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이데일리 = 김지우 기자] 담배 피우는 수녀, 가톨릭과 무속 신앙의 결합. 그사이 묵직하게 중심을 잡은 송혜교다.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극 중 유니아(송혜교) 수녀는 생명을 살리겠다는 강한 목표 의식을 지닌 인물이다. 영적인 것을 들으며 '기도발'이 좋다. 그러나 현실은 서품받지 못한 수녀. 구마를 할 수 있는 자격조차 정식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에 유니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군분투한다.
소년 희준(문우진)의 몸에 12형상 악령이 깃들고 유니아 혼자서는 역부족일 때, 그는 자신과 같은 결의 미카엘라(전여빈) 수녀를 만난다. 미카엘라는 어린 시절부터 영적인 것을 본 인물. 바오로(이진욱) 신부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믿는다. 바오로 신부 아래 수녀이자 의사로 일하며 구마를 부정하지만, 결국 유니아와 뜻을 함께하게 된다.
유니아를 둘러싼 난관은 크게 두 가지다. 너무 강력한 악령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가톨릭 내 수녀로서 지위적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니아는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란 듯 두려움 없는 얼굴로 악령을 마주하고, 죄책감 없이 규율을 넘나든다. "사람 살리는데 명분이 어딨어." 수녀가 굿판을 벌인다는 이질적인 이야기도 유니아에겐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남 좋은 명분으로 가득한 교리보다 눈앞의 아이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한 인물이다.
영화는 잔잔한 호흡으로 중후반부까지 이끈다. 구마 의식의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는 지점이 있지만, 이것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유니아와 미카엘라가 몸부림쳐온 과정, 말더듬이 애동(신재휘)과의 연대, 구마 이후의 처절함이 더 인상 깊다.
송혜교는 감정을 절제한 채 묵직하고 쇠처럼 강인한 수녀를 그린다. 전작 '더 글로리'의 문동은과는 분명 다른 인물이지만, 크게 벗어나는 얼굴은 아니다. 차분하고 서늘하게 극을 누른다. 기도문을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은혜로운 얼굴만큼이나 영화적이다. '더 글로리' 성공 이후 사랑 이야기가 아닌 장르물로 돌아오고 싶었다는 송혜교. 이번 작품을 보며 그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유니아의 전사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송혜교는 기자간담회에서 "나라면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유니아처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 여빈 씨와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우린 수녀니까, 수녀는 그렇게 할 거야'라는 믿음을 갖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가늠하기 어려운 종교인의 사명감을 유니아의 동기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는 온몸을 불태우며 악령에 맞서는 인간 강성애(송혜교)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전여빈은 '유니아화' 되어가는 미카엘라를 충실히 그려낸다. 미카엘라는 거의 유일하게 전사가 나오는 인물로, 두려움도 가감 없이 표현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부마자 희준 역의 문우진은 수준급 연기로 팽팽한 텐션을 조성한다.
'검은 수녀들'은 2015년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작이다. 악령에 들린 아이를 구마한다는 플롯은 이미 예상 가능하다. '검은 수녀들'은 여기서 한발 나아가 수녀의 난관과 숭고한 희생까지 조명한다. 대사의 전반적인 깊이감과 오컬트적 요소를 파고드는 지점은 다소 얕다고 느낄 수 있다. 다만 훌륭한 미장센과 무속 신앙의 결합 등 신선한 소재는 장르적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한 영화를 보며 한 번쯤 기대했을 그의 등장은, 이루어진다.
오는 24일 개봉. 러닝타임 114분.
김지우 기자 zw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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