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전자랜드의 4강 플레이오프 진출.
SK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1차전서 애런 헤인즈가 부상했지만, 코트니 심스를 앞세운 SK가 여전히 우위였다. 포지션별 매치업에서 1~2군데 앞섰다. 하지만, 평균신장이 뒤진 전자랜드는 대반전을 일궈냈다. 기본적으로 공을 향한 전투력이 엄청났다. 골밑에 과감하게 몸을 날렸다. 디나이와 셰깅 수비로 SK에 부담을 안기는 동시에 리바운드 열세를 최소화했다. 상대에 체력 소모와 동시에 심리적 타격을 안기는 엄청난 활동량을 과시했다. 공격에선 외곽에서 약간의 틈만 보이면 주저없이 림을 공략했다. 특히 에이스 리카르도 포웰은 끝까지 냉정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국내선수들을 이끌었다.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다 이겨냈다.
▲행운 아닌 철저한 준비
결국 전자랜드의 4강행은 3점포가 결정적이었다. 1~3차전 모두 승부처에서 많은 3점포가 터졌다. 1차전엔 무려 14개가 터졌고, 3차전서도 4쿼터 중반 9점차까지 뒤졌으나 차바위와 포웰의 3점포가 연이어 터지면서 승부를 극적으로 원점으로 돌렸다. 사실 농구에서 평균적인 팀 공격 지점이 외곽에 있는 건 확률상 위험하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은 “팀 구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평균신장이 절대적으로 차이가 나는 SK를 상대로는 어쩔 수 없었다. 대신 테크니션 포웰과 테런스 레더가 골밑에서 최대한 버텨냈다.
전자랜드의 3점포는 상대 스위치 상황에서 발생하는 조그마한 틈, 스크린 이후 생기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완벽한 슛 폼을 잡지 못하고 3점슛을 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많이 들어갔다. 행운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철저한 준비가 밑바탕에 깔렸다. 차바위는 “평소 움직이는 상황에서 슛 연습을 많이 한다”라고 했다. SK가 포웰에게 더블팀을 시도할 때 효율적인 패스 플레이로 공간을 창출한 것 역시 철저한 준비의 산물. (모비스와 동부 특유의 매치업 존을 가장 잘 깨는 팀도 전자랜드다.)
유 감독의 게임플랜 수립능력도 빛을 발했다. 평균적인 공격지점을 퍼리미터와 외곽으로 빼낸 건 이유가 있다. 전자랜드의 3점포가 무차별적으로 터지면서 SK는 지역방어를 많이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SK는 장신포워드들의 외곽수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블 팀이나 스위치를 포함한 맨투맨을 오래 사용하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김선형도 수비력이 강하진 않다. 주희정도 체력적으로 강력한 수비가 쉽지 않다. 유 감독이 SK 외곽 압박이 강하지 않은 점을 의도적으로 건드린 것.
▲좋은 조직력의 기본은 개인기량
전자랜드 멤버 개개인을 놓고 보면, 동 포지션 탑 클래스 파괴력을 지닌 선수는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 평균 이상의 실력을 과시한다. 평균 신장이 낮아 조직력이 기본에 깔려야 하는 상황. 유 감독은 “비 시즌에 운동을 많이 시키지는 않는다. 다른 팀이 두 탕, 세 탕(하루에 2~3번 단체훈련을 하는 것)한다고 하지만, 나는 하루에 한 탕이면 끝”이라고 했다. 대신 “한 탕 이후에는 자기발전의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유 감독은 에이스로 거듭난 정영삼, 차바위, 정병국, 김지완, 정효근 등의 개인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6강 플레이오프서 맹활약한 차바위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한양대 시절 육중한 몸매에 외곽슛만 던지는 반쪽 에이스였다. 하지만, 전자랜드 입단 이후 처절한 다이어트로 몸을 날렵하게 만들었다. 무빙 슛을 연마했고, 수비에선 가드까지 수비할 정도로 범위와 테크닉을 끌어올렸다. 개개인의 기량이 부족하면 조직력 구축에도 한계가 있다. 유 감독은 “프로라면 내가 동 포지션 톱3에 들겠다는 분명한 목표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사령탑의 끝없는 동기부여와 개개인의 발전을 바탕으로 좋은 조직력이 구축됐다. 그리고 실전서 그 조직력을 극대화했고, 엄청난 전투력이 더해지면서 대이변을 일으켰다.
▲한국과 중국의 맞대결
문경은 감독은 2차전 직전 “마치 중국(SK)과 한국(전자랜드)의 경기 같더라”고 회상했다. 한국이 과거 중국과 아시아 투톱이었을 때, 도박과도 같은 철저한 외곽포로 승부를 걸어 간혹 아시아권 대회서 중국을 잡았다. 여기엔 한국의 철저한 준비도 있었지만, 사실 중국의 방심과 준비 부족도 한 몫 했다.
국내농구도 마찬가지다. 전자랜드의 6강 플레이오프 맞상대 SK의 올 시즌은 아쉬웠다. 애런 헤인즈가 뛰지 못한 6강 플레이오프 2,3차전 경기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승부처에서 국내선수들과 코트니 심스의 연계 및 공조가 부족한 부분은 있었다. 시즌 중반 김민수와 박상오의 부상이 발생했을 때 플랜B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결국 정규시즌 3위로 밀려났다. SK는 객관적 전력상 6강 플레이오프서 탈락할 팀은 아니다.
매 시즌 객관적인 전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팀이 있다. 올 시즌의 경우 6강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한 KGC인삼공사가 대표적이다. 사실 또 다른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는 LG와 오리온스 역시 전력만 놓고 보면 당연히 4강 직행을 노렸어야 했다. 그러나 각종 악재 속에서 갖고 있는 전력을 극대화하지 못했고, 결국 6강부터 혈투를 치르고 있다. 평소부터 철저한 준비, 전력 이상의 힘을 발휘해 4강 플레이오프까지 오른 전자랜드와는 대조되는 부분.
전자랜드의 선전은 한국농구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서 남녀 동반우승을 했지만, 남자의 경우 냉정히 보면 아시아에서 중상위권으로 떨어진 전력. 전자랜드의 철저한 준비성과 강인한 마인드는 남녀대표팀이 기본적으로 반드시 장착해야 할 요소다.
[전자랜드 선수들(위, 아래), 유도훈 감독(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