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스페인 세고비아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된 수도교가 잘 보존 돼 있는 도시다. 스페인은 로마 제국 당시 성벽(바르셀로나), 다리(코르도바), 원형 극장(말라가)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수도교란 물을 도시로 운반하기 위해 건설된 로마 시대 다리 형태 수로 시설이다. 1세기 건설된 세고비아 수도교가 가장 유명한데 167개 아치의 고가 구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화강암 건축물은 로마의 뛰어난 토목 기술을 보여준다.
우리 부부도 이를 보기 위해 마드리드 일정을 하루 빼서 세고비아에 가기로 했다.
출발 전 세고비아 관련 여행 정보를 찾다가 ‘코치니요 아사도’라는 새끼돼지 구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별로 매력적인 유혹이 아니었지만, 남편은 달랐다. 돼지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만큼 기대감이 큰 모양이었다. “세고비아에 가면 코치니요 아사도를 먹어보자.” 먹는 것에 집착하는 일이 별로 없는 그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니, 나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월트디즈니 <백설공주> 성을 연상케 하는 ‘알카사르’ 투어를 마친 후, 점심 식당을 물색했다. 메뉴는 물론 코치니요 아사도였다.
이 지역 특산 음식이어서인지 대표 메뉴로 코치니요 아사도를 내세우는 식당이 많았다. 어느 집에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가 들리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음식점을 고를 때,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집을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게 내 주장이다. 사람들이 몰릴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집은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선술집이었다. 바닥에 접시 깨진 것이 널려있는 것을 보니, 여행자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맛집의 하나가 분명했다. 코치니요 아사도 살이 얼마나 연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칼이 아닌 접시로 해제한 다음, 접시를 바닥에 던져 깨는 풍습이 있다고 하던데 바로 그런 집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다만 그 당시 우리는 50대 중늙은이라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채로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젊은이들이 우릴 반기지도 않을 테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집은 현지인이 가족 단위로 많이 오는 듯한 곳이었다. 세고비아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집인지, 세 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빈자리가 없어서 잠깐 기다려야 했다.
자리에 앉아 맥주와 콜라를 주문하니 빵이 곁들여 나왔고, 잠시 뒤 메인 디시 코치니요 아사도가 나왔다. 생후 몇 주 된 새끼 돼지를 통째로 구운 요리라는데, 보고 있자니 어린 돼지의 슬픈 표정이 생생히 살아 있어 마음이 언짢았다. 그래도 허기진 터였기에 식사는 그럭저럭 무난히 끝났다.
지배인인 듯한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음식 맛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외워 간 스페인어 문장 하나를 쓸 수 있는 기회를 기뻐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Muy rico(아주 맛있어요)!"
사실 나로서는 그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돼지고기가 맛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어린 돼지를 구워 먹는다는 것은 좀 잔인한 일인 것 같아요”라고 스페인어로 말할 능력이 안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웠고, 우리도 세고비아 특산 음식을 먹어본 것에 만족해하며 식당을 나왔다.
식당에서 멀어진 다음 남편에게 “오늘 식사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맛있었어. 껍질은 바삭바삭 잘 구워졌고, 살은 진짜로 부드러웠어. 그러나 다시 먹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안 먹을래. 새끼돼지한테 너무 미안해서”라며 멋쩍어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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