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당연하게 생각해서 행복한 줄 몰랐다"
KIA 타이거즈 최원준은 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팀 간 시즌 8차전 원정 맞대결에 우익수, 2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5타수 1안타(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최원준은 올 시즌이 끝난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지난해 136경기에서 128안타 9홈런 56타점 75득점 타율 0.292 OPS 0.791로 활약하며 KIA의 통합 우승에 큰 힘을 보탰던 만큼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원준은 올해 매우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타격 부진으로 인해 한차례 2군으로 내려갔다 온 상황에서 지난달 21일 KT 위즈와 맞대결에서 너무나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경기 시작부터 장성우의 평범한 뜬공을 놓치면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에 분노한 이범호 감독은 즉시 최원준을 김호령으로 교체했고, 이튿날 최원준에게 2군행을 통보했다. 문책성 교체와 2군행이었다.
하지만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최원준을 2군에만 놔둘 순 없었고, 이범호 감독은 열흘 만에 최원준을 다시 1군으로 불러올렸다. 그런데 지난 3일 두산과 맞대결에서 또다시 KT전과 비슷한 실수를 범하게 됐다. 선수 입장에선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으나, 이범호 감독의 대처는 이전과 달랐다. 이번엔 교체 없이 최원준에게 끝까지 믿음을 보였고, 그는 3안타 2타점 3득점으로 보답했다.
그리고 이범호 감독이 4일 경기에 앞서 입을 열었다. 사령탑은 "어제(3일) 같은 타구는 까다로웠고, 케이브도 스피드가 있고, 스핀 자체도 라인 드라이브성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놓치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며 실수한 최원준을 감쌌다. 그러면서 "야구는 타격이 전부가 아니다, 수비도 같이 하면서 다른 플레이에 있어서도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야구다. 수비가 조금 안 좋았으면 타격으로, 타격이 안 좋으면 수비로, 야수는 오늘 못하면, 내일 만회를 하면 된다. 편안하게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범호 감독의 지지를 바탕으로 세 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최원준은 첫 타석부터 네 번째 타석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생산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경기 막판 최원준의 존재감이 폭발했다. 6-3으로 앞선 8회말 2사 2루에서 이선우가 친 큼지막한 타구를 우측 펜스에 부딪히며 잡아내는 엄청난 수비를 펼치더니, 9회초 공격에서는 승기에 쐐기를 박는 투런포까지 폭발시키며 위닝시리즈 확보, 3연승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최원준에게서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원준은 "감독님께서 어떤 걸 원하시고, 내게 기대고 싶은지 아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생각을 최대한 정리하려고 했고, 그래야 내 플레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것만 생각 중"이라며 "2군행은 뭔가 많은 걸 다잡는 계기가 됐다. 2군을 오갔던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떤 마음을 갖고 야구를 해야 될지 정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2군에 내려간 시기에 어떤 것들을 느꼈을까. 최원준은 "어린 선수들과 함께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1군에 오래 있다 보니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도 많았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서 행복한 줄 모르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 생각을 달리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했다"며 "감독님께서 나를 2군으로 내려보냈던 것이 단지 실수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자꾸 타격이 안 되다 보니, 거기에 너무 얽매여 있었다. 그러다가 수비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부분에서 내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원준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돌아왔는지는 그의 모자에 잘 새겨져 있었다. 최원준의 모자 안쪽에는 '초심', '행복', '웃자', '즐겁게'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는 "2군에서 올라올 때 아내와 이야기를 해서 썼다. 기술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서 모든 걸 다 해봤는데, 안 되더라. 그래서 멘탈적으로 나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팀에 피해가 되면 안 되니, 멘탈적으로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각을 정립하고, 마음을 다잡고 돌아온 최원준은 다시 야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는 "호수비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홈런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실수들이 계속 나와서 불안한 마음은 있었는데, 어떻게든 야구를 계속해야 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려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감독님께서도 편하게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며 "지금 굉장히 즐겁게 야구를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직 시즌은 절반도 치르지 않았다. 부진을 털어내고 성적을 끌어올릴 기회가 더 많이 남은 셈이다. 많은 깨달음을 얻은 최원준이 FA 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잠실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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