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7년 전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였습니다. 경기 관람 후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마침 연습장에서 클럽하우스로 가던 이민영 선수와 마주쳐 악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뻤죠. 하지만 이민영 선수는 굳이 자신의 캐디 백으로 되돌아가 공을 꺼내 사인을 해 아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 선수 중에서는 이 선수를 응원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마지막 퍼트를 성공시킬 때는 감격스러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지난 20일 일본 여자프로골프 대회 ‘노부타 그룹 마스터스 GC 레이더스’에서 우승한 이민영을 다룬 일본 매체 기사의 댓글. 이 글에는 수백 명이 공감을 표시했다. 추천 댓글 맨 앞에 올랐다.
당사자인 이민영은 아마 벌써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자그마한 성의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이의 부모는 7년이 지나서도 그 따뜻한 인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고마움과 감동을 일본에 널리 알리고 있다. 1명의 선수가 나라에 대한 느낌도 다르게 만든다. 스포츠가 주는 착하고 값진 영향력이다.
일본의 한국 골프선수들은 미국이나 국내에 뛰는 선수들에 비해 한국에서 그다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민영은 2년여 만에 일본 투어 7번째, 한국 선수로는 올해 두 번째 우승을 했다. 짜릿한 명품 장면을 만들면서.
16번 홀에서 시련이 찾아왔다. 파4 2번째 샷이 그린 왼쪽 가파른 언덕에 떨어졌다. 3번째 샷도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공은 경사를 따라 굴러 거의 제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민영은 “우승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4번째 샷이 그린 끝에 간신히 떨어지더니 마치 빨려 들 듯 홀컵에 들어갔다. 기적. 하지만 이런 멋진 경기 끝의 우승도 별로 눈에 띄지도 않게 지나갔다. 게다가 우승 상금이 3억5000여만 원인 큰 대회인데도….
그러나 일본에서는 높은 관심을 모았다. 이민영의 우승이 올해 일본 여자골프에서 첫 30대 우승이었기 때문. 매체들은 32번 째 대회만의 30대 우승을 크게 치켜세웠다. 일본은 ‘황금세대’라 불리는 20대 초반 선수들이 우승을 휩쓸면서 겨우 서른을 넘긴 선수들이 벌써 저물고 있음을 아쉬워하던 터였다.
■ “높은 실력에다 뛰어난 인성과 정신력을 갖춘 선수”
이민영도 우승 회견에서 “비슷한 또래 선수들의 ‘빛’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승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동(東)군단’이라 불리는, 자신도 속한 30대 현역들의 모임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우승은 서른둘의 나이로만 주목받지 않았다.
우선 일본인들은 이민영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프로선수들도 부러워하는, 아름답게 오른쪽으로 휘는 공을 치는 선수! 직접 경기를 보면서 남자인 나도 저런 공을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선수의 스윙은 특히 아마추어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이번 우승, 정말 기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앞에서 예를 들었듯 일본인들은 이민영의 반듯한 인성과 암을 이긴 정신력을 더할 나위 없이 따듯한 표현으로 진심을 담아 칭찬했다. 겸손한 마음가짐과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늘 성실하고 순수한 선수라 정말 호감이 가네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일본에서 활약해 주길 기대합니다.”
“항상 진지하게 골프에 임하는 민영 선수, 정말 좋았어요!”
“암을 극복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인데, 그 후 훈련을 거쳐 우승까지 하다니…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네요. 정말 많은 노력을 했겠죠.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역경과 진심으로 싸우는 민영님에게 골프의 여신이 돌아봐 준 듯한 경기였어요.”
이민영이 우연히 어린아이에게 공 하나를 건네주었다고 이런 칭찬들이 쏟아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8년을 뛰는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동료 선수 등 일본인들에게 늘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 한때 일본 여자 골프를 주름잡았던 30대 선수들이 뭉친 ‘실력자 동군단’에 이민영이 속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운동이든 경기력만큼 품성이 소중한 것임을 이민영은 잘 보여준다.
일본에는 23승 이지희(45), 25승 전미정(42) 등 40대와 5승 황아름(37), 2승 이나리(36), 28승 신지애(36), 2승 배선우(30) 등 한국이었으면 벌써 은퇴했을 선수들이 여전히 건재하다. 마침 국내에서 열린 미국프로대회(LPGA) 참가한 신지애가 “후배들이 너무 빨리 은퇴하고 해외 도전을 잘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민영의 우승은 어느 때보다 더 돋보이고 값지다. 뛰어난 품성으로 일본인들의 많은 칭찬까지 받으니 더 멋진 우승이 아닐 수 없다.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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