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석민의 은좌극장]
1. 나는 관객이다.
때는 바야흐로 이천십이 년. 필자의 서식지는 20분은 걸어 내려와야 겨우 마을하나를 만날 수 있는 한라산중턱이었으니……. 눈보라가 휘날리는 늦은 밤, 시나리오를 휘갈기며 공력을 쌓는다고는 하나, 공력은 쌓이지를 않고 영화에 대한 애정만 커간다. 이 산짐승이 웬일로 이른 아침부터 매서운 제주바람을 헤치고 기어 나와, 시외버스를 잡아타고 달리고 있다. 어제오늘 개봉한 설맞이 한국영화 네 편을 몽조리 보기위해서다. 따땃한 버스 안 온기! 잠시 몸을 담았던 영화판에서의 추억을 미소와 함께 떠올리며 배시시~ 행복감에 젖는 산짐승. 하지만! 이동시간을 한 시간씩이나 넘기고 피 같은 돈으로 넉 장의 영화티켓을 거머쥐자! 스스스…… 영화의 애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화르륵-전의만 불태우는 것이 아닌가. 이름하야 관! 객! 변! 신!
'재미없기만 해봐라.'
그렇게 아군에서 적으로 돌변한 필자는 옹졸해서 그렇다 치고, 대부분의 다른 관객들도 이런저런 기대감을 갖고 관람석에 자리를 튼다. 그리고 그 뭔가를 영화에서 찾는다. 그 뭔가가 없으면? 화낸다. 화내면? 무섭다.
예고편 끝. 자-이제, 관람한 네 편의 영화중 그 첫 번째를 시작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두 번 울었다.
털털하고 유쾌한 황정민은 별 볼일 없는 변호사다. 토끼 같은 딸과 친구 같은 마누라와 함께 딱 자기성격만큼 만족하며 살고 있던 어느 날, 덜컥! 시의원도 아니고, 구청장도 아닌, 서울시장후보로 얼렁뚱땅 등 떠밀려 정치판에 입문하게 된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가문의 영광인 그 순간, 이게 웬일? 친구 같은 마누라 엄정화가 제대로 딴죽을 건다. 장차 여사가 될 이 아줌마가 걸그룹으로 데뷔한다는 것이다. 띠~용~(유치하지만 적절한 효과음)
그 순간, 딜레마에 빠진 건, 더러운 정치판에 발을 담군 황정민만이 아니다. 남편의 꿈만큼 소중한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잡은 엄정화도 빠지고, 결말을 뻔히 읽어버린 필자도 딜레마에 빠졌다. '아- 너무 뻔하다. 재미없을 거 같다.' 모두들 알고 있는 인터넷유머들이 버젓이 중요한 에피소드로 차용된 초장부터 슬슬 본전 생각나게 하더니, 결국 결론까지 훤히 들켜버린 이 영화, 더 봐야하나 말아야하나…….그런데……황정민의 TV연설장면에서 울컥, 울고 말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렀던 결말 부분의 하이라이트에서도 울컥, 또 울고 말았다. 허~참. '왜 울었지?' 뻔~한 연설에 뻔~한 결론에…….
음~황정민은 (진보와 보수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엉켜있는)부산출신의 변호사다. 특별시가 '턱별시'가 될 정도로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특별하기 힘든 이 캐릭터가 그 누군가를 연상시켜 먹먹하게는 하지만, 이 답은 포인트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뼛속까지 서민'이라는 그 어떤 어르신네들에게서 이리저리 눈뜬 장님취급당하며 '다스림'을 받고 있는 유권자들의 답답함을 어루만져서도 아닌 거 같고……. 흠-이런 게 아닐까? 배~짝 마른 뺨과 연결된 배우 황정민의 착하게 생긴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 말. 꾸밈없는 솔직함이 보장하는 '나 잘 모르겠다. 나 못났으니, 우리 같이 해결해보자.' 거기에 송곳같이 눈물샘을 찌른 답이 있는 것 같다. 정치를 떠나, 부부사이에, 동료 사이에, 그리고 등등, 현실의 간극을 채우는 누군가의 담백한 현명함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아- 저런 놈 만나고 싶다'라는 감정과 함께 울컥 했을까 싶어, 스스로가 안됐다 싶기도 하고, 미안하고, 창피해진다. 뭉실뭉실 별 생각이 다느니, 영화라는 게 참 좋지 아니한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을 꼼꼼히 챙긴 후, 다음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기 위해 장소를 옮겨 다시 관람석에 앉았지만, 여운이 남아 아직도 아쉽다. 음? 아쉽다? 아쉽다는 건 좀 더 맛있었다면 완전 좋아했을 거라는 감정이니, 필자는 '댄싱퀸'을 좋게 보았나? 음- 오랜만에 눈물도 찔끔거려 내 안의 뭔가가 헹궈진 나름 상큼한 기분이니, 이 영화에서 필자는 뭔가를 찾긴 찾았나보다.
다음 '관객은 적이다! 2탄'에선, 지금 상영 준비를 하고 있는 '부러진화살'과 그 다음에 볼 영화인 '페이스메이커'를 동시상영 비교 해볼 참이다. 장르도 다르고 느낌도 다를 두 영화를 비교하고 공통점을 찾는 작업이니 꽤 재미있지 않을까나?
김석민은 독립영화 감독으로 현재 제주도에 정착해 제주유리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준비하며 공력을 쌓는 중이다. dolmean@hotmail.com
[사진 = 영화 '댄싱퀸' 제작보고회에서 황정민 엄정화 이석훈 감독(위, 왼쪽부터)영화 '댄싱퀸' 포스터(중간)와 스틸컷(아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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