. 천만다행히도 다친 사람이 없다. 내 차는… 수리하면 된다.
주차 사고까지 내고 보니, 나는 진짜 뭐하는 사람인가 싶다. 잘하고 싶은데 진짜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배움에 다 때가 있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다 맞는 걸까. 나이가 들어 배움이 더딘 건지, 애초에 머리가 (아니면 손발이)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런 나를 두고 친구가 한마디 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맞다. 배부른 소리. 친구는 덧붙였다. “잘 생각해 봐. 살면서 어마어마한 실패는 없었을지 몰라도 적당히 크고 작은 실패나 좌절은 있었어. 네가 지금 살 만하니까 기타네 운전이네 마음처럼 안 는다고 난리지. 굳이 불행을 찾고 있어.”
기타를 배운 지 10개월. 레슨 시간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1시간씩 40회, 만 이틀 되지 않는 시간이다. 운전도 마찬가지. 운전을 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하지만, 출퇴근을 운전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 실제 운전을 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만큼 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생각이 자꾸만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는 건 왜일까.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는 게 있다.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라고도 하는데, 부정적인 사건이나 정서가 긍정적인 것보다 우리에게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경향성을 뜻한다. 우리는 비판에는 충격을 받지만, 칭찬 세례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부정성 효과는 인간 심리의 기본적 측면이다. 이렇게 본성을 이해하면 부정성 효과를 극복할 수도 있다. 적어도 부정적 충동이 어떻게 인간의 지각과 결정을 왜곡하는지 인지하게 된다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이 된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책 <부정성 편향>에 따르면, 나쁜 것 하나를 보상하자면 네 개 정도의 좋은 것이 필요하다. 매일 운동을 하거나 더 건강한 식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처럼 자기 수양을 시작할 때, 이 ‘4의 법칙’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나쁜 일 하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중화시키겠다고 좋은 일 넷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4의 법칙’을 머릿속에 새겨두면 나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거기에 잠식되지 않고 좋은 일 4가지를 찾는 식의 노력을 해볼 수 있다. 노력으로 나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 책에서는 장애물이 있을 때 이성적으로 자신이 이루어낸 발전과 견주어보라고 조언한다.
내가 이루어낸 발전이라. 기타를 처음 잡았을 때, 나는 기타줄이 6개인 줄도 몰랐다. 기타 넥에서 바디로 가까워질수록 높은음을 낸다는 것도 몰랐다. 메이저 코드를 다 외우는 데 두 달 가까이 걸렸지만, 적어도 한번 외운 코드는 까먹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처음 기타를 잡았을 때보다 튜닝 속도가 빨라졌고, 오른손 스트로크가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적어도 꼭두각시 인형처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선생님의 큰 웃음을 사진 않는다.
무엇보다 기타를 배우며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겠다. 기타 얘기로 글을 쓰는 이 시간도 즐겁다. 이만하면 꽤 많은 것을 이루고 얻은 거 아니겠는가.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북에디터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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