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안유진이기에 가능한 윤심덕의 이야기 (인터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배우 안유진은 뮤지컬 '사의 찬미'에 대한 애정도가 상당하다. 작품성 자체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이고 자신이 처음부터 공을 들인 작품이기 때문에 더 큰 애착을 갖고 있다. 때문에 관객들도 안유진의 윤심덕, '사의 찬미'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다.

뮤지컬 '사의찬미'는 1926년 8월4일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현해탄 동반 투신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실제 사건에 사내라는 허구를 더했고, 1921년 두 연인이 신원미상의 사내를 만난 과거부터 배에 올라탄 후 투신 자살하기 직전까지의 5시간을 밀도 높게 그린 이야기이다.

안유진은 극중 국내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역을 맡아 '글루미데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됐던 초연, 재연부터 '사의 찬미'로 바뀐 이번 공연까지 무대에 서고 있다. '사의 찬미'가 관객들에게 보여지기 이전부터 함께 해온 그는 윤심덕 그 자체, '사의 찬미'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의 찬미' 1차 팀 공연부터 함께 한 안유진은 최근 2차 팀이 합류를 앞두고 있어 공연과 연습을 병행하고 있다. 초연부터 무대에 올라 '사의 찬미'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또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다.

안유진은 "'사의 찬미'는 초연부터 참여했던 작품이고 윤심덕은 여자 배우로서 매력적인 캐릭터"라며 "솔직히 배우들도 어디 가서 창피하고 하기 싫은 공연이 있는데 '사의 찬미'는 드라마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스스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어 계속 하게 된다"고 밝혔다.

"제작사 대표님, 연출, 음악감독 등 다 아는 사이이고 실력 있는 분들이에요. 초연 때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죠. 초연 때 대본을 처음 보고는 '얘를 어떡하지' 했어요.(웃음) 아이디어도 좋고 좋은 신이 많았지만 이걸 하나로 만들기가 어려웠죠.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테이블 작업을 엄청나게 했어요. 기본적인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이 다르잖아요. 여러가지 이해해야 될 것들이 많았죠. 또 워낙 그 시대 때 앞서가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상도 많이 했어요. 얼마전 사내 역 최재웅 배우는 '너네는 기록이라도 있지'라고 하더라고요. 사내는 가상 인물이라 전사가 없거든요. 그럴 정도로 사내는 무(無)에서 시작했고 김우진, 윤심덕 역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어려움은 안유진을 더 윤심덕에 가깝게 만들었다. 이전 공연 무대에 올랐던 배우들이 한명쯤은 꼭 다음 공연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때문. 테이블 작업이 충분히 돼있는 배우들이 있어야 새로운 배우들도 '사의 찬미'를 더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베이스를 어떻게 깔고 가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롤모델이 필요하다.

안유진은 '사의 찬미' 윤심덕의 롤모델이 본인이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저죠"라고 답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는 안유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안유진은 "캐스팅 할 때도 내가 떠올랐다고 하더라"며 "윤심덕은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아는 것도 많고 별명이 '왈패녀'였을 정도다. '안유진이네' 했다더라"고 설명했다.

"테이블 작업에서 배우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고 공부도 더 할 수 있었어요.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많았는데 그걸 처음부터 함께 했으니 다른 작품에 비해서 이해도가 높은 거죠. 이 작품은 공부하고 이해할게 너무 많아요. 마냥 가볍지만은 않고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죠. 음악도 사실 힘이 들 정도로 풍성해요. 한 해 한 해 하면서 좀 힘든데 저도 모르게 점점 에너지가 세지나봐요. 관객들이 볼 수 있는 포인트도 다 달라요. 반전에 반전을 더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 고리를 쥐고 있는 게 다 윤심덕이에요. 관객들의 긴장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거죠. 윤심덕에게 이입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 키를 윤심덕이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찾고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그래서 더 작품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어요. '내가 이 작품 배우다', '작품 보러 오세요'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있어요."

실존 인물 윤심덕에게 안유진은 어떻게 접근했을까. 기록에는 남아 있지만 실제로 그녀가 어땠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무대에서 멋진 남자 두 명을 다 이기고 여자 관객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밝힌 안유진은 "공감가는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윤심덕은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기에 더 독특한 캐릭터. 겉모습부터 내면까지 신경 써야 했다. 안유진은 윤심덕이 살던 시대에 맞게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면서도 현재 관객들에게 매력을 이해시키기 위한 요소도 배놓지 않았다. 예쁜 장점은 살리되 부담 없이 멋져 보일 수 있는 윤심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진짜 멋있는' 윤심덕을 표현하고 싶었다.

"윤심덕은 굉장히 지적이고 자신감 있으면서도 섹시함도 갖고 있어요. 그러면서 내면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고 여린 여자죠. 책임감도 많고 무엇보다 윤심덕이 갈구한건 '사랑'이에요.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책임감과 억압, 압박에서 더 벗어나고 싶어했던 거죠. 가진 게 없기 때문에 더 미친듯이 배우는 것에 집중하고 스스로 발전해 나가려 한 거죠. 사실 불안한 여자예요. 행복하려고 발버둥치는 스타일이죠. 연민이 느껴져요."

사실 안유진은 윤심덕에게서 상당 부분 자신과 비슷한 점을 찾았다. 대본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던 것도 이 때문. 안유진 역시 윤심덕처럼 형제들이 많고 외국 여행을 자주 다니며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갇혀 있는 느낌이 싫고 배우는 것이 즐겁다. 어린 시절 별명도 윤심덕과 마찬가지로 '왈패'였을 정도.

안유진 부모님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 하고 초, 중, 고 모두 학생 회장을 했던 딸이 변호사, 외교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 안유진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항상 지지해줬다. 하지만 배우가 되고싶다는 딸의 말에 충격을 받긴 했다. 안유진 집안 식구들 모두 미술 분야에 몸담고 있기에 같은 예술 분야이지만 연기에 관심을 보이는 안유진은 가족들 사이에서 다소 괴짜 같았다.

"5남매인데 아빠가 그림을 그리는 분이라 저 빼고 다 아빠를 닮아 미대에 갔어요. 저만 그림을 못 그렸죠. 생긴 것도 저만 유일하게 엄마를 닮았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배우라는 꿈을 갖게 됐는데 워낙 어릴 때부터 아빠를 통해 다양한 문화나 음악들을 빨리 접하다 보니 꿈을 일찍 정했던 것 같아요. 아빠가 영화를 워낙 좋아하셨고, 저 역시 뮤지컬 영화를 아빠 덕에 많이 봤죠.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게 그런 거니까 나도 저걸 하고싶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더 어릴 땐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연극을 하고 주위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진짜 잘 하는 줄 알고 더 꿈을 키웠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 집의 돌연변이죠. 아무도 노래하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저만 되게 달라요."

확실히 안유진은 가족들 중에서도, 또래 사이에서도 달랐다. 더 개방적이었고 공상적이었다. 계절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믿었고 밤 하늘을 보면 만화 영화 오프닝 속 로봇이 진짜 눈에 보였다. 봄이 되면 옥상에 올라가 구름과 이야기 하며 혼자서 풀루트를 불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도 많았다. 이는 배우가 된 뒤 공연을 하고 인물을 분석하는데 참 많은 힘이 된다.

뮤지컬 '사의 찬미' 속 윤심덕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실제 자신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덕이다. 배우가 직업이기에 격변하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힘들지는 않다. 희망에 가득찬 밝고 당당한 여자가 어두워지고 비관론자가 되는 과정의 상처와 풍파 등을 표현하는데는 음악의 힘이 크다. 음 하나도 의미 없이 쓰는 법이 없는 김은영 작곡가의 곡을 통해 더 캐릭터에 몰입하고 음 하나까지도 연기할 수 있다.

"'사의 찬미'는 워낙 대본과 음악이 잘 짜여져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잘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기가 되죠. 잘 이해하고 캐치만 하면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시대극은 에티튜드(attitude)가 중요해요.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있는 자세나 걸음걸이, 의상에 맞는 움직임 등을 분석해야 해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봐서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사의 찬미'에서는 이전 공연이 끝난 뒤 여유가 생겼을 때 생각나는 것들을 많이 넣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좋은건 타인에 대해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다 보니까 분석이 빠르게 된다는 거죠. 단지 체력적으로 힘든데 이 공연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아도 잘 할 수 있어요. '사의 찬미'를 부를 때 감정의 폭이나 음의 폭이 커서 좀 문제이긴 해요. 눈물 콧물 범벅 되고 폐가 터질 것 같죠."(웃음)

새로 합류한 배우들과의 호흡도 인상적이다. 특히 친한 사이인 최재웅과의 호흡은 색다른 합을 낸다. "최재웅 배우를 제가 추천하긴 했는데 사내가 아니라 김우진으로 추천했어요. 이전에 작품을 같이 하면서 그 친구의 원래 성향이 김우진과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했죠. 근데 사내를 하길래 '어디 해봐라' 했는데 잘 하더라고요. 재미있어요. 처음에 대본 받았을 때 전 사내가 멀끔하고 멋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약간 허술해보이면서 속에 뭘 갖고 있는지 모르는 느낌이었죠. 근데 (최)재웅이도 똑같이 해석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웃음 포인트도 많아졌고 만족스러워요."

마지막으로 안유진은 제작사 네오프로덕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다양한 이벤트로 관객과 소통하는 만큼 배우로서 느끼는 것도 색다르다.

"홍보를 정말 잘 하는 것 같아요. 밤 새가면서 하더라고요. 저러다 시집 못 갈까봐 걱정이에요.(웃음) 열심히 홍보하고 이벤트하는 것들을 보면서 배우들도 열정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은 어둡지만 관객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거죠. 배우들도 누구 하나 까칠한 사람들이 없어서 즐겁게 이벤트에 임하고 있어요. 공연하면 폐가 터질 것 같고 엄청 힘든데도 사람들이 좋으니까 재밌게 하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 이 여름에 서스펜스를 느끼면서도 음악적으로 감동을 받고 공연에 집중하고 싶은 분들은 '사의 찬미'를 보러 오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고, 항상 새로운 이벤트가 준비돼 있으니 즐겁고 만족스러울 겁니다. 그리고 이 여름 대명문화공장은 지나치게 시원해요.(웃음) 가디건 꼭 챙겨 오세요. 시원하게 가슴까지 서늘해지는 작품 보여드리겠습니다."

뮤지컬 '사의 찬미'. 오는 9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공연시간 105분. 문의 NEO 02-766-7667.

[뮤지컬 '사의 찬미' 안유진, 공연 스틸. 사진 = 네오프러덕션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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