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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멋진 캐릭터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하와이 피스톨은 저보다 더 멋진 사람인 것 같아요.(웃음)”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인물들은 항상 느낌이 충만했다. ‘허삼관’에서는 절절한 부성애를 보여주는 허삼관을 연기했고, ‘군도:민란의 시대’에서는 쇠백정 돌무치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최악의 재난 사태를 독점 중계하는 윤영화로 분해 러닝타임 97분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들 캐릭터에 유일한 공통점이 하나 존재하는데, 하정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캐릭터의 맛이 살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영화 ‘암살’ 역시 마찬가지다. 하정우는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까지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영화 ‘암살’에서 상하이의 무법자 하와이 피스톨 역을 맡아 특유의 매력을 캐릭터에 녹여냈다. 신비롭지만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지 않고, 마초 같지만 낭만이 서려 있으며, 자유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아하다. 그의 전작 속 유행어를 빌리자면 “살아 있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처음 감독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작들과 다른 작품이라는 데 관심이 갔어요. 영화를 만들며 변화를 추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나간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든, 감독이든 계속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봐요. 도전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지점에서 봤을 때 감독님이 5번째 작품으로 ‘암살’을 하겠다고 한 건 후배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고, 일원이 된다는 것 역시 흥미로울 것 같았죠.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오달수)을 제외한 인물이 무거운 일들을 하는데, 가볍게 중화시켜주는 인물이라는 지점도 매력적이었어요.”
이런 이유로 합류하게 된 ‘암살’. 그에게는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자신이 연출, 각본, 주연을 맡은 영화 ‘허삼관’ 촬영 후 바로 ‘암살’ 촬영에 돌입해야 했기 때문. 이후에도 ‘암살’을 촬영하며 틈틈이 쉴 때마다 ‘허삼관’ 후반작업 등을 하며 강행군을 이어 나갔다.
“크랭크인 전까지는 힘들어하는 스타일인데 어느 정도 셋팅을 하고 촬영을 시작하면 그 안에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다음 작품, 그 다음 작품을 생각하며 씨앗을 미리 심어 놓는 편이에요. 은연중에 그런 걸 생각하며 점점 키워 나가죠. ‘암살’은 일찍 씨앗을 심어 놓은 작품이에요. ‘허삼관’ 촬영이 끝나자 마자 하루 쉬고 바로 ‘암살’에 들어가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최동훈 감독님이 절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했죠. 일본어 선생님과도 통화를 하며 일어 연기를 준비했어요. ‘허삼관’에서 연출과 주연을 하며 촬영이 진행돼 쉴 틈이 없었죠. ‘허삼관’에서 ‘암살’로 넘어갈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같아요. 어떻게든 소화해 보려 애를 썼죠.”
약한 소리를 하지만 ‘암살’을 보면 왜 최동훈 감독이 ‘하정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납득이 간다. 비록 하와이 피스톨의 그림자인 영감을 연기한 오달수를 언급하며 “달수 형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옆에 같이 있으면서 뭔가를 풀어준 것 같아요. 코믹한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준 느낌”이라며 공을 돌렸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영화 자체의 맛이 달라졌을 터였다.
하정우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최동훈 감독에 대한 믿음도 내비쳤다. 최동훈 감독이 만들어낸 인물에 매력을 느꼈고, “이름도 참 잘 짓지 않냐”며 감탄을 금치 않은 그다. 인물들이 어떠한 일을 도모하는 순간을 보며 그것을 연기해낼 배우로서 짜릿함을 느끼는데, 그런 부분들을 영화에 잘 녹여내는 인물이 최동훈 감독이라 더욱 매력을 느꼈다.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인물도 이름 자체가 뭔가를 이야기해주는 것 같잖아요. 거기서 이 캐릭터가 반은 완성됐다고 생각했어요. 그 지점이 이 작품을 선택하게 했죠. 그 다음은 최동훈 감독님이라는 사람인 것 같아요. 늘 재미있어 하는,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계세요. 후배 감독으로 봤을 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떻게 안 지치지?’, ‘어떻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고갈되지 않고 샘솟지?’ 그런 것도 궁금하고 닮고 싶더라고요.”
배우로서 독보적 위치에 올랐고, 감독으로서 탄탄히 자리를 다지고 있는 하정우인 만큼 주위의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하정우는 묵묵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하던대로 계속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로서 해왔던 대로 꾸준히 해나가고, 가끔 연출작을 계속 이어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그 것 외에는 제 인생에서 어떠한 걸 예상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진 않잖아요. (웃음) 할아버지 때까지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만났던 감독님들, 배우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계속 작업했으면 좋겠어요.”
[배우 하정우. 사진 = 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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