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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최근 레드벨벳 슬기의 솔로 1집 앨범 커버가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거꾸로 뒤집히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 진풍경을 처음 발견해 확산시킨 것은 한 팬이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솔로 2집을 위한 프로모션 아니냐"라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기업 혹은 아티스트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이벤트가 빠르게 퍼지고,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K팝 시장이 치열해지면서, 팬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기획사들의 마케팅 전략 역시 더욱 정교하고 기발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화제가 되는 흐름은 바로 ‘이스터에그 마케팅’. 대중에게 공식 보도자료나 SNS 공지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고, 작은 힌트를 은밀히 흘려둔 뒤 이를 팬들이 먼저 찾아내고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레드벨벳 슬기의 거꾸로 뒤집힌 앨범 커버 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눈에 띈다. 예컨대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인 걸그룹 ‘키키(KiiiKiii)’는 미스터리한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 채운 의문의 계정을 그룹 공개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공식 로고나 멤버의 모습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아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내고, 팬들은 자연스레 공유와 추측을 이어가며 SNS상에서 화제를 만들었다.
또 온앤오프는 세계관 마케팅 일부로, 티저 속에 등장한 SNS 계정을 이미 몇 달 전부터 실제로 운영해 왔다. 무심코 보면 일상적인 ‘누군가의 계정’ 같지만, 뜯어보면 이상하게 의미심장한 문장들이나 날짜가 등장한다. 이런 ‘살아있는’ 미끼를 던져두면, 팬들은 퍼즐 조각을 찾아 맞추듯 해당 계정을 뒤쫓게 된다.
SNS와 영상 플랫폼은 이스터에그 마케팅에 최적화된 매체다. 뉴진스의 ‘ditto’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제6의 멤버’가 운영하는 비밀스러운 유튜브 채널인 Ban Heesoo도 대표적이다. 공식 소속사 채널이 아닌 개인 계정처럼 꾸려진 해당 채널에 살짝살짝 공개되는 콘텐츠들은, 팬들이 스스로 이를 발견하고 “이게 뉴진스 세계관의 일부인가?”라고 토론하게 만들었다. 기획사가 굳이 ‘이것은 공식 떡밥입니다’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팬들은 직접 추적하며 바이럴을 일으킨다.
이 같은 ‘비밀스러운 마케팅’은 단순히 “궁금증 유발” 이상의 효과를 노린다. 팬들은 작은 그림 하나, 짧은 문장 한 줄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해석과 2차 콘텐츠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대중이 자발적으로 홍보를 해주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선 별도의 대대적 광고비를 쓰지 않고도 큰 화제를 모을 수 있어 효과적이다.
전통적인 홍보 방식이라면 기획사에서 “새 싱글 공개, 곧 컴백 예정” 같은 틀에 박힌 설명을 곁들였겠지만, 이스터에그 마케팅에서는 상세한 정보를 오히려 노출하지 않는다. 오가닉(Organic)하게 형성되는 바이럴이 더 강력하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새 단서를 던져주거나, 혹은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유도해 팬들의 참여도를 높인다.
사소한 것을 포착하는 팬들의 능력은 이미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회사가 직접 제시하는 친절한 설명 대신, 곳곳에 흩뿌려진 단서를 줍줍(주워 모으기)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더 큰 재미를 안긴다. 덕분에 이번 레드벨벳 슬기의 ‘뒤집힌 앨범 커버’도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다. 만일 공식 채널에서 “일부러 이렇게 디자인했다”고 먼저 발표해버렸다면, 지금같은 다양한 추측과 이슈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최근 사례들을 보면, 이스터에그 마케팅은 대개 “사측이 직접 퍼뜨린다”는 티를 최소화한다. "아무도 몰랐는데, 팬 혹은 매체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라는 상황 자체가 흥미로운 화제 거리가 되고, 이를 본 사람이 또 다른 단서를 찾아내거나, ‘다음 스토리’를 기다리는 선순환이 생긴다.
이미 K팝을 즐기는 팬층은 언택트·온라인 시대를 거치면서 콘텐츠를 깊게 파고드는 데 익숙하다. 기획사들로서는 이런 팬들의 참여와 놀라운 해석력을 굳이 외면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불친절하고 은밀하게’ 정보를 흘려주는 것이 지금 시대의 마케팅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뒤집힌 슬기 앨범, 스타쉽 의문의 계정…'에서 시작된 이 장난스런 마케팅은 앞으로 더 다채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우리의 눈앞에 또 다른 ‘이스터에그’가 펼쳐지면, 가장 먼저 발견해 즐기는 건 바로 팬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기대감과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K팝만의 특별한 매력이 될 것이다.
이승길 기자 winning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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