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1997년 홈런페이스다.
삼성 이승엽이 5일 광주 KIA전서 시즌 11호 홈런을 때렸다. 선두 강정호(14개, 넥센)에게 3개 차로 추격했고, 최정(13개, SK), 박병호(12개, 넥센)를 바짝 추격했다. 37세의 베테랑 이승엽이 10살 이상 어린 새파란 후배들과 당당히 경쟁을 하면서 왕년의 홈런왕다운 면모를 보이는 건 놀라운 일이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 타자가 투수의 투구를 받아쳐서 그라운드 안으로 집어 넣는 정타 중 홈런의 비율을 따져보면 타자의 홈런 순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른바 타수당 홈런 비율. 올 시즌 이승엽은 182타수에서 11홈런을 기록했으니 16.5타수당 1홈런을 치고 있다.
▲ 97년 페이스와 닮았다
이승엽은 1995년 삼성에 데뷔해 13홈런을 쳤고, 1996년에는 9홈런을 쳤다. 그리고 3년차인 1997년에 32홈런을 치며 본격적으로 홈런 타자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이승엽은 양준혁, 이종범(30홈런) 박재홍(27홈런), 김기태(26홈런), 마해영(25홈런) 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517타수 32홈런, 즉 16.2타수당 1홈런을 치며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올 시즌은 1997년보다 약간 뒤늦은 홈런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올 시즌 삼성은 86경기를 남겨뒀다. 이승엽이 86경기에 모두 나서서 경기당 4타수를 기록한다고 가정할 때 344타수를 추가하게 된다. 이제까지 16.5타수당 1홈런을 쳤으니 이 페이스로 344타수를 기록할 경우 앞으로 20.8홈런을 추가할 수 있다. 즉, 이승엽은 올 시즌 돌발 변수를 제외할 경우 산술적으로 31.8홈런이 가능하다. 결국 1997년의 32개와 비슷하다.
▲ 냉정하게 봐서 전성기는 지났다
이승엽은 1997년을 기점으로 홈런 타자로 거듭났다. 1998년(38홈런) 12.6타수당 1홈런, 1999년(54홈런) 9타수당 1홈런, 2000년(36홈런) 12.6타수당 1홈런, 2001년(39홈런) 11.9타수당 1홈런, 2002년(47홈런) 10.9타수당 1홈런, 2003년(56홈런) 8.6타수당 1홈런 등 2004년 일본 진출 이전까지 1997년보다 홈런페이스가 떨어진 시즌이 단 한번도 없었다.
2012년 이승엽의 홈런 시계는 홈런의 맛을 알기 시작한 15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15년전 이승엽은 전성기로 향하기 위해 도약대에 선 상황이었고, 지금 이승엽은 전성기를 마치고 15년전의 그 도약대로 내려온 상황이다. 홈런타자인 건 분명하나, 이제 이승엽은 전성기에서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올 시즌 이승엽의 타구는 처음에 잘 뻗어나가더라도 막상 워닝트렉에서 외야수에게 잡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담장을 훌쩍 넘기는 커다란 아치도 예전만큼 그리 많지는 않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무상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올 시즌 홈런 1위 강정호는 11.8타수당 1홈런, 최정은 13타수당 1홈런, 박병호는 14.1타수당 1홈런을 치고 있다.
▲ 통산 13.1타수당 1홈런, 전설들과 비교해봐도 수준급
그래도 이승엽이 국내 최고 홈런 타자라는 건, 통산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 10년 통산 4393타수 335홈런, 즉 13.1타수당 1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강정호와 최정, 박병호가 1~2시즌 잘하더라도, 통산 18타수당 1홈런의 이대호(오릭스)와 19.1타수당 1홈런의 김태균(한화)도 아직 이승엽의 아우라에는 명함을 내밀 수 없다는 걸 바로 여기서 알 수 있다.
이승엽은 현재 한국 프로 통산 300홈런을 넘긴 타자 6명 중 타수 당 홈런이 가장 적다. 홈런 통산 1위 양준혁(351홈런)은 20.9타수당 1홈런을 쳤었고, 340홈런의 장종훈은 18.5타수당 1홈런, 328홈런의 심정수는 15.4타수당 1홈런, 313홈런의 박경완은 18.9타수당 1홈런, 309홈런의 송지만은 21.1타수당 1홈런을 치고 있거나 쳤었다. 이승엽이 국내에서 단 10시즌만을 뛰고도 한국에서 FA 대박을 터트리며 롱런한 선배들보다 홈런 생산 능력에서 앞서고, 통산 개수에서도 올 시즌 종반 1위 추월이 가능하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결코 이승엽의 기록 순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전세계 홈런 통산 1위 오사다하루(868개)의 9.5타수당 1홈런과는 차이가 있지만,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1위 베리 본즈(762홈런)의 12.9타수당 1홈런, 베이브루스(714홈런)의 11.8타수당 1홈런과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행크아론(755홈런)의 16.4타수당 1홈런보다는 홈런의 순도가 높다.
이승엽은 분명 시대를 풍미한 홈런타자다. 그리고 9년만에 돌아온 한국무대에서도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승엽은, 정말 클래스가 다른 국민타자다.
[통산 13.1타수당 1홈런, 올 시즌 16.5타수당 1홈런을 치고 있는 이승엽.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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