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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영화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안성기의 파격 변신,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의 50여년 콤비호흡 등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런 수식어보다 먼저 떠올리게 되는 배우가 바로 김호정이다.
‘화장’은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죽어가는 아내(김호정)와 젊은 여자(김규리) 사이에 놓인 한 남자(안성기)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김호정은 ‘화장’에서 원작 속 활자에 갇혀 있는 아내라는 인물을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로 완성시켰다.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처절하게 다가왔고, 덕분에 죽어가는 아내를 둔 한 남자가 젊음의 향기에 이끌리는 과정들이 더 생생하게 그려졌다.
“단편 소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임권택 감독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추은주(김규리)는 오상무가 상상이나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인물이라 성적 판타지로 등장하거나 싱그럽게 이미지화해서 보여요. 반면 전 현실이에요. 굉장히 사실적이어야 했죠.”
가장 사실적인 장면은 화제가 된 목욕탕 신이다. 병으로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남편이 씻겨주는 장면인데, 비록 노출로 화제가 됐지만 영화를 본다면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된다. 고통스러운 기억인데다 다른 사람들이 연기보다 더 집중하게 될까봐 스스로 언급하기를 꺼리지만 자신의 투병 경험이 밑바탕이 된 호연으로 완성된 장면이다.
“배우들이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고 경험을 녹여냈다’ 이런 말들을 하잖아요. 저도 말로는 잘 했지만 실제 내게 다가왔을 때는 (투병의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워) 회피하곤 했어요. 그런데 진심으로 그래야 하는 상황이 왔죠. 배우로서 냉정히 객관적, 이성적으로 연기해야 했어요. 나와의 싸움이 다가온 거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행동으로 보여줘야겠구나 생각했죠. 며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정말 수백 가지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두렵더라고요. ‘이제 좀 벗어난다 싶었는데, 다 잊자고 다짐했는데 왜 내 뜻대로 안 되는 거지?’ 싶었죠. 하지만 배우로서 성숙해져야겠다고 결정한 뒤에는 담담하게 찍었어요.”
노출은 중요하지 않았다. 외설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신이긴 했지만, 혹시나 ‘노출에 주목할까?’하는 일말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단지 “(점점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에서 나왔던 그 여자의 가죽과 뼈가 보이지 않고, 내 두꺼운 허벅지가 보이는 게 너무 화가 났다”고 말하는 ‘진짜 배우’ 김호정 만이 카메라 앞에 있을 뿐이었다.
이 신을 찍으며 안성기에 대한 대단함도 다시 한 번 느꼈다. 두 사람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서로 여러 의견을 나누며 해당 신을 숙지했다. 당시 안성기는 설령 두 사람이 정해진 대사와 달리 말해도 자신이 다 맞춰주겠다며 김호정의 마음을 편안히 만들었다. 실제 그렇게 상대방의 연기에 즉각 맞춰줄 수 있는 배우가 드문데다, 그 말의 속뜻이 진정성을 최대한 담아 연기하자는 말이었기에 마음을 더 사로잡았다. 여기에 극 중 삭발신을 촬영할 때, 여배우이기 때문에 더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더 고민하고 “다시 머리가 자랄 거야”라며 위로하는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안성기 선배님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이었어요. 화면에서 봤을 때 젠틀하고 선량하며 좋은 배우로 보이잖아요. 다른 배우들이 하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죠. 막상 작품에 들어갔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어요. 젠틀을 넘어 배려심도 있고, 배우로서의 작품 해석 능력도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었죠. 현장에서도 능수능란하셨어요. 이번에 호흡을 맞추며 안성기 선배님을 존경하게 됐어요.”
김호정은 이 작품으로 7년 만에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심신이 힘들기도 했고, 슬럼프도 겪었다. 공허함이 들어 잠시 연기를 손에서 놓기도 했다. 하지만 천상 배우였던 그는 자신을 비워내고 대학원에 진학, 연출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와 함께 다시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7년 만의 복귀작 ‘화장’에도 출연했다. 덕분에 배우로서의 자신감도 되찾았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날아오를 준비를 끝마쳤다.
“가을에 연극 공연이 있어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 중인데, 드라마가 끝나면 잠시 여행을 갈 계획이에요. 베를린에 가서 영화도 좀 보고, 7월에는 공연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아직 대학원 논물을 못 써서 그것도 써야 해요. 그 이후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배우 김호정.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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