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보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두뇌싸움이다.
한국시리즈가 번트 전쟁이 됐다. 5차전까지 삼성과 SK는 희생번트 9차례를 성공했다. 이후 득점으로 연결된 경우도 4차례였다. 그런데 1~3차전까지는 희생번트 이후 꾸준히 득점이 나왔지만 4~5차전서는 희생번트가 성공한 이후에도 득점은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번트 시도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 결국 KS는 스몰볼
2~3차전서 양팀의 타격이 살아나는 듯했다. 삼성은 2차전 3회에만 최형우의 만루포 포함 6점을 올리며 8-3 승리를 거뒀다. 3차전서는 삼성이 3회 또 다시 최형우의 3점포 포함 6점을 따냈으나 SK도 6회 6점을 따내며 12-8로 역전승했다. 두 팀의 마운드는 그대로 무너지는 듯 했다.
아니었다. 4~5차전을 치르면서 삼성과 SK는 모두 타격이 신통찮았다. 4차전 SK 4-1승, 5차전 삼성 2-1승. 2경기 평균 4점만 나왔다. 당연한 결과다. 기본적으로 두 팀은 타선보다 마운드에 강점이 있는 팀이다. 또한, 시리즈가 후반전으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점점 하강하고 있다. 날씨가 추울 경우 투수가 손이 곱아져서 옳게 공을 뿌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타석의 타자 역시 공격이 위축될 수 있다.
여기에 5~7차전 장소는 국내 최대규모인 잠실구장이다. 빅볼보다는 스몰볼을 시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또한 이번 한국시리즈서 선취점을 따낸 팀이 예외 없이 모두 승리했다. 선취점, 1점이 절실하다. 당연히 류중일 감독과 이만수 감독은 ‘번트’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 내야진의 강력한 압박, 희생번트 쉽지 않다
한국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번트를 대는 게 쉽지 않아지고 있다. 5차전서 SK는 꽤 많은 찬스를 잡았고, 번트를 시도했으나 대부분 가로막혔다. 1-2로 뒤진 4회초 무사 1,2루. SK 벤치는 박정권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초구에 3루 방면으로 희생번트를 댔다. 하지만 100% 수비를 펼친 삼성 내야진에 막혀 1사 2,3루가 아니라 1사 1,2루가 됐고, 후속타 불발로 역전은 물론 동점에도 실패했다.
감독들은 1점이 필요하다 싶을 때 희생번트를 선택한다. 수비하는 입장에선 당연히 그걸 막아야 상대의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 정규시즌이라면 경기 초반부에는 1점은 줘도 된다는 의미에서 압박수비를 시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 순간의 흐름을 지배해야 하는 단기전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삼성은 3루수 박석민과 1루수 이승엽이 상대 번트에 홈으로 대시하고, 유격수 김상수가 3루를, 2루수 조동찬이 1루를 커버하는 100% 수비를 이번 한국시리즈 들어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타자 입장에선 수비수가 앞으로 들어올 경우 페이크 번트 슬러시로 전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의 경우 김상수와 조동찬이 일반적인 100% 수비와는 달리 커버 스타트를 약간 늦게 한다. 혹시 모를 3유간, 1,2간으로 구르는 슬러시 타구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둘 다 발이 빨라 약간 스타트가 늦어도 충분히 커버를 할 수 있다. 이게 공격을 하는 입장에선 엄청난 부담이 된다. 이밖에 볼이 빠른 투수에겐 근본적으로 번트를 대기가 쉽지 않다.
▲ 치열한 두뇌싸움
일단 번트를 성공하면 공격하는 입장에선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긴다. SK는 3차전 1점 뒤진 6회말 무사 2루에서 임훈이 3루방면으로 번트를 대서 권혁의 왼쪽으로 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권혁이 빠르게 타구로 향했으나 넘어졌다. 상승흐름을 탄 SK는 상대 100% 수비 속에서도 실책, 홈런 등을 묶어 6점을 뽑아 승부를 갈랐다. 임훈의 번트 안타가 컸다. 삼성 내야진은 허를 찔리며 심리적인 타격을 입었다.
공격 측에서 번트를 시도하면 양팀 모두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러 홈쪽으로 향한다. 공격하는 입장에선 강공 전환으로 혼란을 줄일 수 있다. 5차전 7회초였다. 4회 번트가 100% 수비에 막힌 SK는 무사 1, 2루 찬스에서 김강민에게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 사인을 냈다.
김강민이 초구에 번트 자세를 취하다 방망이를 거둬들이자 삼성 내야진은 쉽사리 깊숙하게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100% 수비 때 유격수와 2루수가 3유간과 1, 2간을 커버한다고 해도 사실 광범위한 공간 속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강공 타구를 수습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이크 번트 이후 강공 자세가 나오면 내야진은 헷갈리게 돼 있고 중간 수비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김강민은 안지만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하면서 또 한번 주자를 3루로 보내는 데 실패했다. 반면 삼성은 2차전 3회말 무사 1루에서 진갑용이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에 성공해 무사 1, 2루 찬스를 만들었다. 6점을 뽑아 일찌감치 승부를 가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실 번트에서 파생되는 플레이가 많다. 수비 측의 번트 시프트를 활용해 공격 측은 주자를 진루시킬 수도 있고, 더 좋은 찬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수비 측도 공격 측의 움직임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면서 주자의 진루를 막으려고 한다. 일종의 두뇌싸움인데 성공과 실패가 명확히 갈릴 경우 경기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 6차전서도 양팀의 번트작전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번트를 시도하는 박한이(위)와 임훈(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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