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류승완(42) 감독은 스물 일곱 살에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만들었다. 장선우 감독이 ‘나쁜 영화’를 찍고 남긴 짜투리 필름을 가져다 자비 400만원을 투입해 1997년 단편 ‘패싸움’을 찍었다. 이후 서로 다른 장르의 단편 ‘악몽’ ‘현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엮었다.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며 제작비를 마련해 기어이 데뷔작을 만들었다. 그의 영화인생 자체가 처음부터 생존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이 세상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한 곳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저한 비관주의 속에서도 그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삶의 바닥으로 떨어져도 끈질기게 살아 남는다. ‘주먹이 운다’의 태식(최민식)과 상환(류승범)처럼, 끝까지 생존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그를 매료시킨다.
‘베테랑’은 부정과 불의의 세계에 맞서 싸우는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승리하는 이야기다. 류승완 감독은 안하무인의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를 검거하는 과정을 통해 통쾌하고 시원한 감정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역시 밀려나고 버려진 사람에 대한 연민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배를 곯아야하는 화물트럭 운전사 배 기사(정웅인)는 조태오의 폭력 앞에 무릎이 꺾인다. ‘베테랑’은 배 기사가 당했던 치욕과 울분을 풀어주는 이야기다. 옷을 벗기겠다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서도철은 맨 몸으로 돌파하며 적의 심장부로 향한다. 서도철 역시 끝까지 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용기있는 행동을 한 사람은 화물트럭 노동자인 배 기사입니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당한 임금을 떼이게 되죠. 그의 주먹을 자세히 보면 과거에 한가닥 했던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철저하게 비폭력으로 저항합니다. 배 기사가 당하며 살아야 하는 세계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죠. 그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은 정말 나쁜 일입니다. 나쁜 일을 저지르는 나쁜 놈의 뺨을 때려주는 영화가 ‘베테랑’이죠.”
배 기사가 처한 환경은 관객의 보편적 공감대를 끌어낸다. 사회의 끝으로 밀려나지만, 끝내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두 발로 굳건히 버텨내려는 인물이고, 서도철 역시 불의를 참지 못하는 강직한 형사 캐릭터다.
“연민과 측은지심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서도철은 미안한 마음으로 배 기사를 도와주기 시작하죠. 따뜻한 애정일 수 있어요. 저는 그러한 애정이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밝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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