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퀴즈쇼'가 진행되는 TV를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소년 옆에 중년여인이 죽은 듯 잠들어있다.
잠시 후, 구급요원들이 들어 와 중년여인의 상태를 살피면서 응급처치를 한다. 소년은 요원들의 행동을 무심히 힐끗 힐끗 보지만 그의 눈은 TV에 가 있다.
소년은 엄마와 연락을 끊었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죽음을 알리고 장례를 마친 소년은 할머니를 따라 멜버른으로 간다.
엄마가 약물남용으로 세상을 떠나자 멜버른에 살고 있는 할머니 스머프(재키 위버 분)의 집으로 옮겨와 살게 된 열일곱 소년 조쉬 J 코디(제임스 프레체빌 분)의 나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애니멀 킹덤'은 동물의 세계와 똑 같은 인간 사회의 약육강식과 생존의 법칙을 각인시켜준다.
그런 만큼 바위를 딛고 서 있는 숫 사자의 얼굴이 돌출된 사자 가족 그림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타이틀은 가면을 쓴 은행 강도들의 강도 행각을 보여주는 흑백사진으로 넘어가면서 소년 조쉬가 처한 환경을 간접적으로 부각시킨다.
그것은 조쉬가 함께 살게 된 할머니와 삼촌들은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마약 판매와 절도 등 범죄를 업으로 하는 범죄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네 명의 삼촌인 팝과 바즈, 크레이그, 대런은 모두 범죄자이고 삼촌들 중 바즈(조엘 에저튼 분)는 실질적으로 그 가족을 이끄는 핵심으로 누구보다 조쉬에겐 든든한 삼촌이었지만 멜버른 무장 강도 사건으로 그 가족들을 감시하던 경찰의 총에 살해된다.
바즈 삼촌이 죽고 가장 두려워했던 삼촌 팝(벤 멘델슨 분)이 리더가 되면서 조쉬는 서서히 범죄에 물들게 된다. 바즈의 복수를 계획한 팝은 조쉬를 끌어들여 차를 훔쳐오게 하고 그 차를 이용하여 삼촌 팝과 대런은 경찰 두 명을 살해하게 된다.
그들 형제가 경찰을 죽인 사실이 밝혀지고 조쉬가 사건의 주요 증인이 되면서 형사 네이던 (가이 피어스 분)은 조쉬를 보호 하려하지만 가족들과 내통하고 있는 부패 경찰과 그들이 법망을 피할 수 있게 유도하여 잇속을 챙기는 변호사 사이에서 조쉬는 위협을 느끼게 된다. 결국 조쉬는 서로 물고 뜯기는 동물의 왕국과도 같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범죄의 과정을 지켜보는 17세 소년 조쉬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애니멀 킹덤'은 언제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위험한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소년의 생존기를 부각시켜 야비하면서도 비정한 현실을 드러낸다.
약물중독으로 엄마를 잃은 조쉬는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약자인 어미 잃은 새끼로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선 가족조차 가차 없이 처단하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버려진 조쉬는 할머니와 삼촌의 보호아래 있지만 모든 것이 불안하다.
하지만 그 불안은 무작정 할머니 가족을 신뢰하지 않는 조쉬에게 강자를 밟고 일어나야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의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10대의 성장기 영화나 범죄자 가족과 경찰의 대결을 그린 전형적인 범죄 영화를 연상하게 하지만 이 영화는 예상을 뒤집는다.
일체의 동정심과 과장 없이 조쉬의 성장과정을 무덤덤하게 보여주던 이 영화는 조쉬가 범죄에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만 화끈한 액션과 폭력장면은 커녕 극적 긴장과 재미를 유도하는 긴박한 템포의 편집 없이 시종일관 절제된 화면으로 내적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다.
오히려 홈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가족의 갈등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관객이 예측할 수 없는 조쉬의 표정과 불안한 심리를 부각시켜 끝까지 영화에 몰두하게 한다.
그런 만큼 극적 반전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결정적인 행동을 결행하는 각 인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존방식으로 약육강식을 부르는 복수극으로 모아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꽃은 호주 시드니 태생의 데이비드 미코드 감독이다.
장편데뷔작인 이 영화로 201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은 물론, 뉴욕비평가협회 신인감독상, 스톡홀름영화제 각본상 등을 수상한 그는 느슨한 전개 속에서도 강한 극의 몰입도를 이끌어내어 호주 영화계의 차세대 리더로 명성을 얻었다.
잔인한 폭력과 광기도 없이 잔잔한 전개로 섬세하게 범죄의 세상을 그린 '애니멀 킹덤'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자식을 위해선 손자와의 정분도, 도덕도 가차 없이 뿌리치는 스머프 할머니 역의 잭키 위버이다. 실질적인 가족의 우두머리 이며 그 조직의 대부인 스머프는 잭키 위버의 뛰어난 열연으로 각인된다.
정적이면서도 잔잔하지만 서늘한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이 영화는 놓치기 아까운 두근두근 시네마이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애니멀킹덤' 스틸컷. 사진 = 루믹스미디어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