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데뷔 55주년, 반백년을 넘은 시간동안 그는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러니 그의 필모그래피가 곧 한국영화의 역사 줄기이다. 국민배우 안성기에 대한 이야기다.
오랜시간 그를 지켜봐온 대중은 안성기라는 이름 석자에 공통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커피 향같은 감미로운 남자배우라는 느낌과 영화계의 큰 산 같은 아우라가 그것 아닐까. 그 거인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정지영 감독과 20년만에 의기투합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그것이다. 3억원 저예산의 영화이며, 정지영 감독은 "차마 출연해달라고는 못하고 그냥 건네본 시나리오였다"라고 말할만큼 기성배우들이 하기에는 사회성이 다분한 껄끄러운 배역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성기는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고 그것은 굉장히 영리한 선택이 된 것 같다.
"두툼한 시나리오를 받으면 반갑지 않아요. 정리가 덜 됐다는 의미죠. 그런데 '부러진 화살'은 얇직한 것이 군더더기가 없이 깨끗하게 나왔어요.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높았고 영화를 만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바로 같이하자라고 이야기 했죠. 이 사건의 진실을 내가 밝혀야겠다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그는 예민한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들어갔다. 이쯤, '부러진 화살'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말해야할 것 같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한 번은 봤음직한 사건인 '석궁테러'를 소재로 했다. 판사에게 석궁을 겨눈 한 대학교수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지금은 세간에 잊혀져버린 그 사건은 5년 뒤 스크린으로 옮겨져 우리에게 전혀 다른 면면을 말해준다. 힌트를 주자면, 영화는 이 사건이 테러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점을 들추어낸다.
사건이 사건인만큼 영화의 배경 중 대부분은 법정이다. 대사도 법적용어들이 많다. 안성기는 이미 한 차례 법정영화를 찍은 경력이 있다. 강우석 감독과의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 그것이다. 당시 그는 변호사 역할을 했다.
"진짜 혼 많이 났어요. 그 후론 법정 드라마는 죽어도 안하겠다 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변호사 아니라 피고더라고요. 그래서 좋다 했는데 아휴, 변호사를 제껴버리는 피고라, 이건 뭐(웃음). 대사가 부담되더라고요. 옛날 생각도 나고. 노트를 하나 사서 전체 밑줄 긋고, 가만 있어봐. 얼마 정도 걸렸나. 뭐, 거의 날마다 외웠어요. 차에서도 집에서도, 마치 연극무대를 준비하는 것처럼요. 영화 현장에서 보통 하는 식으로는 해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렇게 다 외우고 나니 편안해졌죠."
소규모 배급이 될 확률이 높지만, 입소문은 벌써부터 흥행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지영 감독조차도 "젊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좋아해줘 기쁘다. 내 영화 중 가장 재밌다고 하더라"고 고무된 분위기를 말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거요. 상영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사실 모르겠고요. 그런 것(흥행) 보다 일단은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어요. 누가 뭐래도 괜찮아요. 영화 오래해도 흥행은 모르는 거에요. 진짜로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그런 거 딱 아는 사람 있으면 가만 놔두겠어요. CJ에서도 롯데에서도 다들 모셔가지.(웃음)"
그 말대로 흥행 여부야 뚜껑이 열려봐야 아는 거지만,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성기의 연기력에 새삼 호평을 내놓고 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에 들 수도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주변의 반응에 덤덤한 안성기에게 끝으로 "그렇다면 스스로 꼽게되는 대표작은 뭐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남겨봤다. 한 두편이 아닐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성인 배우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작품이었죠. 또 임 감독님과 만난 '만다라'와 배창호 감독님의 '고래사냥', 미국에서 찍은 '깊고 푸른 밤'. 참 '기쁜 우리 젊은 날'은 꼭 봐야 하는 작품이에요. 요즘 왕성하게 활동하는 감독들이 되게 좋아했던 작품이고, 감독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영화래요. 그리고 '하얀 전쟁'과 '투캅스', 또 조연을 시작했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참, '무사'도 난 되게 좋았어요."
이 작품들만 슬쩍 들여다봐도 한국영화사의 맥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한편 안성기 주연작 '부러진 화살'은 오는 19일 개봉된다.
[안성기. 사진=유진형 기자zolong@mydaily.co.kr, 아우라 픽쳐스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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