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객원기자] 15일 은퇴를 선언한 '대성불패' 구대성은 국내 선수 중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해 본 흔치 않은 선수다. 여기에 그는 보직도 가리지 않았다. 때로는 선발투수로, 때로는 특급 마무리로, 그리고 어떤 때는 중간계투로 나서기도 했다.
장소도, 자리도 가리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던 그는 마운드의 홍길동이었다.
▲ 자리를 가리지 않았다
구대성이 '고무팔'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때문에 그는 선발투수건 불펜투수건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의 역할을 100% 소화했다.
1995시즌 그는 12경기에나 선발 등판했지만 18세이브도 함께 거뒀다. 1996시즌에는 55경기 중 단 2경기에만 선발로 나서 139이닝을 던지며 18승(2선발승)을 올리기도 했다. 2001년 일본 무대로 진출하기 이전까지 351경기에 등판한 그는 그 중 42경기가 선발 등판이었다.
일본 진출 첫 해 마무리투수로도 활동하며 51경기 7승 9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4.06을 기록한 그는 이듬해부터 풀타임 선발투수로 거듭났다.
당시 소속팀이었던 오릭스의 팀 성적이 좋지 않아 언제나 승보다는 패가 많았지만 그는 오릭스의 든든한 선발투수였다. 특히 5승 7패를 거둔 2002시즌에는 146⅓이닝을 던지며 2.52라는 수준급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고무팔답게 140개가 넘는 공을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특히 이승엽과 맞붙은 2004년 7월 8일 지바 롯데전에서는 164개의 공을 던지며 12탈삼진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2005년 뉴욕 메츠로 진출한 그는 중간계투로 변신했다. 비록 성적은 33경기에 나서 승패없이 평균자책점 3.91에 불과했지만 랜디 존슨을 상대로 2루타를 때려내는 등 미국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구대성은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거친 몇 안 되는 선수다. 외국인선수들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한국과 일본을 모두 경험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한국 선수가 세 리그에서 모두 뛰어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과 일본리그에서 뛸 수 있는 실력이 되는 선수도 적을 뿐더러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할 경우 제도상으로도 외국으로 진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점들을 뚫고 한미일 프로야구를 경험해 본 선수가 구대성이다. 구대성과 같은 코스를 밟은 선수는 이상훈이 유일하다.
한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미국,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비록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못남기고 돌아왔지만 그가 어디에서든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낙천적이고 '세상에 무관심한 듯 보이는' 여유로운 성격이 한 몫을 했다.
내년 시즌에는 어느 나라 마운드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의 은퇴가 더욱 아쉬운 것은 어떤 유니폼을 입고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항상 같은 모습일 것 같은 그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채 '구대성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진 = 2006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복귀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던 구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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