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우리는 2인분을 시켰으므로 통돼지 한 마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코치니요 아사도는 우리에게 ‘맛은 있지만, 마음은 불편한 음식’이었다. /신양란 작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스페인 세고비아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된 수도교가 잘 보존 돼 있는 도시다. 스페인은 로마 제국 당시 성벽(바르셀로나), 다리(코르도바), 원형 극장(말라가)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수도교란 물을 도시로 운반하기 위해 건설된 로마 시대 다리 형태 수로 시설이다. 1세기 건설된 세고비아 수도교가 가장 유명한데 167개 아치의 고가 구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화강암 건축물은 로마의 뛰어난 토목 기술을 보여준다.
우리 부부도 이를 보기 위해 마드리드 일정을 하루 빼서 세고비아에 가기로 했다.
출발 전 세고비아 관련 여행 정보를 찾다가 ‘코치니요 아사도’라는 새끼돼지 구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별로 매력적인 유혹이 아니었지만, 남편은 달랐다. 돼지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만큼 기대감이 큰 모양이었다. “세고비아에 가면 코치니요 아사도를 먹어보자.” 먹는 것에 집착하는 일이 별로 없는 그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니, 나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세고비아는 로마 제국 시대의 수도교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1973년까지는 물을 공급하는 본래의 기능이 살아 있었다고 하며, 세고비아 구시가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양란 작가
우리는 월트디즈니 <백설공주> 성을 연상케 하는 ‘알카사르’ 투어를 마친 후, 점심 식당을 물색했다. 메뉴는 물론 코치니요 아사도였다.
이 지역 특산 음식이어서인지 대표 메뉴로 코치니요 아사도를 내세우는 식당이 많았다. 어느 집에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가 들리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음식점을 고를 때,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집을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게 내 주장이다. 사람들이 몰릴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집은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선술집이었다. 바닥에 접시 깨진 것이 널려있는 것을 보니, 여행자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맛집의 하나가 분명했다. 코치니요 아사도 살이 얼마나 연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칼이 아닌 접시로 해제한 다음, 접시를 바닥에 던져 깨는 풍습이 있다고 하던데 바로 그런 집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다만 그 당시 우리는 50대 중늙은이라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채로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젊은이들이 우릴 반기지도 않을 테고.
세고비아 투어의 핵심 장소인 알카사르는 무슬림(이슬람교도) 통치 시절의 요새를 기독교도들이 수복한 뒤 성으로 개조한 건축물이다. 1474년에 이사벨 1세가 반대파를 따돌리고 즉위식을 올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신양란 작가
우리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집은 현지인이 가족 단위로 많이 오는 듯한 곳이었다. 세고비아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집인지, 세 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빈자리가 없어서 잠깐 기다려야 했다.
자리에 앉아 맥주와 콜라를 주문하니 빵이 곁들여 나왔고, 잠시 뒤 메인 디시 코치니요 아사도가 나왔다. 생후 몇 주 된 새끼 돼지를 통째로 구운 요리라는데, 보고 있자니 어린 돼지의 슬픈 표정이 생생히 살아 있어 마음이 언짢았다. 그래도 허기진 터였기에 식사는 그럭저럭 무난히 끝났다.
지배인인 듯한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음식 맛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외워 간 스페인어 문장 하나를 쓸 수 있는 기회를 기뻐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Muy rico(아주 맛있어요)!"
사실 나로서는 그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돼지고기가 맛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어린 돼지를 구워 먹는다는 것은 좀 잔인한 일인 것 같아요”라고 스페인어로 말할 능력이 안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웠고, 우리도 세고비아 특산 음식을 먹어본 것에 만족해하며 식당을 나왔다.
식당에서 멀어진 다음 남편에게 “오늘 식사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맛있었어. 껍질은 바삭바삭 잘 구워졌고, 살은 진짜로 부드러웠어. 그러나 다시 먹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안 먹을래. 새끼돼지한테 너무 미안해서”라며 멋쩍어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새끼돼지 통구이 요리인 코치니요 아사도는 세고비아 특산 음식이다. 식당마다 그와 관련된 홍보에 열심인데, 이 식당은 조형물을 식당 앞에 설치해 놓았다./신양란 작가
이 식당은 아마도 유명 셰프를 홍보에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셰프가 들고 있는 음식이 코치니요 아사도이다./신양란 작가
알카사르에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6세(왼쪽) 모습이 보이는 까닭은, 그가 세고비아를 무슬림들로부터 되찾았기 때문이다. 무슬림 요새였던 알카사르를 성으로 개조한 것도 알폰소 6세라고 한다. /신양란 작가
세고비아 기념품 가게에서는 알카사르, 세고비아 대성당 관련 기념품도 찾아볼 수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수도교를 표현한 물건이다./신양란 작가
알카사르 무기 전시실에 갑옷으로 중무장한 채 랜스(lance, 긴 창)를 들고 있는 창기병(槍騎兵) 조형물이 있다. 랜스를 들고 싸우는 이를 랜서(lancer)라고 하며, 중세 시대 대부분 랜서는 기사단 등에 소속되어 있었다. 독립적인 직업인을 가리키는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소속 없이 개인적으로 고용되어 전투를 수행하던 랜서로부터 유래한다. /신양란 작가
세고비아 구시가지를 투어하면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점은, 건물 외벽에 새겨진 섬세하고 규칙적인 문양이었다. 집집마다 서로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어 수많은 문양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신양란 작가
세르반테스의 유명한 소설 <돈키호테>의 원제목은 <재기발랄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이다. ‘라만차 출신의 재기발랄한 하급 기사 돈키호테’라는 뜻인데, 세고비아가 바로 라만차 지방에 해당한다. 알카사르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라만차 지방의 척박한 환경을 말해주는 듯하다./신양란 작가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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